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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 한스푼 May 30. 2024

기대려 하지 말고 굳건히 서라

학창 시절 한문 시간을 좋아했다. 한자는 상형문자인데, 그 설명을 듣는 것이 그렇게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스토리가 들어간 한문 수업은 그렇게 재미있었다. 아마도, 인문학적인 내용이 담긴 과목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한문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글이자, 흔하게 쓰이는 글자가 있다. 


그건 바로 사람 인(人) 자(字)이다.

 

사람인에 대한 간단한 상형 스토리를 설명하자면, 양쪽에 있는 작대기가 모두 사람이다. 그러니 즉, 두 사람인 것이다.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어떻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기대어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맞다. 사람인의 상형문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모습에서 따온 글자이다. 


아주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상형문자는 고대 시대의 사람들이 대화를 하기 위해 그림을 문자로 변환한 것에서 만들어진 문자다. 그러니, 고대 사람들은 사람을 설명할 때 한 명이 아니라, 두 명 이상은 되어야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 각각 서 있는 11자의 모양이 아니라 왜 머리를 맞대고 기대고 서 있는 모습을 상형화한 걸까? 그건 아마도,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마음에서 서로 그렇게 약속을 한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고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마음. 


혼자가 편한 사람. 


나는 늘 혼자가 편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상처를 받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예민하고 섬세하기에 상처를 더 잘 받았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보다 감각과 정서적인 부분이 많이 발달되어 있어서 둔감한 사람이라면 몰랐을 상대방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이해가 높아서 상처를 잘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이렇게 혼자서 살아가는 삶은 멋지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걸 깨닫게 되는 데는 거의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혼자여도 잘 살 수 있었고, 내 곁에는 소중한 가족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사람은 가족과 평생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고,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과 부딪히는 건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서, 결국 나는 필요에 의해 혼자 살아가는 삶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부딪히는 과정에서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혼자일 때는 아주 고요한 바다 위의 평화로운 삶이었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부딪히는 과정에서 나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매일이 살얼음판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자극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아왔기에, 다양한 불편함과 자극과 피해를 그대로 부딪히며 살아가려고 하니, 그것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상처 때문에 나를 나쁜 쪽으로 바꿀 생각은 없다. 나는 물렁하고, 착한 내가 좋다. 물론, 여기저기에 치여서 항상 집에서 혼자 이불 안을 파고들며 우울해하는 내 모습까지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되게 살아가는 것도 안된다는 걸 알기에. 그냥 지금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한 번쯤 기대어 볼까? 


혼자서도 잘 살 것 같은 나는 가끔 '사랑'이라는 감정에 크게 휘둘린다. 과거에는 짝사랑이었다면, 어느 순간 양방향의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양방향의 사랑도 나를 흔들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사랑은 늘 나를 감정적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다는 건 그만큼 '불안, 행복, 두려움, 걱정 등'의 감정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감정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사랑을 할 때,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겠지만, 나의 경우는 '불안, 두려움, 걱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강하게 느낀다. 왜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내가 그만큼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랑하기에, 잃기 싫어서 불안한 것이었다. 


사랑을 할 때 나는 상대방에게 '당신에게 기대어볼까?'라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서 조심스레 싹트기 시작한다. 나에게 가족 이외에 사랑하게 된 사람이니까. 


기대지 말고, 굳건히 설 것. 


아직, 진짜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인 건지 아니면, 내가 사랑을 할 준비가 안되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어볼까?라고 생각하면, 늘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다.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동이 되기도 하고, 상대가 오히려 그 정도로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기대어 볼까?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큰 배신감을 느끼는 경험도 해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사랑해도, 기대려 하지 말 것. 제대로 기대 본 적 없지만, 그래도 그에게 기대려 하는 마음이 나를 나약하게 만들고, 그에게 상처받으면 완전히 무너지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처럼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배신을 했더라도 그 상처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기대어 살라고 하는데, 막상 기대어 살면 무너져 내릴 만한 일을 겪을 때가 많다. 기대는 것만큼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 삶이라서 나는 아직까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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