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출간 일기인가, 투병 일기인가.
출판사와 약속한 날짜 안에 나는 초고를 탈고했다. 투고할 당시에도 눈이 빠져라 여러 번 살펴봤던 원고인데, 나의 원고는 여전히 미완성인 느낌이다. 계속해서 단어를 고민하고, 표현을 수정했다. 며칠 밤을 꿈속에서도 문장을 뜯어고치는 꿈 아닌 꿈을 꿔가며 마침내 탈고한 것이다. 출판사에 다시 원고를 보내고, 나는 추가로 수정해야 할 부분은 없을지, 나의 글이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초조함과 설렘 사이의 마음으로 출판사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한 주가 지나고, 두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록 원고에 대한 답변은 오지 않았다. 분명 계약할 당시 나에게 이쯤에는 출간될 거라고 언급했던 출간 예정 시기는 이미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마냥 기다리지 말고, 중간중간 출판사에 연락을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폭탄 넘기기처럼 나의 원고를 떠맡긴 채 더 큰 폭탄을 맡게 될 성싶은 나의 두려움과 비겁함이 결국 출간 과정만 늘여버린 꼴이 됐다. 출판사의 업무 여건상 나의 원고만 들여다볼 수가 없다는 건 알지만 서로 진행 상황 정도는 자주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작가와 출판사는 계약을 한 이상 갑-을 차원을 떠나 하나의 책을 출간하기 위한 협업하는 관계가 아닌가. 우리는 출판 계약으로 묶인 동반자다. 궁극적으로 “내 책”이 잘 팔리도록 더 좋은 내용과 더 나은 품질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 목에 자라난 혹 하나를 발견했다. 귀에서 7cm 정도 내려온 지점, 왼쪽 목 중앙에 봉긋하게 튀어나온. 누가 봐도, 얼핏 봐도 혹이었다. 지난달 한창 투고한 후, 출판 계약을 하기 전까지 앓았던 임파선염이 문제였다. 하지만 항생제를 아무리 먹어도, 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혹의 개수는 하나둘 늘어만 갔다.
“목 내부에도 여러 개의 혹이 있는데, 모양이 많이 안 좋습니다.”
동네 병원에서 두경부 CT와 초음파를 검사하고, 곧바로 소견서를 받게 됐다. 그렇게 나는 원고의 교정·교열 작업을 거치며 동시에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병명이 뭔지도 모른 채, 나는 2주일에 한 번 대학병원을 오가며 혹 관리에 들어갔다. 나는 나의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병명은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 림프종 환자를 위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치료 방법과 투병 과정 등 여러 의료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걱정 인형인 나는 완치율과 항암 가발 업체까지 알아보며 좌절의 늪에 빠졌다.
‘아직 아이는 10살인데 어떡하지? 어쩌면 나의 이 첫 책이 유작인 걸까.’
절망 가득한 여러 날을 보냈다. 교회에서는 눈만 감아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고, 대학병원을 오가는 차 안에서는 긴장을 풀고 싶어 일부러 크게 틀어 놓은 팝송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주유하기 위해 들른 주유소에서는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이 와중에도 내 마음과 혹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나의 원고는 수정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로부터 추천의 말을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보통 추천사는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나 대학교수 등 저명인사에게 받는다. 작가가 직접 추천사를 받을 수 있는 혹은 추천사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작가가 먼저 컨택을 하게 되고,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추천사를 제외하거나 출판사에서 적당한 사람에게 따로 받기도 한다. 책의 내용과 관련된 분야의 전현직 전문가에게 받는 것이 가장 좋지만, 나의 경우는 에세이이기에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의 지인이 가장 적당한 듯했다.
나는 지금까지 방송 프로그램에서 함께 일했던 MC와 친하게 지냈던 패널, 전공 교수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갑자기 연락하게 되어 상당히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럴 땐 내 상황이 특효약이었다. 이 책이 유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상상 속에 빠져 나는 용감하게 연락을 돌렸다. 정중한 인사와 함께 나의 원고를 함께 보냈고, 나는 함께 일했던 방송국 기자와 나에게 브런치 글쓰기 수업을 강의한 정희정 작가에게 추천사를 받을 수 있었다.
교정·교열을 거치며 원고에 그어있던 빨간 줄도, 수정을 요구하는 내용도 점차 줄었다. 그 후, 나는 하나의 표지를 받았다. 나의 원고를 디자인화하며 만든 책의 표지다. 한글 문서에서 보았던 활자가 그림처럼 구현된 표지를 보며 감동과 묘한 떨림이 밀려왔다. 표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셨지만, 그저 감격에 겨운 나는 뭐든지 좋았다. 여기에 살짝 나의 책 표지를 공개해본다. (저의 글이 공감된다거나 책이 기대된다면 소중한 라이킷 하나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제는 겉표지부터 삽화가 얹힌 본문, 마지막 책 정보까지 담긴 PDF 이미지 파일을 받았다. 이것을 최종교, 저자교라고 부른다. 이제 원고 편집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파일 형식이 문서가 아니라 이미지 파일이기 때문에 색연필로 오탈자를 표시, 수정하는 정도다. 인쇄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에 최대한 바로바로 수정본을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것이 좋다.
이제 끝이 보여서일까. 안 그래도 바쁜 출판사와 투병 생활하던 내가 제일 속도감 있게 수정·보완을 주고받았다. 봐도 봐도 고칠 것이 나오던 나의 원고는 이제 찐찐찐최종본이 되었다. 그렇게 애증으로 낳은 나의 찐찐찐최종본은 인쇄에 들어갔다. 이제 곧 출판사의 배려로 저자 증정본을 받아볼 예정이다. 책의 무게, 표지의 감촉은 분명 PDF와는 또 다를 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좋은 소식! 나의 목부터 머리와 어깨까지 뻐근할 정도로 그 존재감을 자랑하고, 내 몸과 마음을 굳어버리게 만든 나의 혹들은 기적처럼 사라졌다. 그동안 대학병원에서 받은 각종 검사를 통해 나의 병은 림프종이 아니라 ‘기쿠치’라는 림프절염으로 판명됐다. ‘기쿠치병’은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질환으로 목 주위에 림프절 비대와 통증, 발진 등이 동반되는 질환으로 면역력이 약하거나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의사의 조언대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생활에만 집중했다. (절대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에 브런치스토리 앱의 알림도 철저히 무시한 채 나의 창작활동도 무기한 멈췄었다) 마침내 나의 목에 자라났던 커다란 여러 개의 혹은 종적을 감추었다. 어떠한 약물 치료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보내는 시간이 약이었나 보다.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이처럼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투고부터 무한 퇴고를 거쳐 인쇄소로 넘겨지는 날까지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았다. 출판사와 보이지 않지만, 긴장감 넘치는 핑퐁이 있기도 하고, (물론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응답 없는 지지부진한 과정을 견뎌야 했다. 출산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지난한 과정 끝에 나의 자식 같은 나의 첫 책이 이제 곧 세상에 나온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