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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새벽 6시에 들어왔다

by 빛나는

나와 남편은 같은 대학교를 나왔다. 우리 둘은 학번 차이가 좀 있는 편이고, 학창 시절부터 사귀다 결혼했기 때문에 알고 지내는 선후배의 숫자가 꽤 된다. 그렇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딱 2명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공교롭게도 나와 남편의 동기이다.


남편의 동기는 가정사의 아픔이 많은 사람이었다. 타지에서 올라와 학교 근처에서 자취했고, 인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정이 많았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직접 전화를 건 유일한 선배였다. 늘 구석에서 소주만 홀짝였기에 조용한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취직하면서 특이한 취미를 시작했다. 바로 오토바이였다. 선배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스릴을 즐겼다. 무언가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을까. 결국엔 큰 사고를 당했고, 병실에서 한 달 정도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났다.


퇴근하고 밤늦게 선배의 고향으로 향하던 길이 가끔 생각난다. 늦은 밤 한적한 도로에 희미한 가로등이 끊임없이 지나가는 장면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고요했던 장례식장의 풍경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지워지질 않는다. 무너질 듯 슬퍼하던 남편의 얼굴도. 돌아오는 길에는 후배 둘을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여전히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 후배들 덕분에 오랜만에 추억의 장소에 들렀다. 애써 화기애애한 척 옛 기억을 들먹이며 대화를 이어갔지만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그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또 만났다. 이번엔 내 동기의 장례식이었다. 대기업에 입사해 끝없는 업무를 힘들어하던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매일 같이 나누던 카톡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와 절친했던 사이였기에 충격이 더 컸다. 내 결혼식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이었고, 심지어 그 친구는 축의금을 받아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허망하게 사라져 버렸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의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슬픔의 도가니였다. 가족들은 목 놓아 울었고, 친구들은 회사를 향해 분개했다. 얼굴이 하얗게 둥둥 뜬 상태로 3일 내내 장례식장을 찾았다. 혼자 좌석버스를 타고 외진 곳으로 향하던 그때가 역시나 잊히질 않는다. 운전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체력이 되지 않았다.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눈물을 여러 번 훔쳤다. 귓가에 맴돌던 가사가 마음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계속 나를 울렸다. 레이디스 코드의 '아임 파인 땡큐(I'm Fine Thank You)'. 아직도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내가 이 친구에게 청첩장을 주던 날,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진탕 술을 마셨다. 선배와 결혼하는 나를 보며 든든한 백을 얻었다고 손뼉도 쳐주었다. 얼큰하게 취했을 때쯤, 친구가 남편 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시켰다. 학창 시절엔 5학번이나 높은 선배라 어려웠지만, 이제는 친구의 남편이니 편하게 불러보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통화 신호음이 끝나고 친구는 긴장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친구는 다소 민망해하더니, 왜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결혼이 얼마 남지 않아 일정이 꽉 찼다고,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뻔한 영화 속 이야기처럼 다음에 보는 일은 없었다.


언젠가 남편이 술자리를 거절하지 못하는 걸 보고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임신했을 때도,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누군가 부르면 못 나간다는 말을 쉽사리 꺼내질 못했다. 원체 정이 많은 성격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가정에 소홀한 사람인가 원망 섞인 감정까지 올라왔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대체 왜 이렇게 약속을 많이 잡냐고. 남편은 자기가 만드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서 부르는 것이라며 남 핑계를 댔다. 그럼 이런 이유로 다음에 보자고 하면 되지 않냐고 내가 따져 물었다. 남편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더니, 한숨을 쉬듯 둘의 이야기를 꺼냈다. 언제고 옆에 있을 줄 알았던 우리의 친구들에 대해서. 혹여 다른 인연도 그렇게 놓쳐버릴까 불안해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지난주 남편은 체육관 사람들을 만나 늦게 들어왔다. 아니, 일찍 들어왔다. 아침 이른 시간에. 체육관이 문을 닫은 후 시작된 모임이니 함께한 시간으로 따지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새벽 6시에 들어온 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을 이해하기로 했다. 조심스레 들어와 침대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지난 기억들이 스쳤다. 이제는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여전히 마음에 새겨져 있는 후회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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