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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May 11. 2024

자주 가는 절이 있다.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절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 향냄새 그리고 자연이 가끔씩 불교라는 것을 바라보고 싶게 하는 것은 있지만 평생을 무교로 살아가면서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종교로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무너져야 한다면 온전히 인간 의지 한계로 무너지고 싶었다. 그만큼의 불행이 나에게 온다면 말이다. 내가 이곳 절에 오는 목적이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를 아는가 그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이다. 내용은 조금 다르다 누군가의 귀가 아닌 내 귀에 대해 남기기 위함이니깐 말이다. 고해성사 같은 거다. 이 절에는 하나의 풍습!? 같은 게 있다. 한지에 소원을 적어 조그마한 항아리에 보관해 천장에 있는 대들보 위에 얹어두는 것이었다. 처음 이것을 보았을 때 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스님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이없게도 그들도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몇백 년 전부터 해온 것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원을 적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항아리를 대들보 위에 올려두는 이유에 대해 아무리 추측을 해보아도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절에 찾는 사람들도 스님들도 자연스럽게 하고 받아들였다. 너 무 오래전 동안 해오던 일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다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대들보 위에 항아리가 가득 차면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이것에 대해서도 물었다. 스님이 말하기를 오래전에는 땅에 묻었다고 한다. 절주 위에 수많은 항아리의 잔해들 그리고 잔해들을 파해치다 보면 썩어가고 있는 한지 종이도 함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는 하지 않고 부처님 오신 날 한지들을 모두 태워 버린다고 한다. 그리고 다 타고 남은재는 치우지 않고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빗물과 함께 흘러가게 나둔다고 했다.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것 또한 자신들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몇백 년 전부터 해온 거라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스님에게 본인만 모르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다. 스님은 자신이 뭘 잘못 들었는가 싶은지 귓구멍을 휘비적되었다. 그 모습에 아차 하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풍습이라고 해야 할지 뭔지 모를 이 행위가 의아하기는 했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적어 항아리에 넣지만 나는 나에 죄에 대해 적었었다. 한지에 자세히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한자 한자 적어 항아리에 넣는다. 그리고 무언가 적힌 한지가, 가득 찬 항아리는 천장 위 대들보 위에 올라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부처님 오시는 날이 되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가되고 비가 내리면 재는 깻끗이 씻겨내려 져 간다. 난 비오늘날 한 번씩 절에 들러 재들이 있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그러면 왜인지 내가 저질렀던 죄들이 씻겨져 내려가고 내 안에 그것 또한 깨끗해지고 있는 듯했다. 집에 세탁기가 있기에 더럽게 입고 다녀야 할 옷을 마음껏 더립히고 입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절은 내게 있어 세탁기 같은 거였다. 그리고 절에 가는 이유는 절제를 하기 위함도 있었다. 죄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절에 발길을 옮기는 횟수도 많아졌다. 뜨믄 뜨믄 갈 때는 모르지만 자주 갈 때면 스님들이 알 수 없는 말로 인사 비슷한 걸 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절제할 수 없던 무언가가 사그라들며 한동안은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멈춤으로 인해 나는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무언가가 싹이 틀 때쯤 절로 찾아간다. 경쾌한 풍경소리 맑은 소리 맑은 향냄새 맑은 자연이 보일 때면 그때가 때였다. 그러다 어는날 절에 찾았을 때 평소 보지 못한 스님이 다른 곳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어느 순간부터 따갑게 느껴져 나는 스님에게 다가가 “왜 저를 보십니까”하고 말을 걸었다. 스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여전히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근데 기분이 묘했다 분명 가까이서 날 바라보는데 기분은 아득한 저 어디인가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무언가에 이끌리듯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 노스님이 나에게 말을 한다. “절밥이 맛있으니 오늘은 꼭 밥을 챙겨 먹고 가시게”라며 말한다. 스님은 그 말을 남기고 어디인가로 사라지듯 발걸음을 옮겼다. 뜬금없이 절밥이라니 황당했다. 그리고 절에 오면서 절밥이 있는지도 몰랐다. 별로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왜인지 먹어야 할 것 같아 지나다니는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 절밥을 어디 가야 먹을 수 있습니까?” 스님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절밥을 먹고 가라고 해서요” 스님은 나에 말에 누가 먹고 가라고 했냐고 물었고 나는 어떤 노스님이 먹고 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님은 날 빤히 보더니 “죄짓고 사시오?”라고 물었다. 나는 순간 동공이 커지면서 스님을 바라봤다. 스님은 날 보며 그리 놀래거 없다며 수백 년 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 절밥을 찾으면 속세에서 죄를 많이 짓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절에는 절밥도 노스님도 없다고 말했다. 스님은 나를 지나가면서 흘리듯 말했다. “다음이 있다면 한지에 소원만 적으십시오 안보는 듯해도 은근슬쩍 볼 거 안 볼 거 다 봅니다” 난 우두커니 서서 절을 둘러보았다. 풍경소리는 왜인지 고막을 찢을 듯했고 향냄새는 매캐하여 숨이 턱턱 막혀왔다. 자연은 안개인지 모르지만 우중충 했다. 하루하루가 고행 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기분으로 절에서 내려오는데 산길에서 절밥을 먹으라 했던 노스님을 마주쳤다. 난 그 노스님을 불렀고 노스님이 날보더니 "절밥은 먹었는가"라고 물어왔다. 나는 어이가 없어 절에는 절밥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노스님이 헛헛하며 헛웃음을 지으며 "절에 절밥이 없으면 스님들은 뭘 먹는가"라고 말한다. 노스님의 말을 듣고 난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다시 천천히 내뱉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노스님한테 "어느 스님이 여기는 절밥도 그리고 당신 같은 노스님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스님이 혀를 쯧쯧쯧 하고 차며 "죄를 얼많아 지었길래 절밥을 허락을 안 하는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노스님은 가던 발길을 옮겼다. 나는 무언가를 묻고 싶었지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노스님이 걸어가는 길 만을 덩그러니 바라보고 있는데 산이 메아리치며 "비우시게"라는 노인의 말이 들려왔다. 노스님의 말이 울리자 내가 했던 생각했더 행동했던 것들이 분명 이유가 있었는데 잊어버려졌다. 그리고 무상함 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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