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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쁜 코는 무엇일까

by 빛나는

아침에 세수하다가 쓰라린 기운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았다. 잠이 든 사이에 손이 스쳤는지, 콧잔등에 손톱이 지나간 자리가 생겼다. 실같이 가느다란 살 틈으로 붉은 피가 맺혀 물로 닦아 냈다. 코를 이리저리 살피며 더 상처가 난 곳이 없는지 들여다보았다. 눈을 크게 열어 코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더니, 문득 옛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콧대가 뚜렷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종종 코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학창 시절엔 유난 떠는 친구들이 내 코를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처음엔 부끄러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민망한 마음은 사라졌다. 타고난 무언가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은 은근한 짜릿함까지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코에 대한 칭찬이 크게 줄어들었다. 여학교를 다니다가 남자들이 많은 이공계에 진학한 탓이었을까. 한동안 거저 들었던 찬사라 그런지 못내 아쉬웠다. 그때부터 코에 대한 묘한 집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 날을 잡고 방에 틀어박혀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았다. 먼지 한 톨 없이 닦은 거울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다양한 각도로 살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코끝이 뾰족하지 못하고 둥그스름했다. 펑퍼짐 한 모양 때문에 콧구멍마저 큼지막해 보였다. 집게손가락을 만들어 콧구멍에 넣고, 살짝 들어 올리니 좀 나아 보였다. 손을 떼니 원래의 못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방법은 단 하나, 성형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관심사는 온통 코 수술이었다. 주변에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서로의 고충을 나누었다. 누가 먼저 마음을 먹을지 속으로 차례만 계산하고 있을 때쯤, 한 친구가 용기를 내 병원에 다녀왔다. 압구정에 있는 유명한 성형외과였다. 버스를 타고 오가며 광고 전단을 봤던 곳이라 왠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며칠 뒤, 그녀는 얼굴에 붕대를 둘둘 매고 나타나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너무 잘 됐대." 그 말이 한 줄기 희망으로 느껴졌다. 친구의 소개로 나도 더 예쁜 코를 가지고 싶었고 그럴 수만 있을 것 같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그 친구의 얼굴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붕대를 푸는 날이 언제였는지 혼자서 손가락을 헤아렸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제대로 안부를 묻기도 전에 괜찮냐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코의 모양은 원하는 대로 나왔지만 비강이 좁아져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고 했다. 밤마다 코가 막혀 잠을 설쳤고 결국엔 의사가 재수술을 권했다고. 예쁜 코를 얻었지만 정작 그 기능을 잃어버렸으니 또 칼을 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친구를 위로하며,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공기를 마시고 내쉬는 일이 방해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방에 앉아 거울을 쳐다보았다. 멍해진 시선 끝에 내 코가 있었다. 여전히 길고 무딘 콧날, 그대로였다. 괜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넓은 콧구멍 안으로 시원한 기운이 몰아쳤다가 이내 빠져나갔다. 공기가 가뿐하게 드나드는, 그 순간이 어찌나 감사하게 느껴지던지. 숨을 쉬는 일, 너무 단순해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이 미(美)에 대한 욕망에 지워져 가고 있었다. 무엇이 정녕 아름다운 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몇 달의 고생 끝에 친구의 코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수백만 원을 써서 큰 교훈을 얻었다며 다시는 병원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거라 했다. 친구들은 모두 모여 맞장구를 쳤고, 그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외모에 관한 대화를 꺼내지 않았다.


오래된 이야기가 머릿속에 스치고, 화장실에서 나와 휴대용 알코올 솜을 꺼냈다. 무균의 소독 향이 코를 타고 올라와 저릿했다. 잠깐의 따가움이 지나가니 미세하게 패인 자욱이 남아 있었다. 면봉에 하얀 연고를 살살 바른 뒤, 내 진짜 예쁜 코에 작은 대일 밴드를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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