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팔 May 18. 2024

계획

미칠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주위에 머든 있다면 깨부수고 부서트리고 엉망징창을 만들어 놔도 분이 안 풀릴 것 같다. 저 연놈들 복수하지 않고서는 나는 도저히 눈을 붙이고 잘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에게 마땅히 복수할 수 있는 위치도 능력도 되지 않았다. 오직 오로지 ‘살인’ 만이 답이다. 그렇다고 빌어먹을 연놈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완전범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날을 잡고 완점범죄 살인 계획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어느 범죄영화처럼 말이다. ...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났다. 생각을 현실에서 계획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무되었다. 처음 20분 동안은 미친 사람처럼 마구마구 타이핑해 댔다. 지난날 살아오면서 영화나 드라마 뉴스 이야기를 보고 들었던 모든 무지막지 하고 기상천회한 방법들을 타이핑 해댔다. 20분 동안은 살아생전 몇 번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카타르시스로 인해 도파민이 백두산천지가 개벽하듯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기를 20분 정도 지나고 맞춤표를 찍은 후 나는 타이핑한 글을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 같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타이핑할 때는 이 세상의 범죄를 다 저질러도 안들킬 것 같은 완전범죄를 천재적 재능으로 쓴 것 같았는데 다시 읽어 보았을 때는 큰 눈을 뜨고 보아도 실눈을 뜨고 보아도 온통 빈틈 투성이었다. 빌어먹을 머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잘 만들어진 집같은 글을 생각했는데 이건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을 투박하게 툭툭 던져놓은 듯한 돌덩어리 같은 글을 나열이었다. 지금 쓴 계획서 대로 해서 완전범죄를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3주 연속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것과 같아 보였다. 내가 썼는데 내가 이 정도로 박하게 보는 거면 아마 다른 사람눈에는 쯧 한숨이 나왔다. 분명 자신이 있는데 의욕이 넘치는 한 시간이 지나가고 카페인 못 먹다 죽은 귀신처럼 커피를 내리 다섯 잔을 마시며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다른 미친놈들은 어떻게 사람을 죽일까 하며 말이다. 대체로 완전범죄를 꿈꾸지 않는 부류의 살인은 피의 난자함에 대리만족을 느끼지만 내입장에서 접목을 시키려니 부담스러웠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살인범은, 계획하는 시간과 돈이 너무 들어 보였다. 돈도 인내심도 없는 나에게는 부담스러웠다. 유튜브는 어쩌면 너무 장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직관적이어서 부담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범죄소설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코난 도일이라던지 애거서 크리스티 같은 고전부터 해서 요즘에 나오는 추리소설 전부를 말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는 농밀함을 배울 수 있고 최근 소설에는 수단과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무모하게 하는 묻지마 살인대신 조금은 시간을 들여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속으로 연놈들아 너희의 행복은 조만간이라는 주문을 걸면서 말이다. 차근차근 소설책을 곱씹으면서 한 개씩 깨닫고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책을 읽고 나서 처음에 마음이 고무돼서 적었던 살인계획서를 다시금 읽어 보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했다. 너무 철닥써니 없는 계획이었다. 이건 초등학생이 아이스크림을 몰래 훔쳐먹고 아장아장 기어가는 자신의 동생에 입에다. 크림을 살짝 묻혀놓고 부모님이 누가 먹었냐 네가 먹었지라고 물어보면 누어서 모빌을 보고 해맑게 웃는 동생에게 검지손가락을 쭉 펴고 가리키며 쟤가 먹었다고 말하면 부모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짓말하지 말라고 추궁하면 증거로 내미는 게 동생 입술에 크림이 묻었다고 거짓말하는 수준의 계획서였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래도 조금 수정하면 어찌저찌 될 줄 알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금 읽어 본거였는데 빌어먹을 어쩔 수 없이 조금은 조급하고 조금은 단호한 마음으로 몇 권의 책을 더 읽고 몇 페이지의 범죄 관련 논문을 읽고 심리에 관한 책을 읽었다. 만약 완전범죄 살인에 대한 노벨상이 있다면 수상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구상해나 같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계획과 작전을 짜서 살인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한날 오류가 발생했다. 평소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마주치는 연놈들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머리를 지뜯을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날 중에 살인을 마음먹은 날 모든 것을 준비한 날에 보이지 않았다. 어쩔수 없었다. 다시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아쉽고 분하고 화가 났지만 다음에도 충분히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상했다. 살인을 생각했던 그날만이 아닌 며칠 동안 연놈이 보이지 않았다. 멘붕이 왔다. 계획만 있고 목표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뜻밖의 그들의 소식이 들려왔다. 두 명 다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진위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군대 알아보았지만 죽었다는 소식이 맞았다. 허탈하고 허무하고 진이 빠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긴장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걸 그렇게 며칠을 평소해왔던 살인계획의 루틴이 망가진 체 마구잡이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영상이 떠돌았다. 영상 속에 연놈들은 한때 유튜브나 인스타에서 유행했던 독에 대한 만담 영상처럼 서로가 서로의 술잔에 몰래몰래 독가루를 넣었고 둘은 서로의 술잔이 의심스러워 바꾸고 바꾸지만 결국 두잔다 독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어 버렸다. 영상을 보는 내내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어이없었다. 조금은 입맛이 찝찝했지만 누군가에 손에 죽어 숭고함으로 덧칠해진 것보다는 자신들 손으로 바보처럼 죽어 우스꽝스럽게 된 것에 위한을 받기도 했지만 어쩌면 영상속 우수꽝스러운 모습이 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식음땀이 나는 한편 어떤 안도감이 들었다.  

이전 17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