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는 네 살 터울의 남매이다. 처음부터 둘째를 계획하지 않았던 탓일까. 첫째에게는 자연스럽게 챙겨졌던 것들이 둘째에게는 비어 있는 순간이 가끔씩 보인다.
첫째가 태어나고, 우리가 ‘세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을 기념하며 했던 일 중 하나가 가족 도장을 맞추는 일이었다. 같은 글씨체와 디자인으로 하나씩 정성스레 골랐고, 그 도장은 지금도 잘 쓰고 있다. 그런데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둘째 도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필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가 협탁 서랍에서 도장을 찾아내더니 자기 도장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삐뚤빼뚤 자기 이름을 써 내려가는 나이라, 이름 석자만 봐도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자기 것이 없자 결국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내 건 어디에 있어? 엄마는 빨간색, 아빠는 파란색, 오빠는 노란색인데… 나는 무슨 색이야?”
차분히 도장 케이스 색 하나하나를 말하며 묻는 둘째의 눈을 마주 보니,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 것도 똑같이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줘 ^^”
그렇게 말해 놓고도,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주문은 하지 못했다. 우선순위 어딘가에 밀린 그 일은, 점점 기억 속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첫째가 아주 어릴 때, 주식 붐이 한창이었다. 그때 아이 통장을 만들고, 작은 용돈 일부로 주식도 매수했었다. 하지만 그 열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식을 잘 모르는 나는 꾸준히 이어가지 못했고, 어느 순간 그대로 멈춰버렸다.
최근 다시 주식시장이 좋아지면서, 첫째 이름으로 사두었던 주식이 생각났다. 용돈을 조금 더 옮겨둘 생각에 통장을 확인했는데, '정지 계좌'라는 문구가 떠버렸다. 1년 동안 거래가 없으면 정지된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은행에서 통장을 재발급받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둘째 통장은 아예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첫째 통장을 재개설할 때, 충분히 함께 만들 수도 있었는데.
이럴 때면 늘 첫째만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동생으로 자라며 언니가 누리는 것을 보며 부러웠던 때가 있었는데, 막상 부모가 되고 나니 나 또한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처음 무언가를 시도하고 경험해보는 역할은 순서상 첫째 몫일 수밖에 없다. 대신 둘째에게는 다른 장점이 있다. 오빠의 시행착오를 보며 더 좋은 선택만 골라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보면 억울할 것도, 서운할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엔 문득문득 작은 미안함이 스며든다. 그래서인지 둘째에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첫째는 그런 모습을 보고 또 억울해한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마냥 쉽지 않다. 헤아려야 하는 마음이 두 개가 되었으니까.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한 아이도 마음 한쪽이 시리지 않도록, 어느 날 내 말이나 선택으로 작은 상처라도 남지 않도록, 매일 마음을 기울이는 건 내 몫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두 아이의 마음을 다정히 살피는 부모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