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늘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습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나의 안전지대이자, 나의 보호막 안에서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깊이 내 모든 속사정을 드러내는 이는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마, 모두가 자신의 깊은 속내를 타인에게 드러내진 않을 겁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도.
그럼에도, 어떤 이는 가장 가까운 이에게 모든 것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이도 있을 겁니다.
저의 아주 깊은 이야기를 꺼내 볼까요?
저의 유년기는 유복했습니다.
물론, 넘치는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으나 지금 제 능력으로도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풍요 속에서 자란 것은 사실입니다.
그 바탕에는 아버지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유복한 가정환경 때문이었던 건지, 아니면 태어나기를 나쁘게 태어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린아이 때부터 저는 제 손에 뭘 쥐고 있으면 늘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러한 천성을 갖고 밝게 자라던 아이에게 어느 날 어둠이 덮쳤습니다.
아이의 유복함이 혹은 밝음이 너무 부러웠던 걸까요? 아이는 이유 없이 아이들의 왕따의 대상이 되었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9살, 10살 하는 아이가 안 좋은 것을 경험할 일이 뭐 그리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고 학급 친구가 생기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문제가 아이에게도 생긴 것이었죠.
이때에 시작된 것이 트라우마처럼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드문드문 반복되었습니다. 저학년 때 괴롭히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서도 만나고, 같은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면서 알게 모르게 따돌림은 반복되었죠.
참 아이러니하죠.
멀쩡하게 생겼고, 어디 하나 부족한데 없는 아이가 왜 따돌림으로부터 반격하지 못했던 걸까요.
천성이 착한 탓에 미련하게도 반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혼자 울고 다시 등교를 가고 하는 식으로 이겨냈고, 이따금 그녀의 곁에 있던 친구들 덕에 버텼는지도 모릅니다.
괴롭힘이라는 것이 특출 나게 폭행을 하고, 욕설을 하는 것이 괴롭힘이 아닌. 사람을 앞에 두고 수군거리고, 그 아이만 빼놓고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하고.
무리한 부탁을 하고. 그 아이의 것을 빼앗는 등의 행위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그렇게 크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그 괴롭힘이라는 것이 '적당히 참을만한 것.'이었던 거죠.
드문 드문 반복되는 괴롭힘에 아이는 점점 작아져 갔고,
소심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점점 사람을 '회피'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상처를 줬기에, 사람이 싫었고.
피하고 싶었고.
얽히기 싫었던 것이었죠.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더욱더 타인과 얽히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사이는 좋았지만.
타인과 깊이 얽히고,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항상 혼자 다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으면 밝게 웃고.
또, 그 순간이 지나면 고요히 혼자 고립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학창 시절과 대학교 시절을 보내니,
이렇다 할 대인관계와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그녀가 겪게 될 사회생활은 준비되지 않은 날 것의 세계로의 진입이었습니다.
관계에 서툰 사람에게 사회생활이란 더없이 버거운 것이었고,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그 어떠한 것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