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가영 Feb 16. 2024

엄마가 되는 첫걸음, 새로운 용어 익히기

매직아이, 대조선역전, 화유

 결혼 전부터 남편과 난 동거를 했다. 고등학교동창이기에 편한 사이이기도 했고 어차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었기에 우린 자연스럽게 한 집에서 생활했다. 동거생활이 행복했었기에 결혼도 망설임 없이 진행했던 게 아닌가 싶다. 조금은 이른 감이 없진 않았지만 동거를 하며 1년간 결혼준비를 했고 우리가 세운 계획이었기에 우리 스스로 해결 하자는 생각으로 동거 기간 동안 결혼 자금을 모아 결혼식을 진행했다. 양가의 도움이 없었던 덕인지 우린 그 흔하다는 결혼 전 다툼 한번 없이 일사천리로 결혼을 진행시켰다. 결혼을 하는데 커플들이 왜 티격태격 싸우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22년 1월 3일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다. 1월 1일 날 하고 싶었지만 1월 1일은 연휴, 1월 2일은 일요일이었다.  주변에선 요샌 결혼식 하고도 혼인신고는 천천히 한다더라 왜 이렇게 빨리 하냐 말렸지만 우린 신혼부부대출을 알아봐야 했다. 결혼식은 코로나덕에 그해 11월로 미뤄뒀고 양가의 도움을 받지 말자는 신조 아래에서 신혼집 마련을 위해 대출을 알아봤다. 집을 구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했다기보단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당연히 우리는 결혼을 할 것이었고 우릴 닮은 예쁜 아이를 낳길 원했고 둘만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 내고 싶었다. 혼인신고는 그 목표들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간 생각해 온 혼인신고는 꽃잎이 흩날리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선남선녀가 행복하게 반짝거리는 그런 것이었다. 현실은 그저 "서류작성 하셨어요? 네, 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가 다였다. 

10분도 안 걸려서 우린 법적 부부가 되었다. 뭔가 다를 줄 알았던 콩닥거림은 없었다. 


 그렇게 부부가 된 우리는 우리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대학을 다시 가려고 준비했던 내 인생계획을 위해서라도 아이를 빨리 갖길 원했다. 남편도 동의했다. 혼인신고도 했으니 못 할 건 없었다. 22년 여름, 우리 부부는 나의 배란일을 캘린더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고 싶어서 노력했다. 임신 전 필수 영양제를 공부하고 사 먹었다. 엽산, 비타민d, 오메가3를 챙겨 먹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임신 전 건강보조제도 해외직구로 구매했다.  애주가인 우리 부부는 매일 즐기던 술을 반정도로 줄이고 몸이 상하지 않도록 조금씩 조절을 했다. 과하게 술을 먹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티비에 보면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임신해서 매체에 자주 등장하곤 하던데 나도 한두 번 도전이면 쉽게 아이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아이는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나 자책하기도 하고 매달 기대와 실망의 연속을 겪었다. 알아보니 보통 부부들은 1년간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도전 6개월째, 우린 조급한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고 애써 서로를 위로하며 1년 동안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병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한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무수히 사용하고 버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22년 12월 그토록 기대하던 테스트기의 2줄을 볼 수 있었다. 결혼식을 치르고 한 달 만이었다. 아주 미세하고 눈을 찌푸려야 볼 수 있었지만 분명히 전과 다른 두줄이었다. 너무 반가운 빨간 줄이었다. 인터넷과 카페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흐릿해도 임신인가요?'라는 말과 함께 여러 커뮤니티에 테스트기 사진을 올렸다. 다들 축하해요! 임신이네요!라고 답글을 달아주셨다. '초 매직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의 테스트기 사진은 축하를 받았다. 매직아이처럼 눈 초점이 희미해질 만큼의 집중을 해야 2줄로 보인다는 뜻이었다. 들뜬 나는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우리 아이가 생긴 거 같다고 드디어 아이가 찾아왔다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남편도 입이 귀에 걸릴 듯 웃으며 한동안 입꼬리는 처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테스트기를 한 뒤부터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음식도 가려먹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드라마에서 보면 배를 잡고 우웩 거리던데 그런 일은 없었다. 몸에 반응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다를 게 없었지만 테스트기는 며칠째 여전히 두줄을 보였다. 적어도 생리예정일 일주일은 지나야 선명한 빨간 두줄이 나올 거고 대조선보다 시약선보다 진해지고서 병원을 가야 임신 확정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걸 커뮤니티에서는 '대조선역전'이라고들 했다. 엄마가 되는 길은 새로운 용어를 배우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생리예정일이 3일 지났다. 여전히 우린 들떠있었고 행복에 겨웠다. 정말 내가 임신을 한 건가 믿기지 않았지만 매일 아침 테스트기가 '너 임신한 거 맞아!'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날 오후 미친 듯이 배가 아팠다. 화장실을 가보니 생리를 했다. 평소에도 생리통이 없진 않았지만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곧바로 퇴근을 했고 집에 도착해선 배를 잡고 거실을 뒹굴며 울었다. 남편은 퇴근 전이었다. 

'아니었구나...'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화학적 유산. 그게 내 방구석 진단명이었다. 줄여서 화유라고 부른다고 했다. 유산이라는 단어가 쓰여있지만 그냥 늦은 생리 격이라고 했다. 수정은 됐지만 착상이 잘 못 되었거나 어떠한 이유로 임신이 유지되지 않았을 때 생리예정일 일주일 안에 생리를 하는 것. 그것이 화유였다.


 난 그렇게 화유를 했다. 따로 병원을 가진 않았다. 그냥 늦은 생리라고 하니 병원을 가는 것도 유난인 것 같았다. 아쉬웠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남편과 서로를 위로하며 소주 한잔에 날려버리자고 둘 다 쿨한 척했다. 그래도 아쉬웠다. 조금 슬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