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을 키우면 정신 건강과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요즘은 반려 동물이라고 부르며 키우는 가정이 많아졌다. 애완동물은 가족과 마찬가지로 대화의 상대가 되기도 하고 즐거움과 위안을 주지만 반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고 심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며 하교 길에 병아리를 사 왔다. 어디서 키워야 할지 암담했는데 일주일만이라도 키우게 해 달라고 허락을 구했다. 얼마나 살까 싶어서 일단 새 장에서 키우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어도 죽지 않고 살았다. 어이없는 것은 병아리라고 사 왔는데 크니까 오리였다. 파는 사람을 믿었고 너무 작아서 닭과 오리를 구분 못 했던 것 같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며 오리 몸집이 점점 커지니 새장이 작고 답답해 보였다. 마침 우리 집이 1층이어서 밖에서 키우기로 했다. 나무에 오리 다리를 매어 놓고 물을 가득 담은 커다란 대야와 먹이를 놓아주었다. 관리실에 민원이 들어오면 다시 데리고 들어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민원은커녕 오리는 아파트 귀염둥이가 되었다. 매일 어린아이들이 와서 오리를 들여다 보고 풀을 뜯어 주거나 배춧잎 등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하며 놀다가 갔다. 오리는 어떻게 아는지 아침이 되면 밥을 달라며 현관을 바라보고 꽥꽥 울었다. 오리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졌다. 어느 날 아침에 나가 보니 오리가 없어졌다. 아이들은 오리 찾기 전에는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울며 찾아다녔다. 찾아다니다 보니 전날 저녁에 앞 동에서 쌀 배달 온 사람이 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겨우 쌀집을 찾아 안전하게 오리를 찾아왔다. 오리는 우리 집 셋째 딸로 입지를 굳혀갔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니 오리 주거에 대한 근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베란다는 너무 춥고 그렇다고 거실에서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설득해서 농장 하는 집으로 보냈다. 한동안 아이들은 오리라는 말이 나오거나 그림만 봐도 보고 싶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이 들었는지 한동안 나무 밑에서 오리가 꽥꽥거리는 것 같았다. 괜히 키워서 섭섭함만 남겼다.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다듬는데 엄지손톱보다도 커다란 달팽이가 나왔다.
작으면 버리면 되는데 너무 커서 차마 아무 곳에나 버릴 수가 없었다. 나무 밑에 두자니 더운 날씨에 말라죽을 것 같았다. 고민하다 대야에 물과 배춧잎을 넣어 주고 임시로 살 수 있게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배춧잎을 제법 갉아먹고 배설물이 많아서 하루만 샤워와 청소를 안 해 주면 지저분했다. 하루 일과는 청소를 해 주고 달팽이 몸을 씻겨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싱싱한 먹이가 없는 날에는 일부러 야채를 사러 장을 보기도 하고 배춧잎을 얻어 오기도 했다. 어느 때는 달팽이가 없어져서 찾아보면 욕실 벽을 타고 천장 가까이까지 올라가 있었다. 혹시나 자신도 모르게 밟거나 떠내려 보낼까 걱정이 되어 욕실에 가면 가족들은 조심조심 달팽이 위치부터 파악했다.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달팽이는 몇 달을 살면서 알을 낳았다. 알이 뭉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흩어져 끈적한 액체로 싸여 있어서, 알인 줄도도 모르고 씻기는데 등껍질이 깨지더니 2~3일 만에 죽고 말았다. 알고 보니 흙도 넣어 주어야 하는데 흙이 없어서 칼슘 부족으로 죽은 것이라고 한다. 달걀 껍데기를 빻아 주었는데 부족했나 보다. 차마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 휴지로 고이 싸서 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부주의로 등이 깨져 죽은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한동안 욕실에 들어가면 달팽이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이 눈에 아른 거려서 미안하고 우울했다.
핵가족과 저출산으로 점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줄어들고 1인 가구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대화 대상으로 반려 동물이 되기도 한다. 자연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말이 많아진다. 그런데 반려 동물이 건강하게 잘 있으면 좋은데 아프면 모두의 근심거리다. 말을 못 하니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고 안타깝기만 하다. 18년간 키운 반려견이 죽으니 부모가 죽은 것 보다도 슬퍼서 밥이 목에 안 넘어간가는 소리를 들었다. 좀 심하다 싶긴 하지만 그 사람의 슬픔이 이해는 간다.
아무리 작아도 생명체는 정을 주게 되고 사람보다 수명이 짧아서 떠나면 한동안 달라지는 분위기에 모두 침울해진다. 키우지 않았으면 느끼지 않을 공허함과 우울함이다. 그래서 나는 애완동물이 싫다.
그럼에도 항상 나를 반겨주고 좋아하는 반려 동물을 키우고 싶다. 기회가 되면 밥을 달라고 짓거나 쫓아다니고 무릎 위에 앉아 애교 부리는 강아지를 키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