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팔 May 03. 2024

망상

난 평범한 직장인이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좋아한다. 나에게 딱히 취미라고 부를 만한 것도 당연히 특기도 없었다. 굳이 취미라고 말하자면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에 보는 웹툰과 웹소설이다. 요즘 회기물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정작 집에 돌아오면 거들더도 보지 않지만 말이다. 태어났으니깐 산다라는 말처럼 태어났으니 산다. 평범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평범하고 무난하게 잘난 것도 모자랄 것도 없이 교육을 받았으며 평범하게 성인이 되어 그 나이 때맞는 적당한 방랑도 적당한 성실함도 적당한 연애를 했다. 만약 인간의 삶에 어떤 매뉴얼 같은 게 있다면 나에 인생이 가장인간의 삶의 보편적 삶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처럼 산다면 큰 성공도 없겠지만 큰 시련도 없는 그런 삶이다. 적당히 받는 월급에 만족하며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는 것을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 욕심도 욕망도 없다. 그리고 난 알고 있다 내일 무엇을 할지 고민할 수 있고 지루해 할 수 있는 미치도록 단조로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 나라를 지키다 토사구팽 된 007이나 kbg 국정원 같은 정보요원이나 아니면 암흑세계에 암살자라던지 살인청부업자나 가난포르노에 나오는 사람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단조로움이 어떨 때는 감옥 같을 때가 있다. 나에 삶이 어떤 누군가에는 행복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가끔 마음이 심란해 올 때면 평생을 안들을 것 같은 음악을 재생목록에 추가한 뒤 그걸 들으면서 런닝을 한다. 그날따라 뛰다가 헛구역질이 나왔다. 주최할 수 없어 몸을 쑤그리고 바닥에다 토악질을 해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끈적한 분빈 물과 위액뿐이었다.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날씨가 그리 춥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속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뛰어온 길 뒤쪽을 보았다. 어색했다 뛰다가 한 번도 뒤쪽을 바라보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어색한 것은 내가 사는 곳이었다. 그 순간 내 기억 속에 펜스 같은 게 쳐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자고 일하고 움직이는 장소가 펜스가 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피해도 받지 않고 누군가를 해아지도 않는 울타리 그게 좋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어떤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딜레마가 생겼다. 꺾여 죽는 것이 좋은 것인지 말라죽어 가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어떤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나에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내 영혼에 쇠고랑 같은 걸 채워 넣었다. 물을 손으로 붙잡고 싶었다. 바람을 부둥켜 앉고 싶었다. 하늘 위를 걷고 싶었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을 마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뭐든 다할 수도 뭐든 다안해도 될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누구도 될 수 있고 어떤 무엇도 안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것이 없어진 존재가 되는 듯했다. 이름이 사라진 존재가 되어 무척이나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점점 평범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평생 다닐 것 같은 직장을 때려치웠다. 부모님과 연락을 끊었다. 날 아는 모든 존재와 연락을 끊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현금을 찾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전자제품을 버렸다. 그리고 몇 권의 책과 옷가지만 들고 펜스 넘어 세상을 몇 번을 뺑뺑 돌다.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나무와 풀로 집을 짓고 주위를 가꾸고 추위와 더위를 견딜 수 있는 곳을 만들고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몸에는 전에는 없었던 털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없었던 근육들도 붙기 시작했다.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던 뱃살은 사라지고 복잡하던 생각은 단순해졌다. 그렇게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간듯하다. 난 평화로워졌으며 가벼워졌다. 어느 날 손님이 차자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깊은 산속은 어떤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깊은 산속이 아니게 되어버렸고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으며 나는 다시금 시스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동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부모님의 재산은 친척들이 나눠가졌다. 친척들은 나의 존재를 거부했으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배회했고 가끔 티브이에 잠시 나온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음식과 마실 것을 주었다. 산속에 있을 때 항상 가볍고 깨끗했던 나는 점점 무거워지고 더러워졌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던 나는 악취에 오던 사람들도 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골목 어디에 쪼그려 않았다. 골목길에 쪼그려 앉은 그는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이라고 중얼거린다. 그의 두동공은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두 동공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전쟁터에 지휘를 하는 장군의 표정처럼 냉정하고 결기가 넘치며 단호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지닌 깨진 유리 조각을 호주머니에 꺼냈다. 그리고 그는 행동했다. 그의 몸은 천천히 식어 같다. 점점 식어 같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입술을 달싹이며 이세계 이세계 이세계 라 말한다.

이전 14화 글 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