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만족스러운 퇴고란 없다.
유독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온통 빨간 옷차림의 어르신 유튜버들과 태극기 물결이 아이러니하게 뒤섞인 광화문 거리에 섰다. 광화문 광장부터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 이르기까지 빽빽하게 들어선 인파 때문에, 평소 한복을 차려입고 경복궁을 찾는 외국인들과 작은 골목 사이 여유롭게 휴가를 보내는 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에, 이곳에서 태극기가 왜 휘날려야 하는 걸까 싶은 짜증과 함께 인상은 절로 찌푸려졌다. (부디 이 땅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다시금 역사에 아로새기는 오늘이 되길... 소중한 한 표 꼭 행사하세요!)
하지만 당시의 그 언짢음도 잠시, 나는 금세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마치 어느 광고에서처럼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이어폰을 낀 채, 주변 소음에도 아랑곳없이 나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이 날은 내가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행복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출판 계약하는 날이었다. 햇살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출판사 대표님과 기분 좋은 미팅을 마치고, 계약서를 두 손에 받아 들고선 집에 돌아왔다. 출판 계약 소식에 지인의 꽃다발과 남편의 축하 케이크, 아들의 진심 어린 축하도 더해졌다. 황홀한 밤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출판 계약을 했다는 것은 작가의 원고를 출판사가 그 가치를 인정함과 동시에 출판을 위한 투자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언뜻 작가의 역할을 다한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특히 자비출판도 아니고 기획출판으로 진행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할 일은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출판 계약부터 초판 인쇄까지의 과정은 마치 폭탄 돌리기와 그 맥락이 같았다. 여기서 폭탄이란 불행히도 내 원고를 뜻한다. 나의 원고를 다시 다듬어야 하는, 무한 퇴고 작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내가 계약한 출판사의 경우에는 에세이라는 장르적 특성과 특정 전문 분야가 아닌 ‘엄마(전업주부의 삶)’가 주제라는 점을 고려해 나에게 수준 높은 원고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만족이란 없었다.
문제는 나의 원고를 다시 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어느 배우가 부끄러운 탓에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절대 보지 않는다는데, 그 마음과 비슷할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쓴 걸까, 이 문장이 말이 된다고 쓴 걸까. 낯부끄러운 벌거숭이 같은 원고를 다시 마주한 나는 마음 깊이 절망마저 느꼈다. 이 원고에 공감하고 응원해 준 출판사 대표님께 경의마저 든다. 원고를 뜯어고치며 내가 애초에 제목과 목차를 가닥 잡지 않은 채, 글감이 생각나는 대로 먼저 풀어냈던 것이 나의 크나큰 과오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차별 흐름이 끊어지는 느낌과 주제마다 일정하지 않은 분량은 내내 나의 마음을 옭매였다. 매일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글쓰기를 해왔지만 후반부에는 내가 그저 분량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닐까 아쉬움마저 남았다. 성에 차지 않는 원고를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내 마음에 드는 의문 하나.
이 글을 정말 책으로 만들어도 될까?
출판 계약을 해냈다며 하늘로 치솟았던 자신감은 어느새 허공에서 펑펑 터지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3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원고를 다시 들여다본 결과, 난 도무지 내 원고에 만족할 수가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퇴고의 때가 된 것이다. 내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면서 창피함을 애써 겸손으로 가장한 채 출판사에 수정된 원고를 보냈다. 여전히 지금의 원고 수준에 있어서 만족감이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이라도 다시 원고를 열면 나는 계속해서 수정의 굴레에 갇힐 테다. 하지만 퇴고하면서 느낀 나의 고뇌는 이제 멈출 때가 됐다. 내가 밤잠을 쪼개고, 낮에도 내내 원고를 들여다본다 한들 엄연히 출판사와의 마감 시한이 있기에 결국 퇴고의 끝을 맞이했다.
한껏 피폐해진 나는 출판 계약일로부터 3주간의 첫 퇴고 기간을 보장받았음에도 “작가님, 원고 언제 주시나요?” 하고 간간이 독촉 아닌 독촉을 해대는 출판사 대표님께 모종의 감사마저 해야 할 판이었다. 이제 나의 손을 떠난 원고는 출판사의 편집 과정을 거치고 있다. 부족함이 뚝뚝 묻어나던 나의 글은 과연 어떻게 다듬어져 나올까? 이제 폭탄은 출판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