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를 결정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출판 제안이었는데…. 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출판 제안으로 그만 혼돈에 빠지고 말았다. 출판 경험이 없는 초보가 선뜻 출판사를 결정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따랐다. 일단 출판 계약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투고 전에 미리 다양한 출판 방식과 각 출판사가 진행하는 출판 방식에 대해 미리 파악해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무지한 탓에 고민의 골만 깊어졌다. 하지만 발등에 불 떨어졌다고 함부로 불씨를 날릴 순 없는 법. 마음 졸이면서 투고한 나를 보듬어주듯이 내게 긍정의 답변을 준 출판사들을 꼼꼼히 따져봤다. 기획출판, 반자비 출판, 자비출판, 예약출판, POD출판 등 출판사가 제시하는 형태마다 뚜렷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기획출판은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출판 형태다. 기획출판에서 출판사는 편집, 디자인, 마케팅, 유통까지 전 과정을 담당한다. 출판사의 인력과 시간과 비용이 모두 수반되는 출판 형태다. 때문에 출판사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신뢰할 만한 작가, 투자할 만한 원고로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라 진입장벽이 높다. 대형 출판사들은 사회적인 명성과 지위가 있거나 출판 경험이 많은 작가들을 먼저 섭외해 키워드나 목차부터 함께 기획하는 경우도 많다. 기획출판에서 작가는 보통 원고와 개인적인 마케팅을 담당한다. 작가의 비용 부담이 전혀 없기에 인세는 작가의 경력에 따라 5-10% 수준에 그친다.
반자비 출판은 기획출판과 자비출판의 중간 형태로 이해하면 쉽다. 출판 비용을 작가와 출판사가 나누어 부담한다. 보통 작가는 초판 인쇄비를, 출판사는 그 외 비용을 맡는다. 작가의 비용 부담이 발생하므로 인세는 기획출판보다 높은 편이다.
자비출판은 작가의 전적인 비용 부담으로 이뤄지며,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서 제작, 유통하는 형태다. 출판사마다 기획과 자비출판을 병행하는 곳도 있고, 자비출판만 진행하는 출판사들도 꽤 있다. 자비출판은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아서 완성된 원고와 출판 비용만 있다면 빠른 진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작가가 원하는 방향대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출판사는 원고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완 방향을 제시하고, 교정, 교열을 지원한다. 출판 비용은 출판사의 계약에 따라 굉장히 상이하다. 책의 크기와 책 내부의 글씨 색깔 개수, 삽화 개수, 전체 페이지 수, 마케팅 방법에 따라 철저하게 따져 계산하는 출판사도 있다.
일부 출판사는 예약출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비출판처럼 작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정식 출판에 앞서 예약 프로모션 기간을 정해 마케팅을 진행하고, 판매량이 애초에 계약한 판매부수에 못 미친다면 남은 책은 작가가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해야 한다. 이렇게 작가의 지출이 큰 자비출판의 경우, 인세는 30~50%로 가장 높은 비율로 책정된다.
(모든 출판 계약은 계약하기 나름이다. 참고만 하시길!)
출판 방식과 과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나는 이제 내 원고에 관심을 표해준 각 출판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 제안해 준 내용을 고려함과 동시에 나의 원고와 비슷한 결의 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지, 어떤 마케팅을 진행했는지, 출판사 관련 기사까지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계약하고 싶은 출판사를 추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출판사를 결정했다.
내가 출판사를 결정하는데 가장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단순하게도 그냥 나의 느낌이었다.
메일 한가득 나의 원고에 대한 감상평과 보완할 점을 빽빽하게 적어준 출판사도 있었고, 무조건 출판이 가능하다며 바로 연락을 달라는 출판사도 있었다. 또 뭐든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더니 나의 모든 질문에 계약하기 나름이라고, 미팅을 유도하는 출판사도 있었다.
저마다 나에게 큰 인상을 남겼지만 내가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었던 것은 한 출판사 대표의 짧은 메일이었다. 나의 원고와 같은 시리즈를 만든 출판사라 나의 글에 큰 관심이 간다며 부담 없이 커피챗 하자는 내용이었다. 출판 형태나 계약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6줄이 채 되지 않는 간단하고 짧은 메일이었다. 나는 이 메일을 받고, 그냥 궁금증이 일었다. 아주 흔하고, 평범한 소재의 나의 이야기에 이 출판사 대표는 왜 관심을 가졌을까, 도대체 어떤 계획을 가졌을까, 나의 글에 공감하는 내용은 어떤 지점일까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정말 대표의 제안대로 부담 없이 연락하게 된 것이 나를 출판 계약으로 이끌었다. (협의하는 중간에 대표의 바쁜 일정 탓인지 내게 약속한 안내 메일이 오지 않고,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는 불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 출판사랑 먼저 협의하고, 매듭을 지은 후에 그다음 순위의 출판사와 협의하는 것이 상도덕이겠다며 나의 지조를 지킨 것도 한몫했다.)
출판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의 원고와 같은 소재의 시리즈를 출판한 출판사라는 점, 무엇보다 대표가 나의 원고를 따뜻하게 공감하고 지지해 준 점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던 3월의 화창한 어느 날, 비로소 나는 출판 계약을 이뤄냈다. 10년 전, 나를 수식하던 “작가”라는 칭호를 다시 얻게 된 날이었다. 내게 일어난 꿈같은 현실에 가슴 가득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리고 또다시 작가의 삶은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