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연속 벚꽃길을 걸었다. 작년 봄에도 내 생애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벚꽃인양 집밖으로 나가고 싶더니, 올해도 여전히 나가고 싶어서 나는 내게 선심 쓰듯 3일 동안 5킬로미터가 넘는 벚꽃길을 세 번 걸었다. 그래도 가슴에는 그리움의 잔고가 남았는지 오늘 또 나가고 싶다. 바람이 다가오자 나무는 아무 흔들림도 없는데, 꽃잎들은 물색없는 계집아이 마음처럼 풀풀 사방천지로 흩날린다.
안도현 시인은 봄이 꽃을 피우고 급기야 가버리는 것을 '돈 떨어진 건달같이'라고 표현한다. '건달'이 불교용어 '건달마'에서 나왔던,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오직 향기만을 구하여 몸을 보호하는 인도의 신이건, 연화경에 나오는 네 명의 건달바왕을 일컫던, 나는 내머릿속에 있는 그 '건달'을 떠 올린다. 그러니까 건달을 그저 건달로 읽어야 한다.
벚꽃길을 걸으며 벚나무를 술 취한 건달이 걸어가는 것으로 묘사한 시인과 우리가 어쩌면 꽃에 취한 건달일지 모른다. 시인은 지는 꽃과 가는 봄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명'과 '화농'을 대비하여 오히려 꽃이 떨어진 후의 우리를 걱정한다. 벚꽃이 지고 나면 이 봄날을 어떻게, 무엇으로 견딜 것인가 시인은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간다. 지난해 봄에도, 지지난 봄에도 그랬던 것처럼 끈질기게 다음 봄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다.
내게 벚꽃은 그 화려함만큼이나 그리움에 불을 지핀다. 떠나간 사랑을 그립게 하고, 지나간 청춘을 그립게 하고, 스쳐간 그 많은 봄날에 만난 사람들을 그립게 한다. 이럴 때는 그저 그리워하면 된다. 봄은 벚꽃처럼 가냘프기만 하고 오랜 시간 살아있지도 않지만, 그리움은 꽃잎처럼 흩날리는 시간이 오고 곧 사라질 것이다. 벚꽃 잎이 하늘을 그리워하다가 하늘과 자신의 먼 거리를 생각하듯, 나도 그리운 사람들과의 먼 거리를 생각하다가 어느 하루 지고 말면 되려니.
벚꽃을 피우는 건 봄이 아니라 내 안의 그리움인지도 모르겠다. '돈 떨어진 건달같이' 터덜터덜 벚꽃은 지고, 봄날은 가고,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