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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Oct 18. 2023

무참히 짓밟지 마

'무참히'의 두 가지 뜻

무참히(無慘히) : 몹시 끔찍하고 참혹하게.


'네가 뭔데 나를 무참히 짓밟아??'


'무참히'는 '살해되다', '훼손하다', '당하다' 등의 말 앞에 붙어서 온갖 끔찍한 사건들을 연상하게 한다. 검색창에 '무참히'를 쳐 보면  전쟁, 존속 살인, 배신, 사기, 특수 폭행 등의 연관 검색어가 따라온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렇듯 존재만으로도 우울이 밀려오는 세 글자라서 '무참히'는 우리 인생에서 되도록 배제되어야 하지만 슬프게도 거의 매일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 


A. 오피스 빌런인 그녀가 입사 1년 차인 신입을  공개적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막말을 섞어서.

B. 학생 하나는 매일밤 쏟아지는 부모님의 부부싸움과 잔소리로 가장한 비난 폭격에 무참히 당하고 와서는 내내 울었다.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C. 믿었던 사람에게 돈을 뜯긴 친구는 돈보다 그 사람과 보낸 세월의 허무함에 무참한 심장이라며  소주를 마셨다. 거의 매일.

D.  실시간 뉴스 :  '가자 지구'에서는 기습 공격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심지어 미국,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은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비극을 맞은 사람들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받은 처참한 상처 때문에 한동안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을 가해자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 함정이다.


그런데 '무참히'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無慙히= 매우 부끄럽게.


위에서 말하는 '무참(無慙)'은 자신의 죄나 허물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을 뜻하는데 뭔가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무참하게 짓밟은 사람은 대부분 무참한(無慙한) 마음일 것 같기 때문이다.


A. "능력도 없으면서 핑계는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면 시키는 거라도 잘하든가 정말 민폐야!" 화장실 너머로 들려오는 오피스 빌런의 잔뜩 날이 선 뒷담화의 리듬은 전혀 우울하지 않았다.

B. "넌 왜 그 모양이야? 말로 해. 매일 죽상이니까 재수가 없지. 내가 저런 거는 왜 낳아서는......" 부모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퍼붓는다. 권리라도 되는 것 마냥.

C. "야, 갚는다 갚아! 친구가 이렇게 어려운데 그깟 몇 푼 얼마나 된다고 또 전화질이야? 치사하다 새꺄!" 돈 빌려 준 사람이 늘 죄인이 된다.


무참(無慙)한 그들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가을 하늘을 즐기며 24시간이 비참하고 끔찍한 그들을 잊은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나쁘고......


D. "신의 뜻으로!",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너네가 먼저 시작했다!" 온갖 명분으로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명분인 가족들을 몰살했다.


이런 결과를 보고도 대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무참하다는 것은 분명 신의 뜻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무참히'는 '무'로 시작하는 말들 가운데 최상위 부정어인 것 같다. 사라져도 될 만큼 폭력적인 단어이다. 하지만 '시작!' 신호와 함께 이미 시작되어 버린 참혹한 세상은 '끝' 신호가 올 때까지 '무참히'로 시작되는 헤드라인으로 가득 찰 예정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치고 삶이 파괴되기 전에 알아야 한다.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누구를 위한 폭력인가?'


허무와 후회가 밀려오기 전에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가자 지구든 오피스, 가정 그 어디에서든 누군가를 무참히 짓밟는다는 것은 결코 무참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당연한 권리로 내뱉는 한 마디와 선택은 누군가의 세상을 무참히 파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도 오피스 빌런은 복도를 지나가며 또 누군가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 그 신입 직원은 이미 떠났으니, 그다음 타깃은 다른 이일테고, 그이마저 없다면 그다음은 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라도 그녀와 함께 무자비했던 시간들로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적이 있었을까? 참회해 본다. 내 아이들에게 부모랍시고 맘대로 말하고 행동한 적은 없는지도 반성해 본다. 


'무참히'가 붙는 사건들은 대부분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내로남불 말고 역지사지해야 함을 잊지 말자!



[행시 소회]

: 무참히 짓밟혀보니 무서운 세상인 줄 알겠다고?

: 참고로 네가 그 무서운 세상이었어.

: 히트다 히트! 이제야 깨닫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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