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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까지 커피를 즐길 수 있을까?

Ray & Monica's [en route]_288

by motif Jan 23. 2025

과테말라 커피_2 | 커피 농사에 가장 두려운 기후변화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휴식과 사색에 동반하는 커피의 향미를 누리면서 커피의 생산과정에 서린 긴 시간의 고혈에 대해서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커피 빈을 선택하는데 기울인 관심만큼 그 원두가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손까지 왔는지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과테말라는 안티구아(Antigua), 우에우에테낭고(Huehuetenango), 아티틀란(Atitlán), 코반(Coban) 등 지역마다 고유한 특색을 가진 아라비카 프리미엄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이다. 그중에서 나는 지난 17일간 산 루카스 톨리만(San Lucas Tolimán), 산 후안 라 라구나(San Juan La Laguna), 산 마르코스 라 라구나(San Marcos La Laguna), 하이발리토(Jaibalito)를 비롯해 아티틀란 호수 주변 마을 커피 생산지를 방문했다.


과테말라 1,600m 이상의 산비탈 커피농장에서 영롱한 붉은 열매의 아름다움을 촬영하기 위해 비탈에 섰을 때 비끄러져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오삭한 두려움을 체험하기 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코와 뇌를 황홀케하는 커피가 그렇게 험난한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몰랐다.


누군가에게는 키스보다 황홀한 커피가 누군가의 위태로운 노동을 거쳐서 내게로 온 것이었다. 나는 몰랐어도 될 그곳을 내 발로 찾아간 것에 대한 대가로 커피는 더 이상 천사처럼 순수하고 첫사랑처럼 달콤한 것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을 얻었다.


아티틀란 호수를 에워싼 급경사의 비탈에 있는 아주 적은 넓이의 커피농장에 가족의 생계를 매달고 있는 농부들은 마야인들이다. 그들은 커피를 수확하기 위해 자루를 차고 암벽등반하듯 곡예를 펼쳐야 한다. 지형상 어떤 도구의 힘을 빌릴 수도 없다. 오직 커피 가공 시설이 있는 조합의 저울 위까지 오기 위해 근육을 사용해야 했다.


커피 농사에서 제일 힘든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의 대답은 비탈의 위험이나 몸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고된 노동이 아니었다.


"기후변화에요. 가장 큰 두려움이죠."


아티틀란 호수 일대의 소규모 커피 생산자 168 농가의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마리아 씨가 말했다.


과테말라의 주품종인 아라비카(Arabica) 커피는 기온과 강수량에 극도로 민감(온도 15~25도, 연간 강우량 1,200~1,800mm에서 최적 생장) 하기 때문에 기후가 변한다는 것은 커피의 수확에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넘어 농장을 포기하거나 더 높은 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지리학 연구팀에서 수행한 '기후 변화로 인한 커피, 캐슈, 아보카도의 전 세계적 적합성 예상(Expected global suitability of coffee, cashew and avocado due to climate change, Geography of Food Research Group, 2022년)' 연구에서 커피의 경우, 기온 상승으로 2050년까지 적합한 지역이 약 50%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61976


이 연구결과가 재배지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물론 어쩌면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가야 하거나 병충해에 약한 아라비카 커피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위협인 것이다. 자연환경이 허락하는 곳에서만 재배가 가능한 것이 커피의 한계이다. 2080년쯤에 대부분의 야생 커피 품종이 멸종(Extinction)'될 것이라는 섬뜩한 전문가들의 경고가 있기도 하다. 세계 4위 넓이의 호수였던 아랄해가 소멸되어가는 환경재앙을 겪고 있는 현실이 뇌리를 스쳤다. 관개용수로 유입되는 물을 모두 빼앗긴 채 가뭄에 직면한 호수가 말라가는 것처럼 커피 재배의 한계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기후뿐만 아니라 토양, 고도 등에 영향을 받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생산에 좋은 환경인 아티틀란 호수 지역의 커피 산지이지만 기온 상승과 우기가 길어지는 영향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안타까움은 영세 농민들의 처지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 커피 시장가격은 생산비보다도 낮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소규모 자작농의 농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부채를 늘리는 것 외에 선택이 거의 없다. 이런 불안전한 가격으로 인한 생계의 위협 속에서 농부들이 묵묵히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이 고갈되기 마련이다.


더 나은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자 조합이나 특정 수입업체에 공급하는 공정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여전히 글로벌 커피 가격 결정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갑에 종속된 을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기는 어렵다. 이렇게 시장의 중계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지의 구매자와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이 높아지고 농민들에게도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는 방식이 영세 농민들에게 희망이 되는듯싶다. 더불어 유기농 스페셜티 커피 생산 등으로 독특한 테루아와 맛으로 틈새시장에서 최저가격 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출구였다. 그러나 미래로 갈수록 커피 애호가들의 기쁨과 쾌락을 위해, 물론 마야 농부의 자신과 가족을 위해 붉고 고혹적인 커피 체리를 얻는 것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커피 소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커피 한 속에 담긴 위로는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커피 생산지에서 마주한 경작자들의 현실은 매일 커피를 탐하는 내 욕망조차 죄스럽게 만들었다.


과테말라 아티틀란 지역의 커피 생산자들은 사람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법의 가족단위 소농들이다. 기업이나 지주들이 소유한 안티구아의 대형 커피 농장과는 달리 고지대에서 메카팔(Mecapal 마야인들이 이마에 끈을 두르고 짐을 나르는 도구)에 의존한 노동집약적인 커피 농사가 극빈 집단에 속하는 마야 원주민들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들 커피 농장의 특성상 기계화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고지대의 산악지형, 화산 토양, 낮과 밤의 큰 일교차 등의 특성을 활용해 규모와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대형 커피농장에서는 곤란한 특별한 고급 커피 체리를 생산하는 것으로 커피 농업을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인 농부가 되는 것이다. 농부 스스로 당장 어찌할 수 없는 기후 변화와 커피 잎 녹병(La Roya, Coffee Leaf Rust, CLR)이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커피 소비자이자 애호가로서 할 일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그것에 대응하는 삶의 습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나라의 저가 노동에 기반한 커피 산업 종사자들이 생산자들의 현실과 유통 구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듯하다.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사실 어떤 커피밭은 지옥 같은 검은 계곡 사면에 존재한다. 농부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오가야 한다. 그것을 무릅쓸만한 달콤한 충분한 수입이 언제 가능할지 메가팔을 이마에 두른 마야 할머니, 할아버지는 모른다.


농부의 수입이 개선된다고 해도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 위기에도 우리는 커피를 즐길 수 있을까?'라는 더 큰 문제는 그대로이다. 그것에 대한 답은 농가가 커피 재배를 포기하는 상황이 오지 않아야 한다. 200m 더 높은 고지에서 살림을 벌채하고 커피농장을 새로 만드는 것이 기후 위기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도시의 우리도 함께 기후 위기와 싸워서 계속 커피를 수확할 수 있기만 한다면 '사랑처럼 달콤한' 커피는 여전히 우리의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ay & Monica's [en route]_286 | 과테말라 커피_1 신의 친구가 되는 커피, 과테말라 커피 생산자들에게도 구원일까?

https://blog.naver.com/motif_1/223728571961

#과테말라커피 #커피농장 #아티틀란호수 #과테말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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