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아진 것들

by J팔

“아이고야 덤 앤 더머 같은 새끼야”

통상상적인 불량에다. 작업일지에 적혀있는 숫자로 보이는 결과에 나오듯 남들보다 적은 불량률인데도 불구하고 과장이라는 새끼는 유독 나에게서 불량품이 나올 때마다 ‘덤 앤 더머 같은 새끼’라 꼽을 준다. 처음에는 덤 앤 더머가 무슨 말인지 몰라 대미지를 받지 않았는데 하두 덤 앤 더머라 말해 궁금해서 인터넷에 설명하는 글을 보았다. ‘바보’ 둘이 나오는 영화 주인공 이름이라는 걸 영상이라도 찾아볼까도 했지만 그러기 실었다.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나를 비교할 것 같아서였다. 아니 뭐라도 찾아보지 말았어야 했다. 욕 같았지만 무슨 욕인지는 몰랐을 때는 전혀 상처를 받지 않았는데 어떤 욕인지를 알고 나니 상처가 남는다. 과장이 말장난으로 사람의 마음을 긁으려 해도 뭔 말하는지를 못 알아듣는 표정으로 눈만 꿈뻑꿈뻑 할 때는 과장새끼가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질 때로 높게 말하면서도 화가 안 풀리는 듯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부터는 상처로 남을 때 나도 모르게 썩어가는 표정으로 바뀐다. 오히려 과장의 목소리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해도 화가 풀리는 듯했다. 내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긁음을 알아듣고부터는 깐족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옛날 노친네들 말 중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지금 같은 경우에 쓰는 듯했다.

“죄송합니다”

하나도 죄송하지 않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뱉어내야 한다. 그래야 톱 이 바퀴가 굴러가듯 과장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권위와 권력사용할 만 큼 사용하며 몇 마디 충고를 하고는 제자리를 찾아갈 테니 말이다. 입사하고는 일을 모르니 잘못됐다고 느끼는 것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머리가 돌아갈 때 쯔음에는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해서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건전한 논쟁 의견대립 이런 귀찮은 단어를 사용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자신에 말에 토를 다는 것은 핑계이고 말대꾸고 변명일 뿐이었다. 자기 계발책에 나오는 말들의 나열은 감기약처럼 먹히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입사초기에 행동을 다름 의미에서 똑같이 하고 있었다. 점점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왜 나아지면 안 되는 건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먹는 욕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예전보다 확연히 통상적이지 않은 불량 또한 많아졌다는 것을 누군가 혼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어서 원인에 대해서도 말할 수도 있었다.

‘덤 앤 더머 같은 새끼야’라는 말대신 ‘요즘 무슨 일 있어’라던지 ‘이유가 뭘까 우리 이야기해보자’ 라던지 하는 식으로 물었다면 ‘죄송합니다’라는 인스턴트 같은 말대씬 조금은 정성 들여 만든 요리처럼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해서 저러하다고 이야기해봐야 듣는 사람이 머같이 받아들인다면 말하는 사람만 기운이 빠지고 힘들 뿐이다. 평생 이곳에 일할생각이 있거나 이곳을 바꾸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힘들여 무언가를 관철시키겠지만 그럴 맘도 의지도 없기에 휴지로 똥을 닦듯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끝낸다. 찝찝함은 남아있지만 어쩌겠는가 공들여 똥을 닦아봐야 내일도 모레도 똥 싸는데 말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헛웃음이 나온다.

요즘 들어 일할 때 딴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딴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거울 속에 나를 바라보듯이 내면 속 나를 바라볼 때면 그럴 수밖에 없다. 모던타임스에 나오는 찰리 채플리가 나사를 조이다 미쳐버린 것처럼 나 또한 어제도 오늘도 분명 내일도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돌리고 있다 보면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다. 오히려 멀쩡한 정신을 부여잡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망상과 상상 어디쯤을 유형해야지만 제정신일수 있었다. 망상과 상상이 어떤 방어기제 같은 거다.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만든 백신 같은 것 같았다. 이것은 상상이고 망상이야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이라 꼭 집어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상상과 망상이 사라지면 월세는 생활비는 통장잔고는 이것도 저것도 같고 싶은데 이것도 저것도 하고 싶은데 ‘돈’ ‘돈’ ‘돈’ 머릿속에는 온통 돈에 관련된 것 많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돈’으로 머릿속이 온통 가득 찰 때면 끝이 없고 돌고 돌아도 해답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현실의 괴리에 허우적 된다. 그럴 때면 강한 압력으로 피스톨 운동을 하며 조용히 묵묵히 자신에 일을 하는 기계 안에 내 머리를 쑤셔 박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순순하게 내 머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박살 내주겠지 고통 없이 말이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쓰레기 같은 머리를 박살 내는라 힘들고 더러 원진 기계에게 미안할 뿐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늘 맘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스스로 울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면 불쑥 예전에 사귀었던 연인이 생각이 난다. 눈물을 닦아줬던 일 웃어줬던 일 여행을 같던 일 같은 함께 했었던 좋았던 추억이 지나가고 결국은 마지막은 연인과 격렬하게 몸을 썩는 추억과 상상 망상이 뒤범벅된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괴로움을 덜고 무거운 하루는 조금은 가벼워졌으며 내 마음이 가벼워 그런 것인지 시곗바늘 또한 가볍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어떤 막연함이 마음속에 스며들 때면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 김유신에 말처럼 머릿속 생각이라는 녀석이 알아서 상상하고 망상하게 된다. 상상과 망상을 할 때면 달고 단 소주를 마신 것처럼 마음에 드는 온도에 물속에 잠기는 것처럼 우주에 떠다닌다면 이런 기분일까 라는 감각이 느껴졌다.

만 양 기분이 좋아지는 것만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망상과 상상은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제레의 일류보안계획이 달성되거나 투모로우처럼 온 세상이 얼어붙어 벌이거나 우주전쟁에서 처럼 땅속에서 외계인이 튀어나오거나 아마겟돈처럼 행성이 마구잡이로 지구로 떨어지는 것 같은 그런 것들이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흐름에 종착지에는 나 혼자만은 꼭 살아남아 피범벅이던 흙범벅이던 어떻게 된 모습을 지켜보며 왕처럼 황제처럼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어디에라도 걸터앉아 멸망한 세상을 지켜보는 거다. 시린 바람이 불고 나는 웃는다. 입에 나오는 웃음소리에 따라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나는 죽는다.

“뭐 하냐 종 쳤어 밥 안 먹을 거야?”

유일하게 같은 나이에 지랄 맞은 곳에 오랫동안 버티고 여기서 같이 일하는 녀석이 멸망 중이던 저세상에서 날 끄집어내 밥시간이라고 알려준다. 처음 일했을 때 만해도 많이도 싸웠었는데 각자 친했던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둘만이 남았을 때부터 이 빌어먹을 곳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이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나가고 들어 왔구나 라며 생각이 든다.

유독 이곳만 그런가 아니면 근처에 다른 곳도 그럴까? 내가 일하는 곳이 별나다는 생각도 있지만 다른 곳도 아마 여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거짓말을 아주 조금만 보태자면 생산직 현장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뀐다. 숫자로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헉’하고 문제가 있다는 듯이 놀랄 수 있지만 현장꼬락서니를 실제로 본다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다 목디스크가 올지도 모른다.

어느 날인가 이곳 회사에 일했던 날 중 가장 만은 직원인 30명의 새로운 현장직원 뽑았던 적이 있었다. 기계가 멈추는 걸 제일 싫어하는 과장새끼가 기계를 잠시 멈추고 신입과 같이 공장을 둘러보며 공장에 대해 설명해 주라고 했다. 원래는 이렇게 하는 게 맡지만 대충 사람들이 배분되고 대충 잡일 하면서 알아서 분위기에 적응하게 놔두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잘됐다 싶었다. 담배생각이 간절했던 참이었다. 공장은 안 둘러보고 흡연장에 신입들을 데리고 가서 줄담배만 태웠다.

“공장 라인 안 둘러봐요?”

한 번도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보통은 저렇게 건방지게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질문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일하기 싫어 가만히 있거나 그런 게 아니다 라도 초면에 보는 어른사람이 뭘 하든 가만히 있기 마련인데 딱히 오래 볼지 안 볼지 모르겠기 때문에 화는 안 나지만 물어보는 아이를 빤히 보며 담배를 태웠다.

“너 담배 피우니”

“저 미성년자인데요”

어쩐지 얼굴이 청춘만화 같아 이것저것 물어보니 실업계고 취업 나온 거였다.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보다. 애내들도 나와 같이 최저임금을 받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인가 회사가 어렵다며 그나마 찔끔이라도 연차 붙으면 수당을 붙여줬는데 최저임금으로 동결시켜 버렸다.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그런 거 없이 전부 최저임금을 주니 결국 경력이 오래된 직원들 대부분이 회사를 퇴사했다. 아직도 기억이 남는 말이 있다. 퇴사를 하기 전 그래도 회사에 정이 있어 마지막으로 윗사람에게 이야기해봤었다. 임금을 조금만 더 주면 안 되냐고 그러자 그 윗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개나 소나 다하는 일 최저임금이면 됐지 뭐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일시 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구시렁 궁시렁되던 사람들조차 한마디 말없이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나중에 우연히 만나 길거리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그랬다. 그 말을 듣자마자 화도 안나더라고

“그래서 안 펴”

“네”

“다른 애들은...”

나에 물음에 햇빛 때문에 찡그리는 것인지 아니꼬워서 찡그리는지 모를 표정 으로 끄덕이는지 까닥이는 것인지 모르게 고개를 움직였다. 귀찮기도 하고 말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다 싶어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보통은 말 같은 거 잘 안 하지만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울 겸 말을 뱉었다.

“이곳에 열명이 일하러 들어온다고 치면 한 명은 현장 들어오자마자 가 또 첫 번째 쉬는 시간에 두 명 인가 또 점심 먹고 나면 두 명 인가 또 오후 쉬는 시간에 두 명 인가 그리고 잔업하기 전에 또다시 두 명 인가 그러면 몇 명이 남았지?”

서른 명이 떨 떨 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명이요.”

마지막 담배를 한 목음 피우고 연기를 하늘에 뱉고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털며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을 정도로 거만하게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출근할 것 같니 다음날”

“뭐라는 거야?”

유독 얼굴에서 광이 나는 한 녀석이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궁시렁되듯 말한다. 저런 무시에도 화도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화가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 멸시 무시 괄시 천대 하대 같은 거에 무디고 무뎌졌다. 생각했지만 스무 살도 안된 아이에게 저런 말을 들으니 발끈 하지만 조금이라도 감정에 변화를 느끼는 것을 들키면 지는 것 같아 참는다.

“구경 가고 싶니”

“당연한 거 아니에요.”

‘에버랜드 싸파리 왔니’ 딱 봐도 내일 안 나올 녀석이다. 일하는 곳에 구경이라니 뭐 어쨌든 오늘 제대로 달고 달게 ‘꿀’ 빨려면 뭐라도 하는 척은 해야 했다. 웬일로 과장새끼도 보이지 않겠다. 건성건성 최대한 길게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입은 아프지만 기계 앞에서 기계를 쳐다보면 머리를 집어넣고 싶은 걸 참는 시간보다는 나았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삼십 명 전원이 출근을 안 했다. 어쩐지 어제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출근하고 한 시간도 안돼 사라져 버렸다. 삼십 명 중에 한 녀석이 공장임원중 한 명에 자녀였다고 한다. 하도 공부를 안 해서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 조금은 느끼는 봐가 있을 거라나 뭐라나 하는 이유로 그 녀석이 내가 한 행동과 말을 아버지에게 모두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를 사장이 듣고 사무실에 듣고 사무실에서 아래로 아래로 털었다고 한다. 이상한 곳에서는 낙수효과가 기막히게 작동하는 것 같다. 최종적인 원흉이 나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뭐 일개 ‘사원’에게 뭘 하겠는가. 직급이 있나 그렇다고 깎을 임금이 있나 더열학한 환경에 일하게 만들 수 있나 그렇다고 그나마 오랫동안 다니는 직원을 자를 수도 없고 말이다. 개 같은 과장 새끼가 욕을 좀 먹은 듯했다. 자신이 화나서 갈구는 것보다 내림 갈굼의 위력이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원기혹을 모으는 것처럼 위력이 세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날 과장새끼의 갈굼으로 마음이 다져지지 않았으면 아마 뇌에 있는 필라멘트가 끊어지면서 ‘네 얼굴에 침을 뱉어라’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과장새끼를 처참하게 살인을 했을지도 몰랐을 거다. 이래서 사람들이 면역력 면역력 맵집맵집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빌어먹을 하루도 안 일해본새끼들이 입만 살아서 나불나불 나불 일하러 나왔으면 ‘쏘우’에 나오는 직쏘처럼 등 따시고 배부른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알게 게임하듯이 매일매일 뺑뺑이 굴렸을 텐데 그리고 그 아비라는 새끼는 공부 못하는 새끼를 현장에 보낸 심보는 뭐라는 거야 공부 안 하고 그렇게 잉여인간처럼 우리처럼 된다는 거야 뭐야 빌어먹을 자격지심 이런 거 안 키울 거라 생각하지만 빌어먹을 자격지심이 매일매일 자라난다 매일매일 빌어먹을 ‘조커’가 이 대한민국에 하루에도 수만 명씩 만들어지고 있을 거다. 리얼로다.

“야~ 야~ 또 무슨 생각해”

“아~ 아~ 미안”

“요즘 너 이상하다 계속 딴생각해 일도 설렁설렁 좋은데 구했나 봐”

“하~ 좋은 데는 이 세상을 하직해야 좋은 데야 지옥이 이곳보다는 났겠다. 그래 오늘은 어떤 쓰레기 같은 음식을 먹나”

식당에 오면 줄이 우리 집까지 갈 것처럼 서있어서 차라리 집에서 먹고 오는 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줄을 서는 것이 불만인 것은 아니다 불만은 다른 부서들이 많은데 항상 현장직에 있는 사람들은 뒤에 사무실사람들은 앞에 서있는 거다. 항상 매일 어쩌다 한 번도 없이 앞에 서있다. 어쩌다. 작업복을 입고 앞에 서있으면 바퀴벌레 보듯이 쳐다보다가 사무실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피아식별한 아군을 보는 것처럼 눈길을 거둔다. 이건 내 망상이고 상상이 아닌 리얼이다. 가만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현장직사람들이 다이야기 하는 거니 말이다. 가장 열받는 것은 음식이 배달해서 오기 때문에 음식이 없으면 채워지지 않는다. 쓰레기 같은 음식 중에도 어쩌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 하지만 뒷줄에 서서 줄을 서다 음식을 받을 차례가 되면 맛있는 음식이 없을 때가 있다. 그래 이것까지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중에 짬통을 보면 그 음식이 수북히 쌓여있다. 그나마 맛있는 음식이 말이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진짜 별거라고 아니라 생각하고 싶지만 화가 난다. 미치도록 말이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공부해서 남주냐고 제발 공부하라는 말을 귓등으로 들은 대가라 자기 합리화해도 밥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열여덟 가끔 동성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이 평등하다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개틀링건으로 쏘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가끔 진시황이 왜 분서갱유를 했으며 히틀러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해할 수 없던 일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 범주에 가까워지면 오히려 지난날 이해 하지 못한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야 오늘 웬일로 고기반찬이 있다.”

“보면 모르냐 사무실 직원들 나가서 밥 먹었잖아”

“저거 회사돈으로 먹는 거겠지”

“아니 듣기로는 저번에 회사 주식 오르기 전에 오를 거 알고 이사가 주식을 사서 이억인가 수익을 봤다나 봐 그래서 기분 좋아서 사무실 직원 밥사자 주나 봐”

“그거 불법이고 범죄 아니야”

“몰라 유전무죄 무전 유죄지 뭐”

“그러네 불법이고 범죄고 뭘 알아도 돈이 있어야 돈을 벌지 씨팔”

오랜만에 회사에서 먹는 질기다 질긴 고기를 질겅이며 사무실 직원들은 뭐 처먹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에 몸은 쓰레기 같은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면역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예전인가 같스무 살 된 도련님이 이곳에 일하러 온 적이 있었다. 조금은 특이한 도련님이었다. 보통은 자신이 고생한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어른인지를 말하려 하는데 이 도련님은 자신이 얼마나 곱게 자랐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블라블라 너무 곱게 자라서 그것을 극복 블라블라 그래서 힘든 것은 체험하기 위해 블라블라 왜 이곳에 입사했는지 이야기를 했었다. 얼마 전 임원 자식 트라우마가 있어서 설령 그렇다고 해도 말을 안 해줄지 알면서도 물어봤다. ‘혹시 공장에 아는 사람이 직원 있어’라고 도련님은 없다고 했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진심으로 체험하기 위해 그 어떤 연결고리가 없는 곳으로 이곳을 택했다고 했다. 이상하다 악의가 없고 생각 없이 햇살 같은 얼굴로 이야기해서 그 순간 도련님의 말을 듣고 있을 때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는데 집에 돌아가 단어한마디 한마디를 뜯어보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왜 그런지도 모르게 말이다.

아무튼 이 도련님에 불가촉천민 코스프레를 진심으로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우리 회사 밥을 먹지 않는 거였다. ‘도련님 체험을 제대로 하려면 딴 거 필요 없어 그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밥을 먹는 게 가장 끝판왕이야’라고 말했더니 도련님은 냄새가 별로 좋지 않다며 먹고 싶지 않아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순간 시골집에 막 키워지는 똥개가 된듯한 기분이었다. 시골집에 어렸을 적 할머니가 아침 점심 저녁 먹다 남은 음식을 그다음 날 한 대모아 팔팔 끓려 집에서 기르던 똥개에게 주던 기억이 낳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더 기분이 상해 꾸역꾸역 꼬드겨 도련님을 테이블 위에 앉혔다. 테이블 위에 앉히기가 힘든 것이지 앉혀 놓으니 일사 철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그런 도련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을 라이브로 생생하게 지켜봤다. 음식을 한입 먹자마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호흡곤란이 난 채로 앰블에 실려 같었었다. 그때 진짜 곱게 자란 도련 님이구나 하고 알았다.

도련님이 실려가고 다음날 과장새끼가 우리를 안 좋은 눈으로 봤다. 간간히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도련님은 공장사장에 친구에 아들이었다고 했다. 사장이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죄인이 된 것처럼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다 몇 분 후에는 언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누굴 거치지도 않고 과장새끼를 바로 불러올려 욕을 꽂았다고 한다. 그 험한 말을 들었지만 째려볼 뿐 도련님 앰블사건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짜 맞추어 하나에 뇌피셜을 만들었다. ‘과장은 왜 도련님 앰블사건에 대해 아무런 지랄병을 하지 않는가’

회사 밥에 대해 소문 같은 진실이 있었다. 이곳 근처에는 여러 공장이 있었는데 다른 공장점심이 다른 공장 저녁이 되고 다른 공장 저녁이 다른 공장 아침이 되고 다른 공장 아침이 다른 공장 점심된다는 소문 같은 진실이 있다. 그렇게 뺑뺑이 돌은 음식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손이 탔는지 모르게 우리에 입속에 들어간다 아니 아니 짬처리가 되는 거다. 그리고 이 식당에 주인이 근처에 있는 사장들 몇몇이 지분을 나누어 만든 식당이라는 거다. 혹여나 일이 커질까 욕을 하고 싶지만 우리에게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무실 녀석들과 같은 똑같인 짬처리된 음식을 먹으니 공평한 걸까 라는 합리화를 하게 된다.

점심시간 한 시간 줄 서는데 십오 분 밥 먹는데 오분 나머지 사십 분 동안 이딲고 쪽잠 자는 사람도 있고 잠깐 산책하는 사람도 있고 잠깐 족구 하는 사람 탁구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곳이 한국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유일한 회사동료는 이백원 짜리 믹스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태우며 수다를 떤다. 대부분이 신세한탄이 너무 욕하는 일이 대부분인 수다다. 한때 어떡해서든 멀쩡하게 살아보려 읽었던 자기 개발서에는 너무 욕하지 말라고 쓰여있었지만 그 사람이 여기 일 년 동안 일했으면 미국사람이라서 아마 욕을 하는 대신 리볼버 총으로 누구에 대가리에 빵구를 냈을 거다 아마도 그나마 우리는 한국사람이라 자랑스러운 세종대왕님의 한글의 변화무쌍을 이용해 총으로 대가리를 빵구내는 대신 좋게 좋게 욕만 하는 거다. 진심으로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에 신에 한수는 아마도 총기소지하지 못하게 하는 거일 꺼다. 안 그랬으면 대한민국은 내전으로 초초화 되지 않았을까 전쟁이나 내손에 총이 쥐어지게 된다면 과장 놈에 아가리에다가 총구를 박어넣고 연사로 갈기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만으로 어쩐지 오르가슴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스스로 느끼지 마 정상적인 범주에 쾌락으로 통하는 회로가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딩동댕동댕동댕-

밥시간에 틀어주는 클래식음악 작업시작과 종료시간에 알려주는 져 빌어먹을 딩동댕동댕 어느 소설책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에 세상과 이곳과 뭐가 다를까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퀼리브리엄’에 나오는 세상에서처럼 저런 클래식음악을 모조리 박멸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진정해라고 재생시켜 놓은 신경도 안 쓰이는 클래식 음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날 부터 인간 염장을 지르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주위 곳곳에 붙은 스피커에다가 화염발사기를 쏘아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스피커가 문제가 아니라 스피커에 소리를 나오게 끔하는 누군가가 문제라는 것을 알지만 어쩐지 스피커가 원흉인 것 같았다.

얼마 없는 점심시간이지만 그것마저 5분 일찍 들어가서 일할준비를 해야 한다. 정각에 들어가면 한다는 소리가 ‘똑같이 밥 먹고 똑같이 쉬는 대 어떻게 늦을 수가 있지’라고 말한다. 그 말에 본능인지 반항인지 손목에 있는 전자시계를 보면 58분이다. 솔직히 늦은 건 오후1시까지 점심시간인데 12시 58분에 왔다고 뭐라 하는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할 때쯤이면 과장이라는 새끼는 그 마음을 읽었는지 ‘당신들이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하란 말이야 당신이 사장이 되었다는 마인드로 일을 하면 이러게 게을러질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 빌어먹을이라는 말이 나올 때쯤 그때 그 일을 생각난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 같은 포지션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과장새끼도 대리였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어떤 사람이 정각에 현장에 복귀를 했다. 일분이 지난 것도 아닌 정확히 정각에 말이다. 늦었다면 십초 정도였을 거다. 그것도 자주도 아니고 그날 처음 그리고 딴 이유가 아니라 지금에 과장 그 당시 대리였던 새끼가 당장 수량 맞추어야 한다고 빡빡 우겨서 점심을 늦게 먹은 거였다. 대리새끼가 점심시간 삼십 분 더 줄게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정각에 왔는데도

“딴 사람 안 보여 딴사람은 병신이라서 미리미리 준비해 똑같은 밥 먹고 똑같이 쉬는데 어떻게 늦을 수 있어?”

어떤 사람은 평소 말이 없이 일했던 터라 과장새끼에 잔소리 몇 마디 듣고 끝낼 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은 대리를 손가락 가리키면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다. 어버버 하게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누가 들어도 논리정현하고 납득이 가게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 대리새끼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가듯이 일을 마무리 지었으면 될 텐데 그 당시 과장새끼는 왜 그런 똥고집을 부렸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다고 먼저 이야기하고 늦게 왔어야 할거 아니야”

모두가 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시계를 보았다. 13시 04분이었다. 어떤 사람이 늦은 시간 때문에 기계가 안 돌아간 시간보다. 과장새끼의 무엇인지 모를 것을 지키는 시간 때문에 기계가 안 돌아가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면서 이 시간에 일이 진행되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돈을 까까 먹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을 듣던 어떤 사람이 옆에 있던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과장새끼를 포함한 모두가 숨소리조차 죽였다. 그리고 자신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치와와처럼 망치를 든 <어떤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왜 그걸로 내 머리 찍으려고 찍어봐라 찍어봐라”

과장새끼는 나름 자신도 생전수전공준전을 겪고 이 자리에 올라왔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객기를 부리듯 이 구역에 미친놈은 바로 나라는 듯이 어깨를 과하게 열어 져치며 화를 냈다. 웃긴 건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는 거다. 그때 오히려 <어떤 사람>이 과장새끼에 정수리에 올드보이에 나오는 오대수처럼 마구잡이로 찍어버렸으면라는 상상을 했었다. 아무리 과장새끼가 개새끼여도 너무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주위사람의 눈빛을 훔쳐보았는데 헛움음이 나왔다. 관상이라던가 독심술이라던가 그런 것을 일절 몰라도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더 놀랍도록 웃긴 건 주위를 둘러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거다. 모두라고 말하지 않은 건 더 끔찍하고 잔인한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피분수를 상상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과장이 있는 쪽으로 망치를 던져버리고는 과장에게 등을 돌리고 천천히 걸어 같다. 과장새끼는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은 사자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는 돼지가 멱따이는 소리처럼 과음을 질러 됐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안서 일루 안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어떤 사람>이 등을 돌려 과장에게 이야기했다.

“명령하지 마 반말하지 마 이제 이 회사 직원 아니야 알았어 병신 같은 새끼가 어디서 오라가 라야”

아직도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다. 그 당시 과장새끼의 표정과 지금의 과장새끼의 표정을 말이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직원들은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역전장면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항상 마음속에 어떤 사람이 했던 장면을 품고 있었다. 나도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저러리라고 ‘원티드’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통장잔고를 확인하자마자 지랄병 하던 상사에게 엿 먹어를 시전하고 평소 탐탁지 않게 여기 던 친구의 면상에다 키보드를 후려갈길 준비가 늘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오줌을 싸는 것도 아니고 물 한잔 마시는 것도 아닌 통장잔고부터 확인하는 거다. 통장잔고는 제자리걸음을 벋어나지 못한다. 더해지지만 금방 빠지고 더 빠지다 빠지다. 겨우겨우 제자리걸음으로 오기만 한다.

점심 먹고 세 번째 타임이 가장 시간이 잘 간다. 멈췄던 기계를 다시 가동시키고 짧은 점심시간이 그래도 도움이 되었던 것인지 쥐꼬리만 한 의욕이 다시 차오르기도 하고 오전동안 일하며 차올랐던 안 좋았던 감정이 그나마 가라 않기도 했고 뭐 이것저것 다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과장새끼가 점심 처먹고 세 번째 타임에는 껌을 질겅이며 폰을 보며 게임을 한다고 눈에 잘 안 띄기 때문이다. 차라리 저러고 있는 게 가장 마음이 편하다. 일한답시고 꼴값을 떠는 것보다 저렇게 가만히 폰게임하는 게 도와주는 거다. 세 번째 타임에는 이상하게 목이 탄다. 점심에 먹은 음식들을 염전 근처에서 요리를 하는지 짠 것이 대부분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식당에서 물을 잔뜩 마시고 들어와야 한다. 안 그러면 버티기가 힘들다.

이런 나에 말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정수기 없어 정수기 물 먹으면 되잖아’ 맞다 정수기 물을 먹으면 된다. 근데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려면 빌어먹을 과장새끼 옆을 지나가야 한다. 처음부터 정수기가 저기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장내부에 정수기가 있었다.

유난히도 더운 날이었다. 현장은 찜통이었고 결국 당연히 사람들은 물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물을 자주 먹다 보면 아무리 땀을 많이 흘려도 오줌보는 차오르기 마련이고 화장실을 가는 빈도도 많아졌다. 그 모습을 본 높으신 누구인지 모르는 누군가가 한소리를 했던 것 같다. 결국에는 정수기는 밖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현장에는 물이 없다고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마셔야 하지 하는 범주를 떠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현장에 작업자들은 물병을 하나씩 들고 왔지만 그 모습을 본 윗분 한 명은 물병에 무엇이 들었을 줄 아냐며 치우라고 말했다. 결국 물병을 치웠다. 대신 사람들은 누가 봐도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자신들에 눈에 집요한 작업자들 모습에 화가 난 윗분 누군가가 화가 나버렸고 결국에는 현장에 있는 모든 정수기를 치워버렸다.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 할 일인가라고 생각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했다. 웬만해야 욕이라도 하며 사람을 씹을 텐데 웬만하지 않으니 욕도 나오지 않았다. 백주 대낮 허허벌판에 난 염전노예를 부리는 사람이라고 확성기로 떠드는 사람 같아 보였다. 조선시대에 지주들도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결구 터질 일이 터져 버렸다. 될 다라 되라는 식으로 욕을 먹으면서도 물을 먹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욕한 마디 들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결국 탈수증세로 현장에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119가 오고 누군가 신고해 경찰까지 오게 되었고 이일로 고용노동부에 신고가 들어가 현장에 오게 되었다. 결국 현장에 음료 할 수 있는 왜 아무것도 없냐는 지적과 벌금을 물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뒤에 정수기가 다시 생겨났다. 하지만 거의 반 장신용으로 말이다.

친구와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 이일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그런데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그냥 상황을 과장해 이야기하는 거라 받아들였다. 친구가 말을 믿어 주지 않을 때 답답하기도 했지만 거울치료랄까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다. ‘라떼는 말이야’라고 자주 떠들어 되면 지금은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는 겉으로는 ‘네네 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어쩌란 말이야’라고 했었다. 지금에 내일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친구가 음식을 쩝쩝되며 말한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곳이면 다른 데로 가면 되잖아’라고 말이다. 마음은 수십 번이 먼가 수백수천 번은 그런 마음을 먹었다. 이곳이 처음 직장이라면 난 친구에 말을 듣자마자 일초에 망설임 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빌어먹을 내가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이 너 같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데서 일하면 되잖아’ 하지만 다른 대가로 일해봐야 그곳이 상상 속에 나오는 에버랜드일 확률보다. 더 끔찍한 곳일 확률이 무한대로 높다.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고 날 괴롭게 하는 상황은 여전하다. 한 번이면 처음인 회사를 욕하지만 여러 번이면 내문제일 거라 생각하며 이런저런 책을 읽어봐도 상식과 통념이 안 통하는 곳이 있다는 걸 뭐랄까 조선시대에 마인드를 배워서 구석기시대에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이해할지 모르겠다.

꾸역꾸역 버텨서 짬이 차면 인금은 최저임금일지 모르지만 수당이 붙는다. 그것이 쥐약인지 미끼인지 이 빌어먹을 곳을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족쇄였다. 다른 곳에 가서 완벽한 일상에 회사일 확률이 마이너스 오만 퍼센트여서 쉽사리 이직을 할 수 없다. 꿈과 희망이 넘치는 회사에 가는 확률이 백퍼센트라면 임금이 적더라도 난 롸잇나우 사직서를 과장면상에 떠질 거다.

이런저런 생각에 세 번째 타임인 후루룩 지나간다. 하지만 지옥 같은 네 번째 타임이다. 시간이 진짜 안 가는 날에는 오히려 잔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잔업이 생기면 이상하게 네 번째 타임이 후루룩 지나가는데 잔업이 없는 날에는 작업종료 삼십 분 전에 오전부터 일했던 시간보다 더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다. 무식한 나라도 아인슈타인에 상대성이론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빌어먹은 시간과 공간에 방에 가쳐 지내는 경험 때문일 거다. 잔업이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빨리빨리 이야기해 줬으면 하는데 빌어먹을 과장새끼는 빨리 말하지 않는다. 뭐 이해는 간다. 잔업이 없다고 말했다가 다시 있다고 번번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청에 뭐랄까 숙명이랄까 그럴 수밖에 없다, 원청에서 퇴근시간 다되어 전화 한 통화 메일 한통으로 갑자스럽게 발주를 넣거나 불량을 트집 잡는 날에는 번번이 된다. 과장새끼도 몇 번 일찍 알려줬다가 고립된 된 적이 있었다. 한두 번이야 찍어 누르면 되지만 세네번 쯤 되면 아무리 힘없는 말단 직원도 반발이 생긴다. 잔업 없다고 마음속으로 할 일들을 다 계획했는데 잔업이 다시 생겼다고 하면 화가 난다. 처음이야 뭐 집에 가면 뭐 하나 돈이나 벌지 그리고 점오를 더 받지 않는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거다. 하지만 일이 반복되면 화가 난다. 더군다나 잔업을 안 하는 날보다 하는 날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돈도 좋지만 일터에 열 두시간 이상을 묶여 지내면 미쳐버린다. 출퇴근 때문에 바닥에 버리는 시간을 포함한다면 열두 시간이 뭔가 더 많을 거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과장새끼는 잔업이 있다 없다를 근무시간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알려준다. 진짜 진짜 퇴근할 때쯤에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몸에 시간은 잔업시간에 맞춰져 있다. 그러다 잔업 안 한다 그러면 그 순간이야 기분이 좋겠지만 몇 시간 지나고 다음날 출근날이 되면 난 뭐 했지 일찍 퇴근해서 뭐 했지 한다. 잔업이라도 했으면 돈이라도 벌었을 텐데 어중간하게 일찍 맞춰서 오히려 다음날이 더 피곤하다. 세 시간 일찍 마친 거에 취해 술이라도 마시는 날이면 거의 반시체로 출근해 아사직전 숨꼴닥꼴딱 넘어가기 일부직전에 퇴근해 다음날 겨우 회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리고 일찍 마친 다음날은 과장새끼에 생색은 덤이었다. 푹~쉬었으니깐 더 열심히 하자고 말한다. 그럴 때면 정신병자냐고 말하고 싶은걸 입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걸 겨우겨우 참는다. 어떤 때는 마구 때리는 상상마저 할 때도 있었다. 칼을 손에 쥐소 입을 찢는 상상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과장새끼는 수많은 상상 속에서 시체가 되고 있을 거다. 어쩌면 지금까지 지나간 사람 속 상상 속 과장새끼 시체를 합치면 지구에 인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시계가 퇴근시간 삼십 분 전을 가리킨다. 눈치게임이다. 잔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계를 정리하고 잔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동시킨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둘 다 낭패다. 잔업을 하면 잔업 전에 기계 정리했다며 그러면 잔업하는 의미가 있냐며 한소리를 먹을 테고 정리를 안 하고 있을 때 잔업이 없다고 하면 부랴부랴 기계정리하려고 들면 늦어진다. 그래서 이때 사람들은 기계를 작동하데 있어 필수적인 것만을 이용한다. 나머지는 모두 정리한다. 이런 식으로 과장은 쥐어짜듯이 일을 시킨다. 이럴 때 보면 관리자를 범주를 벋어나 이공장에 지분이 있을 것 같은 합리적인 의심이 들 때도 많았다. 너무 사장 같은 마인드로 일하니 우러러봐야 할지 혐오를 해야 할지 헷갈린다.

과장새끼가 생색을 내는 목소리를 낸다. 잔업이 없는 듯하다. 이런 게 기분이 더럽다. 과장새끼에 목소리만으로 의도와 결과를 알아마춰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그의 정신적 지배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것이 너무 싫다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책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 말들을 적은 것들이 있지만 그런 책을 수십수백 번 읽고 머릿속에 되네어도 정작 막닥드리면 그런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빨리 이런 생각을 잠재워야 한다. 안 그러면 오랜만에 잔업이 없어 여유로워진 세 시간이 이런 생각으로 허공에 버려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나에게 있어 이런 일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방법이 있다. 특별한 것은 아니다. 청소를 하면 된다 청소라는 것은 명료한 것이다.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청소를 한다. 노래를 듣는 중간중간에 분명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침공해 온다. 그래로 끊임없이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한다. 청소가 끝났다고 해서 감정에 침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꾸준히 감정이라는 것은 타올랐다가 사그라들고 분출했다가 가라앉는다. 하지만 그런 것들 들끊는 와중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나중에 뒤를 돌아봤을 때 어떤 좌절감 마저 생긴다. 그러니 청소를 해야 한다. 청소를 하면 적어도 뒤돌아 봤을 때 명료함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모두들 일하는 동안 묻었던 더러운 것을 털어내고 퇴근 타각을 하고 통근버스에 몸을 싫는다. 퇴근하는 통근버스 않은 어쩐지 포근한다. 출근하는 통근버그는 어쩐지 써늘한데 말이다. 몸도 지치고 통근버스 않은 따듯하고 집까지 도착할 때까지는 삼사십 분에야 집에 도착한다는 생각에 졸음이 밀려온다. 하지만 잠들면 안 된다 자게 되면 빌어먹을 통근버스기사는 무심하게 내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가버린다. 몇 년을 같은 자리에 오고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면 한 번쯤은 왜 안 내리는지 물어보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에게 어떠한 신호도 주지 않으면 그는 그냥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서운하냐고 묻는다면 예전에는 ‘예’ 지만 지금은 ‘글세’ 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아니요’가 아니라 ‘글세’라고 말하는 이유는 나 또한 그렇기 때문이지만 나에게 닥치는 일이 되면 서운한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 적이 있었다. 손해를 보면서 말이다. 조금 더 오래 일했으면 하는 맘도 있지만 그래야 나 자신에 대한 존엄이라는 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을 도와주다 내 할 일을 못해 욕먹기도 했지만 상관없었다. 영화에서 의미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각자가 원하고 생각하고 바라는 건 다 다르니 말이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존엄’ 이니 뭐니 웃음이 나온다. 새로 온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해도 그들은 오랫동안 일하지 않았으며 배려가 배려로 돌아오지 않더라도 최소한 배신으로 돌아와서는 안되는데 그런 경우도 더러 있었다. 어쩌면 배신까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에 예의는 지켜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국에 난 내가 욕했던 통근버스기사처럼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정해진 코스 정해진 시간 정확히 문이 닫히고 열리는 것만 확실하게 지키면 되는 정확하게 만 움직여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 같다. 조금은 불편한 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남들이 왜 저러지 하는 눈으로 볼 때면 내가 죄인 이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것도 순간이다. 어느 정도 지나면 그런 감정 또한 사라진다. 오히려 내쪽이 그들이 이상하게 보일뿐이다.

통근 버스에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달이 무척 크게 보인다. 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고개를 들어 올려 밤하늘을 볼 때면 커다란 보름달이 날 바라본다. 겨울에는 써늘한 바람이 여름에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나에게 있는 어떤 것을 자극한다. ‘도대체 뭐 하고 있냐고 계속 쓸데없는 것에 인생을 낭비를 왜 하고 있냐고’ 생각이 든다고 해서 해결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누군가들처럼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타성에 젖어들어 고무줄이 늘어날 때로 늘어난 생각처럼 금세 원하게 되고 돌아가 집에 돌아가서 어떤 맛 치킨에 어떤 맥주를 한잔을 하면 어떤 영화를 볼지에 대한 것으로 온통 머리 안 속을 채운다. 어떤 실험채에 개처럼 머리 안 속이 침으로 흥건하게 젖어버린다. 그리고 속으로 되네인다. ‘나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야 적당한 스트레스 적당한 노동 그리고 적당한 행복이면 그럭저럭 만족하게 사는 거야 그렇지 동의하지’라고 말이다. 날 속이는 마법에 주문을 계속해서 건다.

집으로 들어간다. TV속 광고에 나오는 행복해 보이는 집모습을 상기시키며 말이다. 어둠 속에 브라운관에 비친 불빛이 아롱 인다. 굽어진 허리로 방바닥에 쪽 그려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뭐라도 먹지”

“왔나 밥은 먹었나”

힘이 없어 보이는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봐라 보며 초점이 없는 멍한눈으 그래도 자식이라고 밥걱정을 해준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가끔 안쓰러우면서도 가끔은 화가 난다. 아니 자주 아니 매 순간 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이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년이 씨발년 좆같은 년 개 같은 년.......”

평범한 대화를 하다가도 아버지는 가끔씩 소주를 한잔식 마시며 안주를 먹듯이 혼자서 저리 중얼거린다. 아버지가 멀쩡했을 때 어머니가 저랬었다. 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에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노래쏘리를 따라가면 어머니가 소주와 담배 그리고 노래에 젖어 날 바라보며 웃었었다. 그런 어머니가 질려 어머니를 몰아붙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에 바램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며칠만 내가 알던 어머니에 모습을 보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점점 아버지가 어머니에 그 모습처럼 변해 같다. 가끔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몇 년 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떻게 이렇게 돼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변변치 않은 자식여서 그런 것인 가라는 생각만 도배된 적도 있었지만 맨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진짜 그런 것 같아 미쳐버릴 것 같아 그런 생각을 지우고 어느 순간부터 부모님에 원망을 했던 것 같다. 고집스럽게 자기 연민을 부려야지만 살아질 맘이 생길 것 같았다.

“배달이라도 시킬까 뭐 먹을래?”

“고마워 됐어 피곤하겠다. 자, 나도 딱 한잔만 더하고 잘게”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도 피곤했다. 피곤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피곤해야만 했다.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근다. 불을 켜고 컴퓨터를 킨다. 그리고 가방에서 집에 오기 전에 사 왔던 친킨과 캔맥주를 꺼낸다. 그리고 컴퓨터로 어제 보다가 만 영화를 재생시키며 닭고기와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잔상으로 맴도는 머릿속 일들을 하나둘 지워 나간다. 그리고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 속 인물들에 이입을 하게 되면 몸안 속에서 따듯한 것들이 올라온다. 그것이 날 힘이 나게 한다. 거울을 속 날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방에는 거울뿐만 아니라 날 어렴풋이 비취게하는 어떤 것도 두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에 붙어있는 거울만큼은 어쩌지 못했다. 최대한 안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쩐지 화장실에 갈 때면 보게 된다. 그러면 몸 안에 돌고 있던 따듯함이 식어버리고 거울 속에 나를 빤히 보게 된다. 그리고 망령들이 나에 뇌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중독되듯 얼굴 속 나 자신을 뜯어본다. 곳 목을 졸라 죽여버려야 하는 원수처럼 말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어떨 때는 십 분도 안 있었던 것 같았는데 두 시간 동안 거울 속 나를 쳐다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어쩌면 미쳐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작 미친 자신은 자신을 모르니 그런 건 아닐까 아니야 내가 이렇게 인지 어쩌면이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은 미친 것이 아니야 진짜 미친놈들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니 난 미친 게 아닐 거야라는 것에 말꼬리에 말꼬리를 문다. 이런 망영들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빌어먹을 도수가 더 높은 걸로다 사 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도수가 높은 것들은 대게 비싸다. 얼마 차이도 안 나지만 그래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빌어먹을 로또를 사는 돈으로 술을 샀으면 되지만 로또는 희망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다.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거실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에 숨소리가 들려온다. 무척이나 시끄럽게 말이다. 어머니가 가끔 나에게 했었던 말이 있었다. 어렸을 적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안 좋은 곳에서 살았다고 아버지는 늘 밖에 있었고 늘 집에 너와 내만이 있었다고 그래서 바람소리만 들려도 무서웠는데 어느 날 무서워하는 나에 손가락을 네가 꼭 움켜쥐었는데 그 순간부터 너에 숨소리만 들어도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않았노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그 말을 그 순간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는 이해했지만 그날 어머니가 느꼈을 그 어떤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시끄럽게 들려오는 아버지에 숨소리를 들으니 어머니가 느꼈을 그 어떤 것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이라는 것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가도 가끔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맥주 담은 잔을 만지니 미지근해졌다. 알코올이 날 도와주기를 바라서 잔뜩 사 온 맥주는 한 캔도 다못마시고 있었다. 배가 터지는 느낌이 들도록 먹으려 산 치킨 또한 몇 조각 먹으니 못 먹게 되었다. 멍하니 치킨과 맥주를 바라보며 아버지에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잠이 미친 듯이 밀려온다.

남은 치킨과 맥주는 내일 먹으려 옷장 서랍 안에 넣둔다. 컴퓨터 끄지 않는다. 볼륨을 죽이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재생시켜두고는 바닥에 누워 얇은 이불을 몸에 걸친다. 온몸에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묻은 냄새들이 역하게 풍겨오지만 잠시뿐이다. 몸을 깨끗이 하고 자면 더 좋은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씻고 다시금 이불속에 들어오는 과정까지가 머릿속에 그려져 귀찮아진다. 졸음이 더욱 미친 듯이 몰려온다. 그리고 내일 씻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알람을 맞추고 일어난다고 해도 아슬아슬하게 통근시간에 맞추어서 일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씻고 나가기는 한다. 오분만에 할 수 있는 걸 지금은 하루종일 해라고 해도 못하겠다. 몸이 천근이고 만근이다. 술을 마시기 전에 모든 것을 후딱 해치웠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눈을 떠보니 삼십 분에 여유가 있었다. 늦게 일어났을 때보다 어중간하게 여유가 있는 이 시간이 오히려 더 무섭다. 여유 있으니 미적미적되다 더 늦게 된다. 아~ 여유 있다고 생각할 때 재빠르게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오분만 오분만 하다가 결국 늦어버리고 만다. 일분도 일초도 늦으면 안 된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없으면 통근버스는 망설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오분 게으름 피우게 되면 택시비에 늦어서 출근하는 시간 늦어져 버리면 일분만 늦어도 한 시간 일한게 날아간다. 그리고 만근수당도 날아간다. 결국 오분이 그냥 오분이 아니다. 돈으로 따진다면 상당한 액수에 오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이 번쩍 이 든다.

부랴부랴 씻고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소 천천히 걸어간다. 십 분에 여유가 있으니 맨날 뛰어간던 길도 걸어가게 된다. 아침공기가 차다 그리고 맑다 아침에 마시는 공기를 마시다 보면 통근 버스가 서는 그 자리에 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충동적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싶지만 관성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통장계좌가 날 목줄을 채워놓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딱 이 정도까지에 상상만으로 끝나버린다.

회사에 입구에 줄들이 길게 서있다. 출근도장을 찍기 위해 타각기 앞에 늘어진 줄이다. 빌어먹을 출근기계 그냥 출근하는 것도 힘든데 긴 줄을 보고 있자면 숨 막혀온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백만범쯤 참다 겨우겨우 타각을 하고 현장으로 걸어간다. 현장에 가는 길에 파고라가 하나 있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파고라에 있는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먹으며 담배를 태우고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한다. 출근할 때마다 과장새끼는 파고라 커피자판기가 있는 곳에 실실 웃으며 서있다. 자신에 돈으로는 절대로 커피를 뽑아 먹은 적이 없었다. 저 로거 저 웃음으로 서있으면 누구 하나라도 불편해 커피 한잔을 사주었다.

처음 이곳에 일할 때는 이유가 없었다 집구석에 그냥 있으면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명목이 없었다. 땅을 파서라도 십 원짜리라도 벌어와야 살아갈 이유를 하나 얻는다는 마음이었다. 이곳에 일하면서 알았다. 사람이 돈을 버는 이유는 하기 싫은 것과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권리를 찾는 과정인 거다. 그 과정 중에 고통스러운 것은 빨리 그 자유를 쟁취하라는 채직질 같은 거다. 그래서 난 오늘도 빌어먹을 곳에 와서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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