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희열은 클릭 하나로 결정된다.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낸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메일 수신 알림을 켜는 일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출판사의 답장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평소에는 급한 메일이 없어,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도 이 삼일에 한 번 정도였다. 하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기다리는 메일이 있으니, 난 수시로 메일함을 확인하게 됐다. 이번에 메일 수신 알림을 켜두었더니 내 메일함에는 생각보다 잡다한 메일이 많이 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왕 메일만 들여다보는 김에 메일함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깨끗한 메일함에 출판사의 답장을 기다려본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뒤덮인 내 마음까지 비우는 효과는 덤이다.
투고 메일을 보낸 다음 날, 나의 메일함에는 여러 출판사의 답장이 도착했다. 가장 많은 메일은 검토 안내 메일이었다.
<투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OOO 출판사입니다.
먼저 저희 출판사에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투고하신 원고는 현재 담당 부서에서 확인 중입니다.
검토 기간은 최대 한 달이며, 채택된 원고에 한해서 연락드립니다.
앞으로도 저희 출판사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OOO 출판사 드림
규모가 있는 출판사의 경우에 위의 내용과 같은 안내 메일은 무조건 발송하는 듯하다. 어느 출판사들은 같은 AI가 답장을 보냈나 싶을 정도로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아주 똑같은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그런데 검토 기간이 무려 한 달이라는 곳이 많았다. 한 달이라니.. 사람을 말려버릴 셈인가 싶다. ‘원고가 마음에 드는 만큼 검토 기간은 알아서 줄어들겠지’ 라며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다른 답장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다음으로 많이 받은 메일은 안타깝게도 반려 메일이다. 메일 제목에는 내가 먼저 보냈던 메일에 회신 표시만 붙여져 있어서 메일을 클릭하기 전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클릭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둘 반려 메일에 낚이다 보면 나중에는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하고 메일을 여는 습관이 생긴다.
<RE: 원고 투고>
작가님, 안녕하세요.
귀한 원고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는 맞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반려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좋은 인연 맺으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OO 출판사 드림
위의 내용처럼 간략하게 반려하는 출판사도 있었고, 조목조목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설명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됐든 거절의 의사도 명확하게 회신하는 출판사들은 매우 호감이다. 일단 나의 원고를 읽었다는 것과 출판사의 특성과 맞지 않은 부분, 나의 원고에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것 모두 출판사의 성의가 담긴 가치 있는 답장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은 투고한 지 두 달 정도 되었는데, 메일 주소의 문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아직도 내 투고 메일을 읽지도 않은 출판사도 있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거절이라도 빠른 답변을 받는 것이 훨씬 좋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는 메일도 여러 개 도착했다. 저희 출판사에 투고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출판사의 방향성과 맞아서 나의 원고에 관심이 있다는 듣기 좋은 소식! 참 행복했다. 나의 원고가 공감을 이끌어 내고, 출간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고무적인 소식에 내 심장은 벌렁벌렁 감격의 도가니다.
나의 원고에 관심을 보인 여러 출판사 중에는 기획 출판, 완전 자비 출판, 반자비 출판 제안도 있었다. 또 예약 출판을 진행한 뒤 프로모션 기간 동안 판매되지 않은 책을 작가가 할인가에 구입하라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 제안도 있었다.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출판 제안에 난 카오스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