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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정원 May 23. 2023

생긴 대로 살자


 나에게는 잘못된 판단이나 언행은 없었는지 하루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가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떤 선택과 대처를 할 것인지 생각해 본다. 



 부드러운 인상에 마음씨가 고운 오래된 친구가 있다.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도 않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특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바쁘게 살아온 영향인지 차분한 성품과는 다르게 허둥대고 잘 부딪치고 넘어지고 잘 잃어버리곤 한다.  

 남편이 하는 일에 특별히 반대하는 일이 없고 조선 시대 여인처럼 순종적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가 있는지 물으면 빙그레 웃으며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나와 정반대다. 남편 앞에서는 당신 말이 옳으니 그렇게 하자고 동조하고 행동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한다. 남편의 반응이 궁금하고 결과가 궁금했다. 물어보니 이미 엎어진 물을 어떻게 하겠냐고 한다. 깜빡 잊었노라며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 끝이란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대로 다하고 살았다고 한다. 

 마음씨 고운 그 친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런데 친정엄마까지 모시게 되었다. 오빠가 넷인데 외동딸이 친정엄마를 모시겠다고 하니 남편의 반대가 컸지만 결국 두 분을 모두 모셨다.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오신 걸 어떻게 가시라고 하느냐고 울면서 남편을 설득했다고 한다. “외유내강”의 표본이고 현명하다.


 그러니 말을 하면 실천을 해야 하고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정반대다. 납득이 가지 않거나 지키지 못할 일에는 절대 동조하지 못한다. 정의의 사나이도 아니면서 불의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나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부딪친다. 그래서 친구들은 나를 똘똘하고 똑 부러진다고 한다. 친구들 말대로 부러지다 부서지고 만다. 누가 봐도 남편은 나에게 꼼짝 못 하는 것 같다. 억울하게도 친정에서조차 남편에게 잘하라는 말을 듣는다. 이렇게  친구처럼, 남편은 지고도 항상 이긴다. 내 뜻대로 한 것이 거의 없다. 결국에 백기를 드는 것은 나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기분 좋게 하면 될 일인데 어리석기 짝이 없다. 모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인 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못하는지 모르겠다. 정의파도 아니면서 어물쩍 넘어가지도, 아니라고 믿는 것에 동조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오늘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와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나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헛산 것 같아서 갑자기 우울해진다. 집에 오는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앞으로는 실속 있게 살자 다짐을 해 보지만 안 될 것을 알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 생기면 난 또 그렇게 할 것이 뻔하다. 어차피 변하지 않을 성격이다.


  야무진 것 같지만 실속도 없는 똑똑바보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덕에 어쩌면 가족들은 편했을지도 모른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또, 바보처럼 다 내어주는 일은 아무나 못 하는 일이다. 이것이 자기 위안일지라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어떻게 바꿀 수가 있겠는가. 그냥 생긴 대로 살자. 그게 가장 나다운 것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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