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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19. 2023

저는 나이 어린 형님입니다.

기댈 곳이 없었다.



 나는 공감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는 눈치를 많이 보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편이라 누구한테든 잘 맞춰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또한 내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은 다 나와 비슷한 취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성격이 드세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갈등 상황을 연습해 볼 기회가 없었다. 다툼 없는 나의 인간관계는 완벽하리만큼 평온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 말을 안 들은 적도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 아빠와도 다툰 적이 거의 없다. 나와 갈등 상황에 놓였던 사람은 전 남자친구들 정도였지만 그저 애교 섞인 사랑싸움이었을 뿐, 소리를 질러대며 괴팍하게 싸워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잔잔한 나의 인생에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이해할 수가 없는 종족들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나랑 이렇게 안 맞는 무리를 처음 봤다. 그것도 협상조차 안 되는 종족들로 말이다.


가끔 나 보고도 한 잔씩 마시라고 권했지만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을 만큼 술을 싫어하고 못 마신다. 그리고 그들처럼 술에 취해 못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멀쩡한 상태로 사람들과 싸우는 것도 진이 빠지는데 술에 취한 사람 한 무덩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상대해야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나 혼자서 맨 정신으로 말이다.


이 사람이 공격을 멈추면 저 사람이 공격하고, 다음 날이면 ‘나는 모르쇠’ 하는 태도로 대했으니 맨 정신이었던 나만 미쳐버리는 것이었다.


술 취한 사람들과의 갈등은 한마디로 설명할 수가 없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해결이 안 되고 술이 깬 상태에서는 잊어버린 척한다.


그럼 결국 나만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친구나 회사 동료와 싸웠더라면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계속 봐야 하는 시댁 식구들과의 불화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만 견디면 될까 싶어서 참고 그들의 모임에 응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남편과 이 문제로 말다툼을 했다.


고민 끝에 나는 남편에게 몇 번 제안을 하기도 했다.

우리 저녁 말고 낮에 파스타 같은 걸 먹어 보면 어떨까, 그리고 차 한잔 마시고 헤어지는 거야!

하지만 콧방귀만 뀔 뿐, 시댁 식구들은 늘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음침한 저녁 시간을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울면서 잠을 설치고 있는데 남편은 코를 드르렁 골며 세상 편하게 잠이 다. 내가 깨워서 이야기 좀 하자고 말을 해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붙잡고 말하는 내 입만 아팠다.


어려서부터 많은 갈등과 고난을 겪고 자랐다면, 나는 이런 시댁을 만났어도 감당하며 지낼 수 있었을까?


나의 그릇이 작은 걸까? 내 잘못은 아닐까?


여러 생각을 해보며 자책하기도 했다. 나만 잘 지내면 되는데, 나만 참고 좋은 척하면 되는데, 쌍욕을 하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 되는데 왜 나는 말마다 꽂히는 사람일까 자책했다. 답이 보이지 않았다.


 관계는 엉망이 되었고 되돌리기엔  풀어야 할 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형제가 많은 것도 화딱지가 났다. 왜 하필 3형제에 장남인데 권위 없는 장남이고, 맏며느리로서의 권위 역시 전혀 세워주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들 쾌락만 찾는 시댁 어른들이 너무 싫었다.


남편은 둘째 동생보다 늦게 결혼했다. 남편은 나보다 5살이 많은데 둘째 동생은 나보다 3살이 많다. 거기다 동서는 나보다 2살이 많다. 나이 어린 에게 그들은 형님, 형수님이라고 존칭을 해야 했다. 거기다 아이도 우리 아이보다 2살이 많았다.


 나이 때문인지 나는 나이 많은 동서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술뿐만 아니라 참 여러 가지 이유로 시댁과는 안 맞았다. 


역시나 시부모님마저도 나이는 어려도 형님은 형님이라고 입장을 밝혀주신 것도 아니었다.

동서에게도, 나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그러니 형님 동서 간의 관계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시댁 어른들과도 안 맞는데 시댁 형제들하고도 맞지 않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대놓고 아웃사이더였다.


모든 가족들이 술도 마시지 않고 입 바른 소리만 해대는 나이 어린 나를 좋아할 리 없었다. 어떻게 식구라는 사람 중에 단 한 명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을까 허탈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하고 살았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걸까, 나에게 탈출구는 있는 걸까?


몇 번은 갈등을 풀어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 그 집 고유의 분위기는 나로 인해 절대 변하지 않았고 나의 노력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시댁에 가기 전날부터 나의 심장은 항상 두근거렸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더라도 술을 마시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그려지지  않는 상황이 늘 당황스러웠다.


마음에 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뭘 해도 즐겁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기도 했다. ‘저 사람만 안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진 않았을 텐데,’ 나는 원래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내가 모든 사람을 등져버린 외톨이가 되어 버렸을까,


단 한 명이라도 말이 통하식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재수도 더럽게 없지,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온 집일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수가 있을까.


얽히고설킨 갈등을 풀 실마리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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