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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Sep 22. 2022

콤플렉스는 아이를 광해군으로 키운다.

광해군일기

<역사라면> 후기 수업이 시작되어 고대하던 <광해군일기>를 읽으며 한 주를 보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의 또 다른 대역 광해군, 하선의 사이다 호통과 백성들을 위해 진정한 왕을 필요로 하는 시대의 요구에 기립 박수를 쳤던 사람이었던 탓에 기대가 컸던 것일까?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의 광해군은 생각보다 스펙터클 하지는 않았다. 역사는 픽션 영화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이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라는 두 글자를 빼고 사람만 놓고 바라보고 싶고, 그 안에서 삶과 본질을 발굴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인지 조금은 답답했다.

'한심한 세월이었다.'

명대사, 명장면을 찾아 헤매던 나에게 폭풍 공감 '좋아요'를 받은 한 문장이다.


'16년 세자의 풍부한 실무 경험과 노하우'

광해군의 이러한 스펙은 한심하지 않은 조선 후기를 시작할 수 있기에 충분했다. 4년간의 그의 행보를 보아도 가능성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세월과 미움과 견제 속에서 성장한 광해군의 그림자는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 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선조의 *방계 콤플렉스'에서 출발한 세자 책봉 미루기는 마음속 가장 큰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 방계 : 선조는 중종과 후궁 창빈 안 씨 사이에서 태어난 덕흥대원군(중종의 서자)의 아들)


난리 속 '정통성 세우기'라니!

뭣이 중헌지도 모르는 정치판 놀음에 조선 후기는 후련하지 못한 역사를 쓰고 말았다. 내 마음속 '호통치는 광해군'은 그저 사라져 버린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진 15일간의 빈 시간 사이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릴 것 같다.



콤플렉스는 누구에게나 있다.

나의 콤플렉스만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는 정치판이나 궁궐에서 살고 있지는 않으니까 선조보다는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사이 콤플렉스로 인한 나의 고치고 싶은 모습이 아이를 통해 보이는 순간이 있지는 않은가? 그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아차!'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다독이기보다는 불같이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자질을 보고, 그 꿈을 펼쳐주게 하기는커녕 자신처럼 살게 하지 않기 위하여 아등바등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선조가 자신의 콤플렉스나 계산기를 치우고, 광해군을 품어주고 세자 책봉을 앞당겼더라면 어땠을까? 불필요한 견제와 질투 대신 아들의 노력과 공을 인정하여 아낌없이 칭찬해주었다면 어떤 역사가 쓰였을지 궁금하다.


나 또한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흙수저 인생을 탈출해 보겠노라고 '플루트를 불며 살고 싶다!'거나 '엄마처럼 선생님이 되고 싶다.'등의 아이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고 장난으로 넘기려고 했었다. 충분히 의로운 행동을 하고 온 아이에게 칭찬은커녕 핀잔을 준 일도 많다. 그렇게 살면 엄마처럼 무시당하며 살아,라고 말하는 것만은 참았다고 만족했지만 이미 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엄마 게와 아기 게>라는 동화가 생각난다.

엄마 게는 옆으로만 걷는 아기 게가 똑바로 걷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떠한 노력을 해도 변화가 없는 아기 게를 보면서 늘 화를 내고, 속상함만을 표현했다. 하지만 아기 게의 한 마디는 엄마를 깊은 생각의 늪에 빠지게 한다. "엄마도 옆으로 걷잖아요."

물론 동화에서는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른데, 이런 순간이라면 아마도 폭풍 오열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속상한데 그것이 탓이라는 마음이 들면 눈물이 나기 때문이다. 옆으로 걷는 것이 콤플렉스여서 늘 바르게 걸으려고 노력했지만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다 보였구나 싶고, 아이 역시 이미 고칠 수 없는 단점이 되어버렸다는 마음에서이다.


하지만 아기 게는 늘 씩씩했다. 엄마처럼 걷는 게 좋고, 바다를 누비고 땅을 파며 성장해가는 자신이 좋았을 것이다. 내 아이도 그렇다. 분명히 아이는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잘 극복하며 건강하게 자라주고 있으며, 더욱 멋지게 자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엄마의 콤플렉스도 아이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

내가 지우고 싶은 모습들이 아이를 통해 미친 듯이 반짝이며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해낸 영웅으로 기억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기도 전에 자꾸만 생각을 바꾸거나, 사랑을 주어야 할 순간에 인상을 쓰고 호통을 쳐버린다면 그 아이는 '옥사' 천지의 세상에서 친국을 밥 먹듯이 하고, '폐모살제'의 오명을 쓰고 폐위된 체 제주도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게 될 수도 있다.


성군이 되게 하느냐, 폐주가 되게 하느냐는 전대 왕과 함께한 삶과 시간이 중요한 지표가 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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