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인식한 사실은 귀뚜라미는 낮에도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수에서도 순천에서도 여기 담양에서도 환한 대낮에 귀뚜라미가 운다. 내가 사는 소란스러운 도시의 귀뚜라미는 밤에만 울었다. 아니 밤에만 들렸다. 왁작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떠나 사위는 고즈넉하고, 간혹 들려오는 차 소리도 희미해져 간다. 오늘은 전라남도 여행 4일 차, 내일이면 밤에만 귀뚜라미가 우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산책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 풍경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플레이 리스트에 미리 준비해 간 가을 음악도 나지막이 틀었다. 드디어 가을을 만났다. 나는 벼락처럼 쏟아진 이 가을의 고요함에 무젖는다. 그윽한 늦은 오후, 혼자만의 이 여유로움이 갑자기 서러워진다. 보고 싶은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내어 그들의 안녕을 타전한다.
2년쯤 전에 이름처럼 갑자기 돌발성 난청이 찾아왔다. 한쪽 귀가 물속에 잠긴 듯한 그 느낌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기이했다. 워낙 예민한 사람이라 상대의 목소리가 조금만 달라져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나였는데, 그 예민한 감각이 한순간 먹통이 된 상황이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그 예민함에 일찍 병원을 찾았고, 삼십 퍼센트의 확률에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후 혹시나 재발할지 귀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긴장하게 된다. 의사 선생님은 재발 가능성이 적다지만 성격상 워낙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요즘은 이어폰도 사용하지 않는다. 지구상의 모든 소리가 멈춘 듯 귀뚜라미 소리 외에 인공의 소리가 전혀 없는 곳에 앉아 있으니 오히려 귀가 먹먹해, 소리가 멀어졌던 그때의 기억이 선명해진다.
가을 풀벌레 중에 유독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있다. 초가을이면 지천에서 우는 귀뚜라미 녀석들의 소리가 이상하게도 내 귀에는 귀뚤귀뚤 들리지 않았다. ‘귀뚤귀뚤’ 울어서 귀뚜라미라고 불리는 게 아니고 종류마다 울음소리가 다른 건지 여하튼 내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호르르’ 아니 ‘호로로롱’ 한다. 모르긴 몰라도 듣는 사람마다 다른 소리로 들리지 싶다. 벌레의 소리를 인간의 말과 글로 어찌 옮길까. 아무리 한글이 이 세상의 온갖 소리를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음소 문자라고 해도 이 소리를 그대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그러다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내 귀를 붙잡은 그 소리가 실은 방울벌레의 소리인 것을 알게 되었다.
메뚜기목 귀뚜라미과의 ‘방울벌레’는 귀뚜라미보다 조금 작다. 방울벌레의 한자 이름이 금종충(金鐘蟲)인걸 보면 남들에겐 종이 울리는 것처럼 들리는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긴 대롱을 호로로롱 호로로롱 불고 있는 것처럼 맑고 구슬픈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 소리는 스타카토식으로 음절이 끊어지고 나뉘어 있는 데 비해, 방울벌레는 음을 구별하기 어렵게 길게 소리를 빼낸다. 귀뚜라미의 소리는 직선적인 남성의 소리, 방울벌레는 애교스러운 여자의 소리 같다. 둘 다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공명실을 울려서 소리를 내는 매미에 비해서 작은 소리지만, 운치 있는 밤 풍경에 어울리는 노래다. 귀뚜라미와 방울벌레 소리를 구별하지 못해도 그닥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그들을 구별하니 소리가 한층 더 정답게 들린다. 그 후 밤마다 방울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번갈아 가며 나를 풀밭 속으로 이끌어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는 듯했다.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고 나면 티끌처럼 가벼운 껍질만 남기고 사라지는 운명을 타고난 풀벌레. 인생의 무상감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들이 있을까. 그래서 두보는 ‘귀뚜라미야, 너는 작은데 너의 슬픈 소리는 어찌 이리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느냐’라고 읊었나 보다. 풀잎 속에서 살아 풀벌레인지, 바람 한 자락 불면 풀잎처럼 날아가서 풀벌레인지 그들의 서정이 여기 담양의 풀밭에도 울려 객수를 달래준다.
가을을 마중하러 떠난, 하루에 2만 보씩 걸었던 4박 5일간의 남도 여행. 몸은 무겁지만, 여수의 밤바다 소리도, 순천만의 갈대가 바람에 서걱대는 소리도, 소쇄원 광풍각에 앉아 듣던 물소리도, 죽녹원의 댓잎이 섯도는 소리도, 담양 길섶의 귀뚜리 소리도 내 귀에 꾹꾹 눌러 담는다. 당분간은 이 소리들을 기억하며 듣기 싫은 소리에도 조금 덜 예민하기를, 조금만 더 넉넉하기를 바라본다.
힘껏 기다리지 않아도 다음 계절은 시간 맞춰 온다. 남도의 가을을 뒷좌석에 태우고 내일은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