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밤을 주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며칠 전에 고모가 집 마당에 있는 밤나무에서 큼지막한 열매가 열렸다며 토실한 알밤 한 봉지를 건넸다. 지난주에도 외숙모가 보내준 밤을 맛있게 먹었는데, 딱 떨어질 즈음 다시 밤 충전이 되었다.
곧바로 커다란 밤을 깨끗하게 씻어 큰 냄비에 넣고 삶았다. 15분 정도 지나 차가운 물에 헹구는 일도 잊지 않았다. 한 김 식은 밤을 이로 갈라 작은 수저로 퍼 먹으며 달큼한 속살을 맛보려 했다. 그런데 세 살배기 아이와 함께 먹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양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더 많았다. 아직 먹는 요령이 없어서 그럴 테지. 이럴 땐 방법은 딱 하나, 껍질을 다 까서 알맹이만 넣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밤을 무척 좋아하지만 껍질을 벗기는 일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린애처럼 쏙 집어먹는 것만 좋아했다. 몇 년 전에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했을 때, 모성애를 발휘해서 밤 까기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칼질에 서툴러서인지 껍질을 두 어개만 벗겼는데도 손끝이 얼얼했다. 결과물도 반듯하지 않아 못생기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찌어찌 열 개를 만들어 곱게 빻아 아이에게 주고는, 다시는 밤을 까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로는 마트에서 맛 밤을 주로 사 먹었다. 동글동글하고 윤택하니 맛이 기가 막혔다. 그냥 한입에 넣기만 하니까 너무 편했다. 하지만 어쩐지 무언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통 안에 가득한 밤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아이는 더 많이 달라고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뻗어서 힘껏 휘둘렀다. 입술을 꾹 다물고 야심 차게 한 알을 손에 쥐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남편을 불러 옆에 앉혔다. 아이의 재촉에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임시방편으로 숟가락으로 밤을 퍼 먹이는 역할을 맡겼다.
밤의 뾰족한 꼭지 부분을 칼로 반쯤 자르고 두툼한 갈색 껍질을 벗겨냈다. 곧 연한 속껍질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고지가 코앞이라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세밀한 작업이 요구되었다. 알맹이에 붙어있는 까칠한 속껍질이 텁텁한 맛을 내기 때문에 잘 발라내야 했다. 아이가 먹을 것이니까 더 주도면밀하게 살폈다. 이제는 제법 커서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퉤퉤 뱉어내지만, 그 잔해를 치우는 건 엄마인 내 몫이기에. 두 번 일하지 않으려면 지금 잘 떼어내야 했다.
심도 있는 작업을 반복하니 마침내 노란 속 살이 드러났다. 파는 것처럼 윤기가 나진 않지만 노동의 대가로 얻은 산물이라 그런지 더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정밀한 세공을 마치고 첫 작품을 손에 들어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남편과 아이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반으로 갈라 남편에게 주고, 나머지 반은 아이와 나눠 먹었다. 둘은 감질나는 입맛을 다시며, 하나 더를 외쳤다.
밤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일수록 나의 기술도 점점 늘어갔다. 인터넷에서 시킨 대로 잘 삶아서 그런지 살짝만 칼을 대도 쓱 하고 벗겨지는 껍질이 많았다. 밤을 너무 많이 먹어 트림을 꺽하는 아이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오늘은 몇십 개를 깠는데도 엄지가 아프지 않았다. 오동통한 알밤처럼 나의 모성애도 포동포동 자라난 걸까.
남편과 아이가 거실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떨어진 껍질을 치웠다. 이리저리 튄 가루를 닦으며 혼자 웃음이 났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뻔한 말이, 알밤처럼 데굴데굴 마음에 굴러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