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니스 Jul 23. 2024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니까

Episode 3. 그럼 나는?

“엄마, 나도 가방 사줘.”

“언니 쓰던 거 있잖아”

“내꺼 사달라고 내꺼.

광수(남동생)는 얼마 전에 새거 사줬잖아.”

“걔는 남자애니까 따로 필요해서 사준거지.

다음에 커서 사줄게."


나에게는 이런 가방과 같은 물건들이 참 많았다.

물려받으면 되니까 굳이 새것을 사줄 필요가 없는 물건들. 언니랑 남동생은 뭐든 새 걸로 시작하는데 나는 사달라고 졸라야만 새 걸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멀쩡한 물건을 물려받아도 '내꺼'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언니껀데 내가 잠시 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드디어 '내 가방'을 갖게 되었다. 7살에게 가방은 결코 작지 않은 선물이었다. 날아갈 듯 기쁜 와중에 새 가방을 받자마자 나는 네임펜부터 찾았다. 그리고 가방 한편에 아주 큰 글씨로 내 이름 석자를 적었다.


이를 본 엄마는 나를 '유별난 둘째'라고 놀렸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나는 그만큼 온전한 소유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소유권'에 집착했다. 밥상에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가 올라오는 날에는 밥그릇에 미리 계란말이 2~3개를 숨겨놨었다. 계란말이는 고작 10조각도 안되는데 입이 셋이니. 미리 1/3만큼은 선점하고 싶었다.


물론 삼남매 중에 나만 이런 행동을 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엄마가 나에게 계란말이를 얹어줄 거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밥상에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습관적으로 밥그릇에 몇 개씩 먼저 쟁여두곤 한다.


둘째는 '내꺼는 스스로 챙겨야 한다'라는 현실을 빨리 깨닫는다. 그래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심 있게 자란다는 강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 강점은 동시에 결핍도 만들어 낸다. '스스로 챙겨야 한다'라는 사상의 이면에 '챙김 받지 못했다'는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씩씩하고 독립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만 내면에는 '피해의식'이 자라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나도 한 '피해의식' 했다. 아니 여전히 하고 있다. 나의 피해의식은 일상 속에 잔잔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가끔 크게 폭발하기도 한다. 언니한테 나보다 옷을 더 많이 사줄 때. 동생이 나보다 낮은 성적을 받아 와도 잘했다고 칭찬해 줄 때.


그 어떤 것도 나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님에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얼핏 자기 일에만 관심 있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나의 센서는 삼남매 전체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서운함은 30년 동안 켜켜이 쌓여갔다. 나이가 들수록 더 의연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더 치졸해졌다. 묵혀 있던 상처가 엉뚱하게 터져 나오기도 했다. 세상에 완벽하게 공평히 자란 삼남매가 있을까? 나는 그런 판타지를 원했던 것 같다.  


2021년. 30대가 되어 처음으로 삼남매끼리 속초로 여행을 갔었다. 결혼하기 전에 한 번은 삼남매끼리만 놀다 오자는 취지의 여행이었다.


저녁에 중앙시장에서 싸 온 오징어 튀김을 안주삼아 술 한잔하고 있을 때였다. 취기가 오른 언니가 나에게 툭 하고 한마디를 던졌다.


"야, 그래도 엄마가 널 제일 좋아하잖아."


술주정도 가지가지다 싶었다. 엄마가 나를 제일 좋아한다니?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좋은 건 다 언니랑 동생 주기 바쁜데?"

"야 그것도 다 너가 필요 없다고 해서 안준거지. 엄마 밖에 나가면 너 자랑밖에 안 해. 엄마가 언제 너 의견에 반대한 적 있냐."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벙쩌있는 나를 보며 막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빼고 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 양 보였다.


"나는 첫째니까 항상 먼저 혼나고 너네는 맨날 뒤에서 피해 있었잖어."

"나는 막내라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줄 알어. 나는 내 삶에 결정권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술의 힘을 빌려 각자 마음속에 묵힌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첫째와 막내는 상처나 결핍 따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 상처에 취해 언니랑 동생의 입장을 살펴보지 못했다. 항상 내가 약자고 내가 피해자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들도 그들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는 걸 수십 년 외면해 왔다. 둘째만 아픈 줄 알고 둘째만 손해 보는 줄 알았던 나 자신이 너무 작아 보였다.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니까 물론 더 좋아 보였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첫째는 첫째라서 막내는 막내니까 겪게 되는 답답함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고백이 나를 강하게 위로했다. 삼남매 중 그 어디에 있든 각자만의 고충이 있다는 사실이 몇십 년 나를 괴롭혔던 피해의식에 금을 가게 만들어줬다.


이제는 원망하는 마음은 버리고자 한다. 물론 여전히 서운함에 삐뚤어진 심보는 남아 있겠지만 초점을 바꿔서 생각하려고 한다.


다른 누군가도 나만큼 억울하고 서운했던 기억은 있을 거라는 것. 나만 겪는 일이라는 건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