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 유삿갓 인사드립니다.

by 빛나는

김삿갓은 귀족 양반의 집안 출신이었으나, 가문이 몰락한 후 삿갓과 죽장을 들고 전국을 유랑하는 방랑 생활을 했다. 그는 전통적인 한시의 형식이나 격식에서 벗어나 민중의 삶과 풍자, 해학적인 시문((詩文)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늘날 김삿갓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습과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문인 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시제(詩題)를 찾겠다고 돌아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를 올려다보기도 하고, 길바닥에 죽은 매미를 관찰하기도 했다. 핸드폰을 열어 사진을 찍고 생각나는 대로 몇 글자씩 적어 내려가며 시인이 된 기분에 심취했다.


디카시가 다섯 줄 이내로 작성하는 것이란 걸 알았지만,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몇 줄로 압축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장르도 형식도 파괴해 버린 미숙한 문장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브런치에 게시했다.


몇 달 전에는 술에 취해 시를 쓰고 가족들이 모여있는 채팅창에 보낸 적도 있었다. 그날 오후에 아이가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떠올라 작성해 두었던 글이었다. 어질어질한 상태로 퇴고를 하고 화장대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전송을 눌러버렸다. 다행히 엄마와 동생만 있는 작은 규모의 방이었다. 엄마는 너무 잘 썼다고 감동을 받았다는 답장을 보내주었고, 동생은 빨리 자라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시 쓰기 동아리에서 어설프게 작품을 발표하고 혼자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돌아가신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누워계신 할머니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여러 번 고쳐서 다듬어진 시를 보면 울적한 마음이 정리되었다. '슬픔을 쉬지 말고 기록'하라는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꾹꾹 눌러 함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불필요한 감각들이 사라져 가는 듯했다.


우수의 찬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감상적인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꿈틀대는 개그 욕심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피식 웃음이 나는 장난스러운 시도 지어보고 하여간 내 마음대로 끄적여 보았던 나날이었다.


재미 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창작에 진지해졌다. 아마도 이 분야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것이리라. 연재는 잠시 멈추지만 앞으로는 삿갓을 덮어쓰고 시(詩)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 볼 예정이다. 더 자유롭게, 더욱 깊숙하게.




그동안 부족한 작품을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keyword
이전 17화안산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