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by 안녕 콩코드


한때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들었고, 그 말 한마디에 내 하루가 달라지기도 했다. 인정받고 있다는 안도감.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의 존재는, 내가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잘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말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 안에 내가 아닌 타인의 기대가 들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조금씩 숨이 차올랐다. 착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하며, 상황을 부드럽게 마무리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람. 불편한 이야기는 돌려 말하고, 부당한 일은 웃으며 넘기고,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감춘 채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편안함을 위해 감정을 미뤄야 했고,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 나의 불편함은 늘 뒤로 밀렸다.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쁜 사람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는 내가 아닌 타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던 날이 있었다. 웃고 있지만 어딘가 말라 있었고, 다정하지만 피로해 보였다.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사이, 나는 나에게 점점 미안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종종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인격의 덕목처럼 여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암묵적인 요구가 있다. 감정을 절제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대체로 맞춰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은근한 강요. 이런 기대는 관계를 일방적으로 만든다. 한 사람이 조율하고 이해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무심하고 이기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관계에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비난받지 않기 위해, 오해받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하고, 더 양보한다. 하지만 그 조심이 계속되면 결국 나만 고립된다.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 하지 않는 나는, 누구에게도 진심을 꺼내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어떤 관계에서는 나빠지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히는, ‘좋은 사람’이기를 멈추는 용기가 필요하다. 거절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말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먼저 물러서고,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을 더 가까이 둘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경계가 된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짜 ‘나’로 설 수 있다는 것을. 타인의 기대를 중심에 둔 삶은 오래가지 못한다. 언젠가 그 무게에 눌리거나, 혹은 조용히 관계에서 사라지고 만다. 더 늦기 전에 내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 ‘좋은 사람’이기보다는, ‘진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물론 여전히 망설인다.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거절당하는 건 아닐까, 내가 말한 단호함이 상처가 되진 않을까. 하지만 그런 망설임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내 자리를 세우고 있다. 거절해도 괜찮고,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고, 어떤 날은 조용히 물러서도 괜찮다는 감각.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운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건, 타인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과하게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내 감정을 후순위로 두지 않으며, 나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했을 때 진짜 좋은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감정의 균형이 맞고, 기대가 지나치지 않으며,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사이. 그곳에는 억지스러운 미소도, 참는 침묵도 필요 없다. 우리는 서로를 편하게 대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다.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은 관계는 가능하다.


나는 이제 ‘좋은 사람’이라는 이름 대신, ‘정직한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 때로는 불친절할지라도 솔직한 나, 때로는 어색하더라도 진심인 나. 그렇게 살아도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살아야 비로소 관계는 자란다.


그 자유를 향해, 나는 천천히 걸어간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더 이상 묶이지 않고,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 속에서 나를 덜어내지 않고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길, 그 길 위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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