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09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1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라틴아메리카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15번째 생일을 특별히 '킨세아녜라(Quinceañera)'라고 한다. 어린 소녀(Nina)에서 숙녀(Damas)가 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성인식'인 셈이다. '열다섯 번째 생일 축제(Fiesta de Quinceañera)'라는 표기에서 보듯이 파티라기보다 한 집안의 지인이 모두 모이는 그 가문의 축제에 더 가깝다. 주인공 여성은 왕관과 드레스를 갖추어 입고 화려하게 장식된 홀로 들러리들의 호위 속에 입장한다. 아빠와 함께 첫 왈츠를 추면서 보호받던 소녀에서 독립적인 한 여성으로 거듭난다.
성인식 행사는 이벤트 비즈니스로 발달되어 있다. 대부분의 성인식에서 드레스와 헤어, 메이크업을 패키기로 제공하는 이벤트 회사를 고용한다. 킨세아녜라용 드레스 대여점도 성업이다. 파티에는 들러리를 세우고 하객으로 수백 명이 초청되기도 한다. 여성 들러리들(Damas)은 주인공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드레스로 통일하고 시종 주인공의 배경이 된다. 남성 들러리들(Caballeros)도 동원되는데 특히 주인공 소녀의 춤 파트너가 되는 특별한 관계의 들러리를 참벨란(Chambelán)이라고 한다.
이들 문화에서 킨세아녜라는 단순히 규모 있는 생일파티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독립적인 직위를 부여하면서 책임과 의무도 인식하게 하는 대외적인 선언의 자리이다. 그러므로 성인식 이후라면 당당히 결혼도 할 수 있다.
작년 봄 멕시코에서 만났던 14살 카밀라 라미레스 투린시오(Camila Ramírez Turincio)를 통해 14살 소녀들의 관심은 온통 킨세아녜라에 있음을 알았다. 카밀라에게 참벨란이 될 남자가 있는지 물었다.
"아직은 없어요. 아버지께서는 제가 15살이 될 때까지 남자아이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기를 원해요."
딸에게 갖는 아버지의 마음도 한국의 보통 아버지들이 갖는 마음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지 다시 물었다.
"사실은 관심이 있죠.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르고 계세요."
세상 모두의 아버지들은 딸들의 속마음에 대해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있을 것이다.
성장한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또한 성인식의 중요한 일이다. 성인식 전에 전문 사진가를 대동해 성당과 공원은 물론 명소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미국의 라틴계 사람들에게도 킨세아녜라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집안의 면목을 세우는 일로 받아들인다. 워싱턴 D.C.의 의회도서관(The Library of Congress)에서도 실내외에서 사진을 찍는 킨세아녜라 촬영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행사에 드는 비용도 보통 1천만 원 이상이라고 하니 딸 많은 집안의 부모로서는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안티구아 중앙공원(Parque Central de Antigua Guatemala)에서 드레스를 입은 소녀의 사진을 찍고 있는 한 남성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메이크업은 이모가 맡았다고 했다. 꽃다발을 들고 소품의 가방을 옮기는 일은 엄마가, 조명 반사판을 드는 조수는 남동생이 맡고 있었다. 이처럼 성인식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집안사람들이 동원되는 일도 흔하다.
킨세아녜라의 소녀, 리즈(Liz) 양에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제가 원하는 목표 달성을 포기하지 않는 어른이요. 그리고 지금의 어른이 겪고 있는 문제들도 돌파할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딸의 촬영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아버지, 알도(Aldo) 씨에게 딸 키우는 기쁨에 대해 물었다.
"아~ 단순하지 않아요. 딸은 어렵습니다."
그 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른은 되고 싶다고 말했던 카밀라도 15살 생일을 맞는 작년 가을에 100명이 넘는 하객들이 참석한 킨세아녜라 파티를 열고 성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
멕시코를 떠나야 하는 여행자의 불가피한 일정으로 카밀라의 성인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떠나기 전 그녀에게 15세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었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것이죠. 부모님이 절 더 존중하게 될 거예요. 저도 세상에 대해 더 이상 무방비 상태가 되어서는 안되고요. 제가 들은 바로는 어른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은 비용이 많이 들고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은 권위적이 되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 제 자신에 대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를 제 자신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성인이 되고 나면 먼저 부모님이 안 계셔도 제가 혼자 무탈하게 있을 수 있을지를 확인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어느 날 홀로 집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내게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부모님께 확신시켜드리고 싶어요."
이렇듯 15세를 앞두고 설렘을 숨기지 않았던 14살의 그녀가 성인이 된 지금은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다. 5개월 차 성인인 그녀에게 연락해 성인식과 그 후의 바뀐 마음에 대해 물었다.
-뒤늦은 축하와 사랑을 보내요!
"감사합니다.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정말 기뻤을 거예요."
-성인식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당신의 14살 때 얼마나 멋진 소녀인지를 알았으므로 지금은 당신이 더 단단한 성인이 되어있을 거라 믿어요.
"15살이 되었다고 바로 성인 다운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은 확실해요.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죠. 제 관점에서 보면 15살이 되는 것은 유년 시절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므로 제 안의 어린아이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지만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놓아주고 싶지 않은 것이 있어요. 그것은 제가 가진 재미있고 친절한 소녀의 성격입니다."
-정말 그것으로부터는 결코 떠나지 마세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큰 보물이 될 거예요. 성인이 되고 제일 먼저 시도한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 운전을 배우고 있어요. 새로운 경험입니다."
-성인식의 절차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기꺼이 말씀드릴게요. 저희는 몇 개월 전에 미리 신부님과 성인식 미사의 날짜와 시간을 정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미사에서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서 하나님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부모님과 함께 즐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그분이 늘 저와 함께하실 거라고 축복하셨고 저와 부모님에게 성수를 뿌려주셨습니다."
-파티전에 먼저 성당을 가셨군요. 다음은요?
"그리고 제 대부모님께서 저를 행사장으로 데려가기 전에 먼저 음식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ㅎㅎㅎ 제가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행사장에 도착해서 저는 계단 위에서 천천히 등장했죠. 대부모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주셨고 파티로 이어졌죠."
-파티는 누가 어떻게 준비했나요?
"모든 기획은 엄마가 맡으셨어요. 제게는 디지털 초대장을 만들 과제를 주셨죠. 저는 그 초대장에 사진을 넣었습니다. 파티에서 정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어요. 이날 행해진 일들은 소녀를 이별하고 이제부터 여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례들이었습니다. 예컨대 '마지막 인형(La Última Muñeca)'을 받는 전통인데요. 말 그대로 소녀로서 받는 마지막 인형이라는 의미로 소녀의 끝을 의미합니다. 어린 시절을 떠나 성인으로 성정했다는 의미이죠. 이어서 아버지와 함께 왈츠를 추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댄스는 어릴 적 걸음마를 가르쳐 주셨던 저의 작은 발이 이제는 우아하게 세상과 발맞추며 나아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큰 사랑이자 가르침이죠."
-아버지께서는 성인이 되는 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기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세상 밖으로 나가 두루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부모는 딸의 평생을 같이 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함께하는 동안 매일 포옹하고 키스하며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벨란은 어떤 남자를 택했나요?
"참벨란을 두지 않았습니다. 참석한 모든 남자들과 춤을 추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ㅎㅎㅎ 당신은 이미 현명한 어른이 되었군요.
"그리고 나머지 밤은 친구들과 춤으로 채웠죠. 정말 즐거웠어요."
-여전히 고등학생인가요?
"그렇습니다. Colegio de Bachilleres No. 11에 재학 중입니다."
-당신의 장래 희망은 무엇인가요?
"훌륭한 수의사가 되어 농장 동물들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모든 종류의 동물을 사랑했고 그들이 나쁜 상태에 처해 슬픈 모습인 것을 보지 않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다시 만나서 당신이 꿈을 이루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꼭 멕시코로 다시 돌아오시길 바라요. 라파스에는 항상 당신의 집이 있습니다."
●멕시코 소녀에게 15살의 의미
https://blog.naver.com/motif_1/223423993708
●Camila의 Quinceañ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