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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말의 쓸모

[프롤로그] 교실 '나무'

by 마음의 온도

가을로 넘어가기 전, 햇살이 마지막 힘을 내던 날이다.

어제 내린 비로 말끔하게 필터 청소를 마친 하늘은 찌꺼기 하나 없는 햇살을 흩뿌린다.

오늘처럼 햇살이 가득한 날에는 선크림도 바르지 않는다. 마음 같으면 맨발로 아스팔트 위를 걷고 싶다.

얼굴에 따꼼따꼼 박히는 햇살의 노크소리, 발가락 사이로 햇살이 들어와 간지럽히는 촉감은

상상만으로도 살랑거린다.



하나 둘 셋, 계단을 세며 올라간다.

여덟 단을 오르고 코너를 돌아 다시 여덟 단.

'적당하다.'

운동이라고 하기엔 민망함이 있지만 몸을 움직이는 거리로 생각하면, 괜찮다.

커피가 고플 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쯤이라면 참을 인을 써야겠지.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고,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면 한 끼 정도는 굶는 날도 있을 거다.

2층은 적당한 거리다.

숨이 차지도 않고 귀찮지도 않은 거리.

부담이 끼어들지 않을 적당한 거리.



복도 끝, [교실, 나무]라는 간판이 보인다.

처음에는 클래스라 지으려 했다. 같은 단어도 영어가 들어가면 있어 보인다. 외국어 프리미엄 효과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세탁소 간판은 컴퓨터클리닝으로 변신하면서 전문성이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발소보다 바버샵이 왠지 세련되게 변신을 해줄 것 같고, 헬스장이 피트니스센터가 되면 프로페셔널이 옵션으로 붙는다.

외국어 프리미엄 효과를 적용하고 클래스로 할까 했지만 마음을 바꿨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와야 할 곳이 프리미엄이라는 무게에 눌릴까 봐.

오는 사람도, 함께 하는 나도.


교실이라는 이름이 올드해 보일까. 생각이 들기도 한건 사실이다.

교실 하면 노래 교실, 요리 교실이 먼저 떠올랐으니까. 하지만 생각의 핸들을 돌리니 괜찮았다.

교실이면 어때. 신나면 노래를 부를 수도 있지. 어떤 날에는 요리를 해서 나눠 먹을 수도 있으니까.


삐삐삐삐 띠릭-

도어록을 열고 교실로 들어간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습기에 젖은 나무 냄새가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다.

정사각형 반듯한 네모 공간에는 그 옛날 교실에서 보았던 나무 책상과 의자 다섯 세트가 동그랗게 마주 보고 있다. 사실 교실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나무 책상과 의자, 그중에서도 나무 의자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유난히 작았던 그녀는 늘 의자가 크고 무거웠다.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기에 늘 발을 앞뒤로 흔들며 수업을 했고,

때로는 선생님한테 ‘발 정지’라는 눈신호도 받았고,

덕분에 발을 흔들고 발을 꼼지락거리며 글짓기를 했다.

자그마한 아이는 발을 흔들면 콧노래가 나왔고, 다양한 과목이 적힌 공책은 습작의 운동장이 되어주었다.


그 시절의 감성을 담은 그 나무 책상과 의자는 특별 주문제작을 해야 했다.

인테리어 소장님은 자기 소관을 넘어섰다며 솜씨 좋은 목공방을 소개해주었다.

목공방 청년은 선생 김봉두 같은 영화에서 본 것도 같다며 흥미로운 관심을 보였고,

다소 까다로운 고객의 주문을 성실히 맡아주었다.

모든 것은 전문가에게 맡기겠다. 다만 나뭇결이 살아있는 목재였으면.

참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 윤기 나지 않았으면. 55 사이즈부터 XL사이즈까지 사이즈별로.

그들의 엉덩이보다 너무 크지 않게 딱 맞는 사이즈로.

의자 다리는 그들이 앉았을 때 발이 동동 떠오르는 높이로. 발이 그네 타듯 왔다 갔다 흔들리며 놀 수 있게.

한국인 표준 체형부터 검색해야겠네요.

모든 것을 맡기겠다면서도, 모든 것을 규정한 앞뒤 다른 고객을 목공방 청년은 오히려 흥미로워했다.


폴딩도어로 된 유리창을 한껏 밀어붙인다.

햇살 밑에 숨어있던 바람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춤을 추며 입장한다.

하얀 커튼이 바람들의 걸음에 맞춰 사알랑 살랑 환영인사를 한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그림을 좋아한다.

빛과 바람의 화가로 불리는 그녀의 작품에는 푸른빛의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윤슬, 바람에 하얀 커튼이

날리고 있다.

액자 구입을 미룬 건 잘했어. 하얀 커튼으로 하길 잘했어.


바람과 커튼의 스탭에 맞춰 테라스로 나간다. 빈 공간인 테라스는 아무것도 없다.

인테리어 소장님은 공사를 하는 내내 이 공간에 대해 질문을 했고,

주문한 책상과 의자를 갖고 방문한 목공방 청년은 비어있는 테라스를 아까워했다.

지금은 텅 비어있는 빈 공간이 좋다. 아무것도 없는 그냥 빈자리.




마음속이 꽉 차서 포화상태인 날들이 많았다.

가슴속에서 뱉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에 걸려 가래처럼 그렁그렁하던 날들이었다.

눈치 없이 머릿속에서는 나가지도 못할 줄 알면서도 말들이 생성되었고,

그 말들은 점점 나쁜 아이들로 가득 찼다.


상처는 결국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무심코 던진 말, 농담이라며 포장된 말, 장난이라며 치부된 말.

돈을 잃은 상처는 시간이 지우지만, 말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말은 온기를 주기도 하지만, 온기를 빼앗기도 한다.

가볍게 흘려보낸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사라진 말은 흔적이 없지만, 그 상처는 흉터로 남는다.


세상 쓸모없는 한마디.

한마디에 한마디가 겹쳐 쌓이며 나무처럼 자라 간다.

한마디만 달라져도, 우리의 나무는 다르게 성장할 수 있다.


이곳은 말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작은 교실이다.

함께 생각하고, 연습해 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자리.

'쓸모없는 말의 쓸모'를 이 자리에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안녕하세요. 교실 '나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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