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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팔 May 04. 2024

망상2

무덤덤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이라는 것이 감정을 가지고 순환하는 것이 아니듯 사람이라는 감정도 어쩌면 자연과 같아서 아무 의미 없이 길이 있는 곳으로 물 주기가 흐르듯 감정이라는 것도 시간이 흐를수록 무덤덤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죽음이라는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말이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이, 샤르르 바람을 타고 바닥에 톡 하고 떨어졌다. 왜인지 그 장면이 모습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서있는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종이가 떨어지는 장면만을 반복재생해서 보았다. 제법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느껴질 때쯤 멀리가 있던 생각을 되돌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반으로 접힌종이를 들어 안에 어떤 종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종이를 펼쳐보았다. 종이에는 많은 글도 별말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글이 어떤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두 눈에 눈물을 흘릴 만큼 슬픈 글도 아니었다. 적힌 글은 지난날의 나를 알 수 있는 글 이였다. 무덤덤해져가고 있는 내가 아닌, 뜨겁기도 차갑기도 무모하고 바보 같은 내가 몇 마디 글에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지난날들이 스쳐지나 같다. 수많은 기억들이 내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두 눈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렀다. 내가 왜 이 글을 이 책에 꽂아 놓았는지 기억이 났다. 그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 없이 단지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 비가 내렸던 하늘이었는지 해가 쨍쨍한 하늘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하늘을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종이에 적었다. 그때는 아무런 의미 없었는 글귀가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내 손안에 들어온 글귀는 어쩌면 지금의 나를 구원하기 위해 바보 같았던 과거의 내가 나에게 보내는 속삭임인 것 같았다. 따듯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원동력을 얻은듯하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 종이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어요 라고 나는 그런 이에게 다시 물을 거다. 당신은 어떤 글이 적혀 있기를 바라나요. 힘내라는 말, 아님 보물지도, 아님 꼭꼭 숨겨 놓았던 재산의 행방, 아님 누군가의 유서, 아님 첫사랑의 글  어떤 글을 보아도 무덤덤 할꺼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은 그걸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타오르지는 않더라도 따듯해지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이라는 친구를 버릴 수 없다. 항상 뜨거울 수도 따듯해질 수도 없다. 반대로 생각하면 늘 차가울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덤덤해지기로 한다.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는다. 믿지 않으면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무덤덤해진다. 그리고 아파하지도 상처받지도 않는다.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 같다. 아픔을 받지 않는 방법들 만이 더욱 교묘해지고 영악해지고 있을 뿐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과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은 점점 사라지고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알 거다 평생을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 없다는 걸 살다 보면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방법이 없다. 치유하는 방법도 이겨내는 방법도 사라지니 결국 강제적인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그게 사명인 것처럼 말이다. 아니 아니 어쩌면 그게 나에 손에 쥐어진 마지막 복수라는 카드라고 생각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어쩌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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