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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Aug 29. 2022

영재 금쪽이의 엘리트 코스는 이제 시작이야.

조선왕조실록 세자교육

얼마 전 중학교 2학년인 둘째가 도에서 개최한 발명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전국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첨으로 혼자서 비행기를 타기도 했다. 너무나도 설렘 가득했던 아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잘 자라주고 있는 아들이지만 요새 나는 고민이 많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교육은 이대로 괜찮은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공부 습관은커녕 매일 놀게만 두는 것은 아닌지 해서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날이었다.

"수학도 잘하고, 너무 똘똘한데 어느 학원 보내시나요?"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직 저학년인데 공부 학원을 보내냐며, 태권도 하나 다닌다고 대답을 했다가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어머니, 나중에 후회하세요. 요새 학원 안 다니는 아이들이 어디 있다 고요. 아이들 벌써 중학교 수학 공부하던데... 세상을 한참 모르시네요."

나의 양육 방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에 약간은 불쾌했지만 그날부터 들었던 고민이 아직까지 계속될 줄이야...


둘째는 중2 중간고사가 끝나서야 학원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고, 필요하다고 할 때 학원을 보내주는 게 원칙인 나는 기꺼이 보내주었다.  영어와 수학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대략 저녁 8시, 돌아오면 저녁 식사를 하고, 학원 숙제와 수행평가를 조금 준비하다가 드르렁드르렁 잠자기 바쁜 게 현실이다.


물론 이 정도의 생활은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 사이에서 바쁜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은 교사인 내가 더욱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조차도 학원을 조금 더 일찍 다닐 걸 그랬다는 둥 푸념을 늘어놓는 통에 요새 마음이 좀 복잡하다.


전국 대회에서 본 아이들의 작품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고...

학교나 학원에서 아이들이 수학과 영어 문제를 푸는 시간은 초스피디해서 따라갈 수조차 없다는 말을 하며 난 안돼... 멀었어...!라고 할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흐아...!

우리 아들들의 교육은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조선왕조실록>에는 답이 있을까?




조선 시대 왕세자들은 최고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고 성장한다. 생각부터 완벽해야 하는 태교로부터, 최고의 유모 감까지 왕실 어르신이 직접 선발하는 시스템으로 시작한다. 갓난아기 때부터 보양청 교육이 시작되고, 유아기에는 강학청 교육을, 8세가 되면 세자 책봉이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시강원 교육을 받는다.


세자 교육은 24시간이 수험생 시스템 같다. 

1일 3강, '조강.주강석강'에 참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소대'와 보충 수업 격인 '야대', 그리고 수시로 경서에 대한 지식을 평가하는 구술 평가, 5일에 한 번 배운 내용을 모두 포함하는 시험을 실시하여 그 능력을 테스트받아야 한다.


방학도 없이, 온 조정의 기대와 감시를 받으며 세자는 매일 학업에 정진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을 모두 마스터한다고 해서 훌륭한 군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며, 갈고닦은 사람들이 결국에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것 같다. 


후계 서열 3위에서 기적처럼 세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잘산군은 6년을 성실하게 임하더니 조선 유교 정치의 시스템을 완성한 성종이 되었다. 그리고 세종과 정조는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세자 교육을 수행하여 후대로부터도 칭송받는 조선 르네상스의 주역들이다. 일찍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인종 역시 세자 교육을 누구보다도 멋지게 수행해 낸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양녕대군과 사도세자는 적장자로서 왕위 계승 1순위였지만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생활이 문란한 이유로 폐세자 되기도 했다. 세자에게 공부를 멀리 한다는 것은 매서운 눈초리의 현실에서 도태되게 되는 충분한 명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실록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아, 자질은 있으되 공부 습관이 엉망이어서 지금도 뒹굴며 세상 태평한 나의 아들들에게 다시 시선이 갔다. '엘리트 코스'는 아니더라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운 좋게 상도 받고, 성적도 상위권을 겨우 유지하고는 있지만 언제 폐세자 운명에 놓일지 모르는 혹독한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게을리하는 연산군을 감싸주기만 했던 아버지 성종과 결국에는 아들을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든 영조가 될 수는 없으니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조강, 주강, 석강은 학교와 학원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할 수 있도록 충분히 재워야겠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 '야대'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거실 독서실'을 열 생각이다. 함께 모여 역사 공부를 하고, 신문이나 과학 잡지를 함께 읽으며 생각을 묻고 답해본다면 저절로 '구술평가'가 되리라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고쳐지지는 않겠지만 엄마는 아이들의 시강원 사부가 되어주고, 아이들은 서로 '배동'이 되어 공부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여 오늘부터 모여 앉았다. 벌써 꼼지락꼼지락 난리지만 적어도 손에 휴대폰은 없고, 함께 앉아 있으니 뭔가 코스를 살짝 밟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트 코스가 무조건적인 해답은 아닐 수는 있다.

학원 뺑뺑이를 돌리고, 24시간 책상 앞에 있다고 해서 모두 성군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의 사고가 갇히지 않도록...

너무 지쳐서 포기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생각을 열고,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를 무궁무진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공부뿐만 아니라 예절과 다채로운 예술적 측면도 키워질 수 있도록...


나는 왕실 어른도 되었다가, 스승도 되어야겠다.

때로는 무조건 품어줄 수 있는 유모가 되어준다면 나중에 '봉보부인'으로 봉해질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나는 퇴근 후에 잠시 수라간 궁녀가 되겠지만, 10분 쉬고 바로 사부가 되어야 하기에 바쁘다. 

아이들의 엘리트 코스를 위해 풀코스로 뛰어보자.


그래, 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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