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누군가 꽃다발을 주면 마냥 기쁘지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단순하게 꽃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게 싫었다. 부모님의 입에서 나올 질문 공세를 일일이 받아치기가 귀찮았다. 기분 좋게 받아놓고 어쩌지를 못해서 그냥 집 앞 놀이터에 두고 온 적도 있었다. 꽃다발을 벤치에 놔두고 돌아서는데,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찔렸다. 또, 애정의 증표를 함부로 대하는 게 무척 미안했다. 어차피 남자친구의 사랑은 훤히 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며 혼자 핑계를 둘러댔다.
유난히 꽃을 자주 사주던 그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는 그 안에 담아 줬던 말들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20대인 두 청춘의 낭만적인 약속은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고, 남은 건 쓸쓸한 빈자리뿐이었다. 금방 시들고 버려질 껍데기에 무얼 기대했는지. 내 안에서 꽃다발이라는 선물이 주는 의미가 점차 흐릿해졌다.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몇 년이 지나, 사촌 오빠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주방 냉장고 위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꽃다발이 여러 개 보였다. 새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사촌 오빠가 무언가 잘못을 할 때마다 사온 사과의 꽃이라 했다. 주로 술을 마시고 연락 없이 늦게 귀가하는 게 이유였다. 미안한 마음에 커다란 꽃을 들고 집으로 와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을 한다고 말했다. 새언니는 초반엔 기분이 풀렸지만, 이제는 진심도 없이 그저 습관으로 사 온다고 사촌 오빠를 째려봤다. 저렇게나 약속을 안 지켰다고 일부러 버리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모아 둔다고 덧붙였다. 의외의 대답에 한참을 웃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저 꽃다발의 행방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역할을 다한 꽃이 가는 곳은 뻔했다.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결국엔 종량제 봉투로 향했다. 부피가 제법 나가는 꽃다발은 버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혹여 가시라도 있으면 신문지로 둘둘 싸매 버려야 하니 크기는 몇 배로 커졌다. 삐죽한 줄기에 스쳐 작은 상처라도 나면 입 밖으로 투정이 나오기 십상이었다. 받았을 때의 그 기쁨은 다 잊은 채로.
꽃을 싫어하는 여자가 대체 어딨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꽃 앞에 한 단어만 붙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살아있는 꽃을 마다할 이는 없다고, 다만 죽은 꽃이 씁쓸할 뿐이라고 말이다. 찰나의 사명을 다하면 그저 말라죽는 것이 운명이기에. 어쩌면 꽃밭에서 꺾여 시장에 내몰릴 때부터 예견되어 있었을 결과일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담겨있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으면 다행이다. 천장과 냉장고 사이, 그 좁은 틈에서 거무죽죽해진 장미를 보며 혼자 상념에 빠졌다.
이런 고집스러운 마음을 남편한테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남자는 10년이 가까운 세월을 살았는데도 꽃다발을 한 번도 사 온 적이 없다. 7년간 이어진 연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술이 엄청 취해서 길가에 핀 철쭉을 따온 적은 있었다. 활짝 피어 예쁜 모양을 보여주고 싶었다나. 다음날 나에게 된통 핀잔을 듣고 나서는 그마저도 가져오질 않았다. 잘하는 일이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금 얄미울 때도 있었다. 이런 건 필요 없다고 조신하게 마다할 기회마저 주질 않으니.
며칠 전, 갑자기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체 왜 꽃을 사주질 않냐고 대놓고 물어봤다. 남편은 되려 나에게 질문했다.
“그럼 지금 꽃을 사러 갈까?”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됐다고 손사래를 치려다, 오랜만에 활짝 핀 꽃이 보고 싶어 집을 나섰다.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달빛 원예라는 이름을 가진 꽃집이었다. 입구 앞에 있는 꽃다발 포장 공간을 지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녹색의 잎들이 무성한 나무들이었다. 그 아래로 각종 화분에 알록달록한 꽃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아직은 여린 생명들을 하나씩 구경하며, 시린 바람 속에서도 따뜻한 기운을 만끽했다.
집 베란다에서 키우기 좋은 노란 국화, 흰 마거릿 그리고 로즈메리를 골라 차에 실었다. 가게 주인은 일주일에 물을 몇 번이나 줘야 하는지 각 화분마다 푯말을 만들어 흙에 꽂아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꽃에 대한 정보를 상기하며 잘 키워보자 다짐했다. 운전대를 잡고 '일주일에 두 번'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남편을 보며 웃음이 났다.
뒷좌석에 실린 꽃들이 백미러에 비쳤다. 굴러가는 바퀴를 따라 우리 몸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다가올 봄날의 따스한 햇살과 여름의 쏟아지는 햇빛을 지나 풍성한 가을과 다시 돌아올 겨울까지 오래오래 같이 있자고 꽃들과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