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하루, 하루는 공허한 감정에 연속이었다. 중년을 바라보는 세월이 흘렀지만 누군가의 잣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만족할 만큼 이루어둔 게 없었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선에 있을 때 만해도 초조하거나 두렵고 나이에 쫓기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뭐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어떤 일이 벌어져 시계태엽이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되리라 믿었다 그것이 이치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사건사고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비정상에 범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형제들도 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평범이라는 레일에서 벋어나지 않는 듯했다. 경제적으로도 가난하지도 부자이지도 않은 집걱정 없이 밥걱정 없이 여가도 즐기수 있는 정도다. 사치를 부리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그 정도였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못하지도 않았다. 위대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학업을 종료하고 대충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직장에 9to6 주 5일 어쩌다 야근에 주말에 일했다. 정확한 바쁜 시기와 한가한 시기가 정해져 들숙날숙한 생활이 아닌 잔잔한 바다에 가끔 테라포트에 부서지는 파도 같은 생활을 했다. 그렇게 평범하고 보통의 인간의 삶을 살았다..... 아니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제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공허했다. 텅 빈 깡통에 자갈 하나라도 들어가 있다면 요란하게라도 울리 터인데 티끌마저 없으니 안 속이 비워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모른 체 있었다. 모르니 그것을 공허라 부르며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휘어 감기는 듯 삶을 살고 있았다. 방법을 알지 못해 스스로 ‘별수 있으랴 누구도 발길이 닻지 않는 산속 깊숙한 곳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살 수밖에 그럴 수밖에...’라 자위하며 살아 같다.
어느 날 뜬금없이 제이 집 근처 카오스 슈퍼 앞에 80년대 외국 시골 깡촌에 있는 오래된 펍에서 볼법한 외형의 화려한 기계가 덩그러니 우뚝 서있었다. ‘서푼짜리’라는 네온불빛이 나오는 글자아래 얼굴 높이에 유리되어 있었는데 유리안 속에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실에 매달린 피에로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동전을 넣는 투입구와 어쩐지 양손을 넣어야 할 것 같은 구멍이 달려 있었다. 신기하기도, 께름칙하기도 한 모습의 기계였다. 때마침 궁금중을 풀어줄 슈퍼마켓 주인 카오스슈퍼 주인집 할매가 가계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제이는 할매에게 인사를 하며 물었다.
“할매 이거 뭔교?”
할매는 뚱한 표정으로 제이를 쳐다보더니 쭈굴쭈굴하고 기운 없어 보이는 외형의 모습과는 달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한다.
“몰러 미친 새끼가 거기 나뚜드만 가브렸어”
할매가 미친 새끼라고 부르는 사람은 할매의 손자였다. 동네에서는 미치광이라고 부르는 괴짜발명가로 유명했다. 슈퍼이름을 ‘카오스’라고 지은 것도 그 미치광이 괴짜 아들이었다. 그리고 제이의 동창이었다
“뭣하는데 쓰는지 알아요?”
“몰러 안 알려주고 같어 뭐라 지껄이기는 했는데 뭔 말인고 도통 모르겠다. 그냥 콘센트만 꼽아두면 된다 캐서 코드만 꼽아두고 있다. 전기세만 쭉쭉 빨아먹는 거 아닌가 몰러 씨팔”
할매는 욕을 입에 달고 사신다. 주위 아이들이 할매의 욕을 듣고 따라 하니 주위 아이들 가진 부모들이 할매에게 욕하지 말라며 어르기도 달래기도 싸우기도 슈퍼 불매운동까지 벌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니 할매의 욕은 밥 같아져 버렸다.
제이는 기계를 유심이 들여다보다 동전 투입구 쪽에 돋보기로 봐야 겨우 보이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실눈을 만들고 글자를 읽어 나 같다. <500원 동전 세 집어넣고 양쪽에 있는 투입구에 손바닥을 넣고 인형이 춤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세요.> 제이는 어쩐지 미치광이 발명가인 동창이 어떤 미친 것을 또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제이는 할매에게 2천 원을 주며 500원짜리 동전으로 바꿔달라고 말했다.
“그거 할라꼬 뭣한다고 돈벌이겠구먼”
할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잽싸게 지폐를 받아 들고는 500원짜리 동전이 산처럼 쌓인 소쿠리에서 4개를 집어 제이 손에 쥐어 줬다. 어쩐지 눈퉁이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제이의 미치광이 동창생 발명가가 만드는 것은 어릴 적부터 늘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1500원짜리 눈퉁이정도의 재미를 줄 듯했다. 그러기를 소원했다.
제이는 동전 네 잎을 넣고 손을 기계투입구에 넣었다. 그리고 몇 초 뒤 공포영화에서나 흘러나올법한 고장 난 LP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멜로디소리가 흘러나오고 마리오네트 인형이 삐그덕 삐그덕 움직이더니 몸과 손과 발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춤을 추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어쩐지 너무 괴기스러워 춤이라고 부르기가 그랬다. 그렇게 수분 같은 수초가 지나가고 이상한 춤과 멜로디가 종료되고 순간 이게 다야라고 생각하는 방금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숫자가 기계 앞에 보이더니 10초부터 역순으로 카운터 되기 시작했다. 제로가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로에서 갑자기 –1, -2, –3으로 바뀌더니 <힝 속았지>라는 멘트가 나왔다. 제이의 이마에 순간적으로 핏줄이 서며 어이없다는 생각에 기계 속에서 손을 빼려는데 갑자기 순간 손바닥에서 찌릿한 느낌이 들어 젭 싸게 손을 뺏다. 기계고장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화면에서 <찌리릿 메롱>이라는 말과 함께 <선물>이라는 글자 떴다 그리고 웅~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인쇄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금까지도 볼 수 없었던 곳에서 오래된 종이로 보이는 것이 천천히 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제이는 천천히 주워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제이는 너털웃음을 지으면 괴짜 동창생의 얼굴을 상기시키고는 글자들을 천천히 읽어 나 같다. 대충 읽고 버리자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이 제이는 서있는 자세로 종이 위에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내용은 이해가 가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읽어 나 같다. 도대체 말이 안 되고 쓸데없고 어이없는 이야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먼가 이상함을 느꼈다. 빈깡통에 새끼손가락 한마디 보다도 작은 돌멩이 하나가 툭하고 담기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