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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Feb 24. 2024

어디에나 쓰인다.

 나에 연인은 딱 봐도 누가 봐도 스쳐 지나가다 봐도 앞 구르기 뒷구르기 눈알 굴리는 개인기를 하면서 봐도 정말이지 너무너무 예의 바른 사람이다. 철저하게 말이다. 행동거지가 좋게 말하면 조선시대 뼈대 있는 양반가에 엄격하게 자란 자식 같고 조금 다르게 보면 요즘시대에는 안 어울리는 고지식할 정도로 예의가 발랐다. 하지만 난 그런 모습에 반했다. 사람들과는 집착적으로 보일만큼 거리를 두면서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예의는 지키는 아웃사이더 나는 그게 좋았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져서이다. 반면 이런 성향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기존에 해왔던 연애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요약하고 말하자면 사귀는 사이가 되기 까지가 많이 많이 힘들었다. 감정을 표현하면 알면서 무심한척 하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표현을 안 해주는 것인지 애매하고 헷갈렸다. 늘 뭔가를 시험받는 것 같았다. 아니 먼가 실험당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예전에 해왔던 루틴의 연애라면 이 정도쯤 되면, 되던 것들이 되질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이쯤 해도 안 되는 것이면 그냥 안 만나고 말았다. 뭐랄까 처음에는 다 읽을 거라 꼼꼼히 읽을 거라 마음먹은 책을 읽다 보니 힘들고 머리에도 잘 안 들어오고 지겨워서 대충 훑어보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비록 농도는 옅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연애는 연애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이번은 버티고 싶었다. 내 인생에 이런 사랑 한 번쯤 있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처음은 오기로 그다음부터는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매번 이런 날의 반복이었지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벅찬 사랑하고 있다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처럼 연인에게서 못난 말을 듣던 날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왔다. 그리고 눈물 콧물을 보이며 말했다. “헤어질까” 나에 울음에도 아무 반응 없이 무덤덤하게 오히려 내게 대물 었다. “헤어지고 싶어” 이 말을 끝으로 그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밤거리를 걷다. 즉흥적으로 바닷가로가 오션뷰가 보이는 방에서 처음으로 같이 밤을 보냈다. 그날 이후부터 뭔가 달라졌다. 많은 것들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뭘 하든 무엇을 하든 탐 탔지 않아 했던 연인이었는데 어울려준다고 해야 할까 나에 감정과 기분에 썪여주려는 것이 보였다. 그전에는 일단 연애는 하고 있지만 무언으로 너와 나는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선을 그었었다. 서로의 기분이 엇갈리면 엇갈리는 대로 같으면 같은 대로 따로따로였다면 지금은 물과 기름 같은 상태라도 어떡해서든 썩이려 했다. 점점 느낄 수 있었다. 먼가 진해지고 선명해지고 커진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흘러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것과 비례해서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가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연인에게 패티쉬라고 해야 할지 취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나에 연인은 ‘상황극, 역할극’을 좋아했다. 몇 달은 평범한 연인들과 같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의 연인은 하나둘씩 나에게 요구를 했다.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지만 조크 같기도 작은 장난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강도와 준비성이 치밀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니 안 해본 직업, 안 해본 욕, 안 들아간 공간, 안 겪어본 상황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정말 당혹스러운 건 점점 나조차도 이 늪을 즐기고 있다는 거였다. 나조차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었다. 가끔 거울에 비췬 나의 모습을 보때마다 정말 내 모습이 맞는지 어색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몇 년을 쿵짝이 잘 맞는 듀오의 연인이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그렇게 해오면서 소재거리 고갈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일부러 이런 상황을 고려해 여러 가지 고려하였는데도 결국은 끝 모를 우물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창작의 고통을 느껴야 했다. 관계의 횟수는 줄었지만 그런 건 전여 중요하지 않았다. 횟수보다는 밀도과 중요했다. 우리는 밀도가 높은 한 번의 관계를 위해 수많은 작업을 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스토리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고 그것에 맞게 소품과 복장을 구하고 구입한 작업공간에 소소하지만 디테일한 공간 배치를 바꾸는 작업도 했다. 점점 즉흥적인 것이 아닌 대본과 동선을 만들어 숙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연출을 추가하기도 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작업에 작업을 하고 몇 번의 리허설 체력과 상황에 맞는 몸 상태를 위한 운동 그리고 어떨 땐 살을 찌우기도 하는 등 디테일하게 하려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을 했다. 그리고 가장 최적인 상태일 때 우리는 레디 액션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락이 걸린 우리 USB에는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동안의 추억과 그리고 다음의 추억을 위한 스토리들이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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