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글도 내놓을 때가 온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숨이 턱 막히는 것처럼 메말라버린 마음에 나의 글도 턱 멈추는 그런 날이 있다. 한글 프로그램을 켜두고, 깜빡거리는 커서만을 응시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는 내가 애정하는 작가들의 브런치북을 들여다본다. 기가 막힌 비유에 술술 읽히는 주옥같은 글은 오늘도 나를 하염없이 작은 아이로 만든다. 나는 왜 이리 부족한 어휘력과 어설픈 문장력뿐인지 이따금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글을 읽음으로써 나도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을 자연스레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한 꼭지로 준비하는 분량은 A4 2장 반 남짓. 어렵지 않은 주제로 나의 이야기로 채우다 보니, 대부분 한 꼭지의 분량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미련이 남지 않게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한바탕 수다 떤 다음, 하나둘 덜어내는 작업이 필수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분량을 설정한 것은 보통 출간된 에세이 책에서의 한 꼭지 분량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 분량을 맞추며 글을 쓰고, 정리하다 보면 언젠가 출간할 때에 조금 더 작업이 수월하지 않을까 했던 심보다.
“어설픈 수식어 말고 거창한 겉치레 빼고
진실한 마음만 담아 나만의 글쓰기 시작”
지긋지긋했던 방송작가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자발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서 한 가지 마음에 새긴 것이 있다. 나의 브런치 작가 소개에도 담은 말이다. 방송작가로 일할 때는 사실 나의 글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내가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쓴 글이라고는 성우가 더빙하는 초 단위의 내레이션 대본이나 MC가 설명하는 대본, 영상에 포함되는 자막 정도다. “나의 글”이라기엔 나만의 감성이나 표현을 드러내지도 못한다. 소소한 농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심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함께 일하는 PD, 부장, 국장까지 최종 시사를 거치려면 12세 정도가 이해할 만한 쉽고, 재미있고, 편안한 글이 최고였다.
하지만 나는 본격적으로 브런치북을 연재하면서 “나의 글”이란 무엇일까 나날이 더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문학적 느낌을 담고 싶으면서도 내 아들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표현은 삼가고 싶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 문장을 쓰면서도 글쓰기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겉치레, 수식어 다 빼고 솔직 담백하게 쓰고 싶은 대로 나의 글을 쓰겠노라고 말이다.
글을 쓰게 된 계기도 그동안 전업주부로 살면서 잊고 살았던 “나”를 되찾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마흔 살을 앞두고 시작된 나의 자아 찾기는 나의 뿌리, 원가족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가족, 남편과 아들과의 관계와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에피소드들을 함께 기록했다. 또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취향,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나의 일상을 되짚어보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는, 기대와 설렘 가득한 날을 보냈다.
매주 꼭지 주제를 정하는 동안 세부 목차를 작성하며 챕터별로 어울리는 내용, 필요한 내용을 구성했다. 그렇게 하나둘 꼭지를 채워갔고, 나는 5 챕터 구성으로 총 37편의 꼭지를 완성했다.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장장 6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분주한 나의 일상에 이렇게 글쓰기에 몰두하고, 원고를 쌓아나간 것은 스스로 돌이켜봐도 기적과 같은 뿌듯한 결과였다. 한창 글쓰기에 폭 빠져 마냥 즐거울 때는 한 주에 3 꼭지를 완성하기도 하고, 몸도 마음도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아예 노트북을 펴지 않은 날도 있었다. 무엇보다 에세이를 쓰다 보니, 나는 글 쓰는 시간만큼이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초등학생 일기 같은 추억 놀이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한 가지 에피소드를 놓고도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거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순한 나의 글은 그냥 나의 능력 부족인 걸로 치기로 했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구절은 무조건 바로바로 메모하고, 명언은 저장해 두고, 울림이 있는 아이의 말 한마디는 그대로 기록해 두었다. 그렇게 쌓인 나의 글 재료들은 나의 주제 안에서 한데 어우러졌다. 이렇게 6개월간 작업을 하니, 더 이상 쓰고 싶은 주제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분량이 채워졌다. 이제 다음 스텝은 바로 투고다.
투고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투고하고 싶은 출판사를 알아보고, 투고 메일 주소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일단 나의 글이 부합하는 세부 장르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교보문고와 yes24 등 도서 쇼핑몰을 살펴본다. 가족 에세이 중에서 ‘엄마’, ‘행복’, ‘자아’ 키워드로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에세이를 출판한 곳을 추려본다. 이미 글을 쓰면서도 제목과 목차 설정을 많이 참고하기 위해 자주 검색했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하나둘 내가 투고하고 싶은 출판사를 모았다.
그리고 나는 동네에 있는 작은 책방 ‘최고그림책방’에서 브런치 작가 과정을 비롯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온 터라, 최고그림책방의 책방지기 정희정 작가의 많은 지원이 있었다. 정희정 작가는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의 출판 경험이 있는 데다가 자체적으로 ‘최고북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출판에 관한 현실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또 출간을 검색하기만 해도 인터넷에는 방대한 정보가 쌓여있었으니, 출판 과정부터 계약까지 여러 작가의 출판 경험을 자양분 삼았다.
이제 모든 원고를 모아 하나의 통합본으로 편집하고, 미리 투고 메일과 출간기획서를 적었다. 다양한 느낌과 형식으로 여러 버전의 투고 메일과 출간기획서를 준비했다. 그래서 각 출판사마다의 감성, 느낌에 맞추어 투고한 것이 개인적으로 출판 계약을 이뤄낸 소소한 팁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과 시집 등의 출판 서적이 많은 출판사에는 조금 더 말랑한 느낌의 감성 있는 투고 메일을 보냈고, 자기 계발 서적을 많이 취급하는 출판사는 일목요연한 스타일의 투고 메일을 활용했다. 또 대형 출판사의 경우에는 홈페이지 자체에서 투고를 받으며 여러 가지 기입해야 하는 사항이 많은데, 그래도 다양하게 준비한 출간기획서를 활용한 덕분에 출판사의 요청 사항에 모두 공백 없이 답을 기입할 수 있었다.
나의 자식 같은 이 원고를 부디 공감하여 주길, 출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투고는 이렇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