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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Sep 27. 2022

소현세자와 인조, 부모와 자식은 원수가 될 수 있는가?

feat.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26세 소현세자는...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이 굴욕적 패배를 당하면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머나먼 심양 땅에서 감시와 멸시를 당했을 20대의 세자는 예상외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모두가 그토록 원하던 '변화'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영화 <남한산성> 김상헌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나라에 닥친 비극의 이유와 해법이 무엇인지는 모두들 모르지 않았을 텐데 아버지 인조는 '낡은 것을 버리고 다음을 모색하는 정책' 대신 복수심과 증오만을 이글이글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세자는 청나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것이다. 오랑캐라 여겼던 청나라가 대륙의 맹주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실천력'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모조리 배워서 쓰러져가는 고국을 위해 무조건 실천하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아담 샬을 비롯하여 청의 관리 등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핵인싸 기질을 발휘하며 인지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 인조의 불안과 질투심도 높아졌다. 인조 23년 2월 18일, 9년에 걸친 볼모 생활에서  돌아온 소현세자는 이렇다 할 환영회는커녕 돌아온 두어 달 뒤 학질에 걸렸고, 사흘 뒤 4월 26일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애써 뿌리고 조심히 거둬서 품고 온 또 다른 목화씨가 까만 재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아들의 죽음을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젊고 어여쁜 아내의 험담에 고생만 하다 온 아들과 며느리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까? 물론 인조 뒤에는 반정 공신이자, 척화를 주장하던 서인들이 가득했다곤 하여도 사랑하는 아들이 아닌가!


부모와 자식은 원수가 될 수 있을까?

비정하다고 생각했던 인조인간 같은 인조 대신 소환될 많은 이들이 스쳐간다.

고구려의 수성을 위해 아들에게 명하여 자결케 한 유리왕, 아들을 뒤주에 가둬 굶어 죽게 한 영조도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도 재산 상속, 잦은 폭력, 외도로 인한 배신 등의 이유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뉴스가 종종 나오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방치, 학대, 회피, 포기 등의 수많은 이유로 어린 자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는 뉴스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슬프게도 인간의 욕망은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쉽게 넘어 버리는 것 같다. 친자식하고의 사이에서 정서적, 신체적, 성적 학대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법으로 맺어진 부모 사이에서는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반증해 준다.


돈이 무엇이길래...

권력이 무엇이길래...

사랑이 무엇이길래...

쾌락이 무엇이길래...


욕망은 결국 눈을 멀게 한다. 눈앞에는 죽어가는 백성들과 폐허가 된 세상이 펼쳐져 있지만, 마음속에 가득 남아있는 욕망들만 보려고 한다면 결국은 잔혹사만 만들 뿐이다. 변화와 해결은커녕 그 무엇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보내어 오명만 안을 뿐이다. 조선 시대 선조와 쌍두마차 금쪽이 인조처럼 말이다.

이미지 출처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그렇다.

부모와 자식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의무는 없으니까 말이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 돌려받기 위한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나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내 자식을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 만족을 위해서...

못다 이룬 꿈을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적어도 나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내 자식을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이 미움과 원망의 씨앗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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