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굴복하느냐, 극복하느냐 - (2)
고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사람의 욕구를 다음과 같이 나눴다.
1. 자연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욕구.
2. 자연적이기는 하되 없어도 상관없는 욕구.
3. 자연적인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욕구.
첫 번째 욕구는 채워지지 못하면 안 되는 욕구이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플 때 밥을 먹는 등 충족하기도 쉽고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다.
두 번째 욕구는 욕구하되 구태여 충족시키지는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욕구이다. 성욕 같은 경우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욕구는 본성적으로 나타나지도, 구태여 충족시킬 필요도 없는 욕구이다. 세 가지 욕구들 중 가장 충족시키기 어려우며 본성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으면서 이 욕구에 빠진 사람은 고통을 받는다. 이 욕구에는 사치가 포함된다.
첫 번째 욕구는 가장 만족시키기 쉬운 욕구이다.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되고 목이 마르면 마시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욕구는 첫 번째 욕구에 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욕구이다.
마지막 세 번째 욕구는 우리 스스로를 기만하는, 결코 충분하게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이면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가장 필요가 없는 욕구이다.
이 세 번째 욕구는 때로 앞에 있는 두 개의 욕구를 더 쾌락적이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빵과 밥으로 식욕을 해결할 수 있는데도 더 좋은 빵, 더 맛있는 밥을 원하게 만든다. 즉, 사물을 기본적 욕망을 해결하려는 용도가 아닌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허영심은 그 끝이 없어 만족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족하다고 여겨 자신의 수입을 뛰어넘어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 모으는 행위, 남에게 과시하고 싶어 빛을 내서라도 과한 소비를 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모두 세 번째 욕구에 포함된다.
내가 이미 부자인데 구태여 다른 사람에게 내가 부자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을까? 내가 음식을 적당하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구태여 어디 가서 무엇을 먹었다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야 할까? 사물의 본질은 그 사물의 역할에 충실할 때 빛을 바란다. 음식은 허기를 채우는 역할이면 충분하고 차는 이동하기에 충분하면 되고 시계는 시간을 보기에 충분하다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사물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어있는 것이 아닐까. 사물이 가진 본질에서 다른 무언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본질을 훼손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양소가 균등한 음식을 먹으면 충분히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하기에 괜한 사치가 이루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누군가는 음식을 만족을 위해 먹는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애초에 인간은 살기 위해 먹었고, 세상이 풍요로워진 후로 그제야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즉 음식의 본질은 살아가는 데 있고, 만족은 사치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른 것들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예를 들어 안전하고 잘 굴러가는 자동차를 부담 없는 가격에 타고 다니면 되는데도 보다 많은 소비를 하며 남들에게 꿀리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리 사치를 부려봤자 진짜 부자들이 소유한 것들은 넘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남들 또한 그 정도는 무리하자고 마음먹으면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다니지 않으면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 불과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그 사람이 먹는 것, 타는 것, 차고 있는 것, 거주하는 곳으로는 판단하지 않기 마련이니까. 허영심에 사로잡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정말 비참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나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에 맞춰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잘 살고 나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는 사실이다.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둘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남의 인생에 신경 쓰기 좋아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데, 남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도 않는 현실에서 구태여 남의 시선 속에 살아갈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진정한 행복들 중 하나는 자신에게 이로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