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잔나비 노래 가사를 띄워 해석을 해주었다. 요즘 노래야 딱히 해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잔나비의 노래 가사는 가히 시라고 불러도 좋다. 아이들이 치를 떠는 고전시가도 원래는 노랫말이었으니까.
노랫말 해석을 듣다가 한녀석이 '왜 노래는 모두 실연하는 이야기뿐일까요?'라고 꽤 영특한 질문을 한다. '그것은, 음... 살아가면서 누구나 몇 번쯤은 크고 작은 실연을 하니까, 아마도 그것이 사람들의 정서적 공통분모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을 문학에서는 보편적 정서라고 한단다. 시험에서 나 1등 먹었어요 이런 노래를 불러봐 그걸 누가 공감하며 듣겠니?'라고 답해주었다. 녀석들이 큭큭 웃는다. 덧붙여 뇌피셜을 풀었다. 잔나비 최정훈이 학생 때 니들처럼 국어학원을 다녔단다. 최정훈이 문학적 소질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국어쌤이 잘 가르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제자 한 번 키워보자 했더니 아이들 왈 '쌤~ 우리 다 이과잖아요.' 한다.:)
볕이 좋은 이른 봄날 그가 공원으로 불러내었다. 커다란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볕 바라기를 하고 있는 내게그가 종이 봉지를 건넸다. 열어보니 분홍 체크냅킨에 쌓인 샌드위치와 캔 커피다. 피식 웃었다.
“겨우 샌드위치나 먹자고 불러냈어요?”
멋쩍어하며 소리 없이 웃는 그의 그 트레이드마크 그 빛나는 웃음.
“소풍 올 땐 적어도 라탄 바구니에 바게트와 와인에 샐러드나 과일, 뭐 이런 것 아닌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마웠다. 이렇게 살기도 그렇다고 죽기도 싫어 두문불출하던내 기분을 풀어주고자 바쁜 점심시간을 쪼개어 여의도에서 목동까지, 커다란 남자가 종이봉투를 덜렁거리며 달려왔을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벤치에 올라앉아 무릎을 세우고 동그랗게 몸을 말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말없이 앉아있는 내게 그가 말한다.
“그러고 있으니까 너, 털이 복슬복슬한 페르시안 고양이 같아.”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를 바라본다.
“복슬복슬은 강아지 아녀요?”
흰 앙고라 스웨터를 입고 있다고 페르시안 고양이 같다는 그의 빈약한 상상력에 나는 또 웃었다. 웃기 싫은데 자꾸 웃었다.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그도 따라 웃었더랬다.
지금 행복한데,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그 사람과 헤어진 이후를 미리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애틋하고 뜨거운 감정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고 사랑했던 기억마저 초라하고 우스워지는 날들이 언젠가는 온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 모든 과정을 사랑이라 부른다. 다른 이름은 없다.
어딘가에 실연한 사람들의 강이 흐르고 있다면한 번쯤 그 강가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서,사랑이뜨거워 눈물 흘렸던 그 시대를 목격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