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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사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_

by 눈꽃

몇 년 전 어느 날, 일의 연장선으로 술 한잔 기울이고 지친 기색으로 들어온 남편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참을 멍하게 있다가 내게 말했다.


"나.. 이제 나가서 오픈할까..."


안방 침대 위에서 자는 아이들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떨군 채 얘기하는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갑자기 머릿속 회로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불과 몇 년 전 똑같은 멘트로 지나가듯 내게 얘기하던 상황에 마치 데자뷔 현상 같다. 그 당시 남편은 진담과 푸념을 오가듯 말했고, 나는 그저 푸념으로 밖에 들을 수 없었다.


왜냐?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 시작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그러던 남편이 몇 년 뒤 또다시 그 한마디를 꺼낸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사실 그가 월급쟁이로만 남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이제껏 내게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사업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사람에게 주는 신뢰도, 신용. 근면성실, 숲을 볼 줄 알면서도 빠른 판단력 등 스케일이 너무 큰사람인데 남 밑에 있기엔 너무 안타깝기만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사실 이럴 때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는 상황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남편 나이 사십. 해가 더 바뀌면 시작 자체를 정말 못할 것만 같았다. 하던 경력 지우고 생뚱맞게 치킨장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얘기가 나온 김에 더는 미루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해... 오빠... 이젠 당신... 해야 맞는 거 같아."

"오빠 같은 사람이 해야 맞는 거지.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당신은 사람이 신용도 좋고, 너무 부지런하고, 판단력도 좋은 사람이라 사업을 하면 당신 같은 사람이 하는 게 맞아."



남편은 작정한 듯 속사포랩처럼 떠들어대는 내 말에 놀란 듯 갑자기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며 입을 뗀다.


"하아... 돈은..."


"......"


망할... 썩을 놈의 그 돈이 늘 발목을 잡는다. 그 와중에 마치 대본을 준비한 것 마냥 나는 다시 떠들어댔다.



"나 이 정도 살아봤으면 됐어. 대출은 좀 있지만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내 나이에 집도 갖아본 경험 있으면 됐지. 혹시나 잘 안되더라도 괜찮아. 이렇게 살아본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지 않겠어?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저질러 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 나중에 돈 모아도 더 나이 들면 따로 나가서 사업하기 힘들어. 지금 해. 지금이 기회야. 경력도 그만하면 됐고 나이도 너무 적절해"


"그리고 회사 나오면 잠시 몇 달은 쉬어. 나는 육아휴직이라도 하면서 내 시간 갖아봤지만 당신은 한 번도 그러질 못했잖아. 꼭 몇 달은 아무 생각 말고 쉬었으면 좋겠어. 돈은... 음...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볼게."



나는 정신없이 속사포랩처럼 떠들어 댄 후, 남편의 그 한마디가 그저 지나가는 푸념으로 끝나지 않도록, 다음날부터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들을 일사천리급으로 진행했다. 사실 자금조달 앞에서 겁이 안 났던 건 아니다.

'망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도 올라왔다. 하지만 그간 봐온, 그가 내게 보여준 모습 앞에서... 남편의 타이틀을 떼고 그 사람 자체를 믿을 수 있는 확신이 있었고, 그대로 밀어주기로 했다. 더 이상 미루지도 잡생각 하지 않고 사람만 보고 투자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남편의 사업자금을 위해 집안의 기둥뿌리를 있는 대로 다 뽑아버렸다. 당시 아파트 담보대출, 내 공무원연금대출, 보험사 대출, 신용대출,

남동생한테까지 돈을 빌려가며 겁나지만 스피디하게 자금을 모았다. 그간 맞벌이하며 월급에서 쪼개 모은 현금과 앞으로 어마무시하게 갚을 돈에 겁나는 자금이었지만, 남편의 기존 둥지를 깨고 나가는 새로운 발걸음 앞에 자금조달 걱정만큼은 최대한 덜어주고 싶었다.



남편의 사업이 시작된 지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사업이란 게 여전히 쉬운 건 아닌 거 같다. 월급쟁이로 있을 때는 생각지 않았던 스트레스 강도로 가끔은 수면제 도움을 빌어야 겨우 잠을 청할 때도 있다. 이럴 때 아내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의 멘털 관리다.



"오빠... 당신이 회사 대표라, 그 자리에 따른 직함의 무게를 견딘다고 생각해야 하나 봐.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해. 당신 지금 받는 스트레스.. 큰 그림으로 놓고 보면 대표로서 당연히 겪는 풍파 같아. 너무 힘들어하지 말자."

"이만한 게 어디야."



남편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헤쳐나갈 때마다 뜬금없이 내게 말한다.



"당신 없었으면 나 벌써 몇 번은 무너졌을 거야."



힘들 때마다 남편은 내손을 꼭 쥐고 나를 정신적인 안식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남편을 다독인다. 역으로 내가 힘들 때도 상황은 같다. 부부란 관계가 무엇이겠나.

서로 지쳐 쓰러져 일어나기 버거워할 때 한 번씩 옆에서 기운 북돋아주고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하는 관계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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