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니스 Feb 22. 2024

대기업에 운빨로 입사하면 겪게 되는 3가지 부작용

Episode 1. 행운과 행복의 상관관계

복은 화를 입고 오고, 화는 복을 입고 온다.
-노자(老子)

취업 준비 시즌에 불안한 마음을 해소할 겸 타로점을 봤었다. 주제 하나에 10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게 비싼 금액이었지만 (신점도 같이 봐준다길래) 속는 셈 치고 들어갔다. 흰 피부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타로마스터가 카드 몇 장을 들춰보더니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실제 방문했던 강남 타로점집

"좋은 일부터 말해줄까요, 안 좋은 일부터 말해줄까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그날은 희소식부터 듣고 싶었다. 좋은 일을 먼저 알려달라고 하니, 마스터는 나에게 ‘합격의 운’ 강하게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내가 가진 본실력보다 더 높게 평가받으며 합격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10만원이 아깝지 않은 달콤한 해석이었다. 부족한 내 실력을 감싸주는 마스터의 말이 따듯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 좋은 일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마스터는 또다시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안 좋은 일이에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신점도 보는 집이라더니.. 공기가 더 스산하게 느껴졌다. 찜찜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바랬던 말은 듣고 왔으니까 말이다.

신입사원 오티날

2개월이 지나 타로마스터 말대로 나는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나의 실력과 배경 덕분도 있었겠지만,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운이 굉장히 좋았음을 알 수 있었다. 금년 채용 경쟁률은 사상 최고였고, 내로라하는 대학 출신들도 대거 탈락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합격자 중 한 명으로서 감사함과 동시에 두려움이 피어났다. 이 쟁쟁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왜 뽑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나는 대기업에 걸맞은 실력을 가진 인재들과 함께 회사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예언대로 나에게 들어왔던 대운의 부작용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부작용 1.
다른 사우와
비교하는 습관이 생긴다


2019년 입사 당시 나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있다’라는 열등감 프레임(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돌기켜보면, 입사 초 내가 겪은 모든 문제들은 이 프레임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는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믿음이 기저에 깔리면 업무 자존감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답게 각종 실패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내가 만든 잘못된 프레임에 대한 믿음은 더 강해졌고, 차라리 커피 심부름만 시켰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오피스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입사원이 업무를 시작하면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건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에 자신이 없다 보니 자꾸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바로 나의 입사 동기에게로 말이다. 내가 헤매는 일을 동기가 손쉽게 해내면 자책하며 무기력해졌고, 동기랑 비슷한 수준으로 해내면 금방 나태해졌다.


그렇게 근 2년간 자기성장에 집중하지 못하는 회사 생활을 하게 되었고, 나는 실력 대신 잔머리만 늘어가는 ‘요즘 애들(MZ세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었다.


부작용 2.
작은 실수에도 심하게 자책한다


업무 자존감이 낮은 신입사원은 어떤 역량을 집중해서 개발해야 하는지 구분하지 못한다. 매사 위축 모드였던 나는 오탈자로 문서가 반려당해도, 연산 실수가 생겨도 매우 수치스러웠다. 다른 사우들은 '아 또 반려네', '이래서 크로스체크를 해야 해' 등 가볍게 넘기는 실수조차 나는 잠을 설칠 정도로 자책을 했다.


작은 실수에도 감정적으로 크게 타격을 받게 되면 정작 중요한 업무에 집중해야 할 때 역량 발휘를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열등감 프레임에 갇혀 있던 나는 '실수 좀 하면 어때?'라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 그렇게 하루종일 진은 빠지지만 업무 능률도 실력도 늘지 않은 채로 출퇴근을 반복했다.


부작용 3.
사내 정치에 의존한다


일에 자신이 없어질수록 사내 인간관계에 집착하게 된다(이것은 진리). 믿는 구석이 자기 자신에게 없으니 기댈 곳을 외부에서 찾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MZ세대답지 않게 팀장님들과의 회식을 즐겼고, 누군가 나의 부족한 실력을 덮어주기를 바라며 든든한 바운더리(빽)를 만들고자 했다. 상무님과 팀장님은 요즘 애들 같지 않다며 나를 예뻐해 주시는 듯했다. 팀 내 또래 사우들과의 약속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수직뿐 아니라 수평적인 인간관계도 좋아야 평판을 만들기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 정치조차 어설프게 했는지, 3년 차에 받은 업무 평가가 나의 민낯을 들춰내버렸다. 그때 내가 유독 분노했던 이유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사내 인간관계에 에너지를 쏟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5년이 지나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는 모습들이 있어 얼굴이 살짝 화끈거렸다. 혹시나 대기업에 운으로 입사하지 않았어도,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에피소드였을거라 생각한다.


‘자기성장에 집중하지 못하는 회사원의 부작용'이라 여기고 타산지석 삼아 독자들의 삶에 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이전 01화 “귀하의 합격을 축하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