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불장난을 좋아 했어더랬다. 무언가를 태웠을 때 사그라드는 무언가에 이끌려 계속해서 무언가를 태웠었다. 처음에는 휴지 한 장을 태우거나 그다음에는 공책 한 권 그다음에는 책 한 권 이런 식으로 태우는 양이 늘어 같다. 큰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행 어리다는 것이 무기가 되어 작은 실수라는 말썽쟁이 한 명이 버리는 깜찍한 사고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똑똑 해 져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말이다.
어른이 되어 난 나만에 공간을 만들었다. 순전히 무언가를 태우기 위한 공간말이다. 타의나 자의로 누군가 얽혔을 때 생기는 더럽고 기분 나뿐 감정을 나만에 공간에 와 무언가를 태우면서 감정 또한 태워댔다.
“넌 취미가 뭐야 특기가 뭐야?”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범죄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거야 같은 일반적인 대답을 한다. 한때는 인간에 삶이란 ‘자유’라는 말에 현옥 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타인이 이해는 아니더라도 그냥 그런값다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솔직히 말한 적이 있었다.
“난 무언가를 사그라들게 하는 게 내 취미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사그라든다는 게”
“그게 무언가를 태우는 게 내 취미야 그러려고 나만에 공간까지 만들었는걸~”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입꼬리와 눈꼬리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표정을 아무리 잘 숨기는 포커선수들도 아마인상이 틀어질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었다. 그 이후로는 모범답안 같은 말들을 찾기 시작했었다. 그 누구나 따분해할 만한 질문에 답 같은 거 말이다. 다음에 물어도 물어도 똑같이 대답해 줄 수 있는 말 같은 거 말이다. 나에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부터는 연기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다.
돈을 불에 태운적이 있었다. 묘한 찌릿함이 있었다. 금액이 큰 지폐일수록 묘하게 더한 찌릿함이 있었다. 종이이지만 따듯한 밥 한 끼가 될 수도 있는 종이를 태우는 것 그리고 그 가치에 절박함을 아는 사람이 지켜볼 때 자신에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 때에 그 쾌감 쾌락은 잊히지 않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그냥 태워지는 무언가가 아닌 누군가가 가치를 부여한 무언가를 태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것이 말이다.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훔쳐 형태를 알아볼 정도로만 태워서 제자리에 같다 놓고는 했다. 태워진 그 무언가를 보며 반응하는 그 모습들이 한결같지 않고 반응 들이 너무나도 다 다르다는 것이 날 더욱더 미치게 하고 절대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물건에 가진 사연 그것에 의미 사람들에 성격 성향 사회적 위치에 따라 모두들 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화내기도 꾹꾹 참기도 화냈다 웃기도 아무튼 그런 변화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우연히 나와 같은 부류를 본 적도 있었다. 다른 형태로 즐기고 있었지만 말이다.
“넌 왜 물건에 집착하는 거야 살아있는 것이 더욱 짜릿해.”
살아있는 것이 더욱 유쾌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다. 옆집에 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애완견을 사고처럼 태운적이 있었다. 반쯤 타 죽은 개를 바라보며 울고 불고 하던 모습에 찌릿찌릿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집에 똑같이 생긴 애완견이 아이와 놀고 있었다. 아이는 다시금 예전처럼 해맑은 웃음소리 내며 개와 뛰어놀고 있었다. 다시금 애완견을 똑같이 만들어 줄까 하다가 생각을 다시금 바꾸었다. 평소 아이에 옷에는 토끼모양에 플라스틱 열쇠고리 인형을 차고 다녔었다. 어떤 옷을 입던 어떤 순간에도 항상 그것만은 옷에 채워져 달랑거렸다. 어떤 게 느껴졌다. 저 물건이 날 재미있게 만들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렵게 아이에 열쇠고리를 훔쳤다. 열쇠고리가 사라진 것을 안 아이는 엉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참을 그곳에 헤매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다음날에도 열쇠고리를 찾으려고 잊어버린 곳으로 와 바닥을 훑어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구할 수 있다면 열쇠고리 인형을 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인데 찾겠다고 몇 날 며칠을 헤매는 모습이 어쩐지 새로운 감정이 내 몸을 휘감게 만들었다.
일주일정도 지켜보다. 열쇠고리를 반쯤 태워 그 아이가 찾아 헤매던 장소에 버려두었다. 변함없이 아이는 열쇠고리를 찾으러 길거리를 헤매었고 반쯤 타버린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아이는 타버린 열쇠고리를 손에 꼭켜지고는 주위를 두리번 되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에게서 느낄 수 없는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살의’를 내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붉어진 아이에 눈빛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쿵쾅였다. 쿵쿵쿵 쿵쿵
자신의 부모를 본 아이는 ‘살의’가 사라지고 눈물을 뚝뚝뚝 떨어트리며 울기 시작했다. 한생명보다 가치를 부여한 한 물건을 더집착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생명을 통해 더한 쾌락을 찾으려던 나는 평소해왔던 것이 진정한 쾌락이었음을 확인하다니 웃음이 나왔다.
원하는 가치의 ‘양’이 저울질될 뿐 생명보다 물질을 택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신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사람도 있겠지 그건 자신이 시험당하지 않았을 때에 일이다. 자신에 키우던 애완동물과 백만원이 둘 중 타버리는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애완동물이라고 그렇다면 천만원은 그렇다면 오천만원은 그렇다면 일억원은 이정도 가치에서도 한 생명을 택한 당신은 사람얼굴을 한 사람일 거다.
내가 보아온 내가 겪어본 대부분에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염세적’으로 사람을 바라본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물론 그럴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 또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쿡쿡쿡쿡 그것을 찾는 행복을 누리며 살기로 했다. 이제는 세상이 공간이다. 분명 평생을 바친다 해도 절대 후회가 되지 않는 일이 될 거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