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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와인을 빚는 사람들의 시간

by 콩코드


와인은 포도밭에서 태어나지만, 인간의 손끝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햇살과 비, 바람이 포도를 키우지만, 그 모든 요소를 하나로 엮어 와인을 탄생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시간입니다. 와인은 기다림과 선택, 실패와 회복의 흔적을 품고 있으며, 한 해의 기후와 사람의 손길이 더해져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은 한 병의 예술로 태어납니다.


이른 새벽, 안개가 자욱한 언덕 위 포도밭에서 한 노인이 매일 같은 길을 따라 걷습니다. 마치 변함없는 일상의 반복 같지만, 그는 압니다. 포도는 한 해도 같지 않다는 것을. 같은 나무에서 열린 열매라도 햇빛과 강우량, 온도와 바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해마다 묻습니다.


"올해는 어떤 와인이 나올까?"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다만 하루하루 포도밭을 살피고,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을 뿐입니다. 와인을 빚는다는 것은 결국 시간과의 대화입니다. 오늘의 선택이 몇 달 후, 혹은 몇 년 후의 맛을 결정짓습니다. 이들은 조급함과 거리가 멉니다. ‘지금’보다는 ‘나중’을 생각하고, ‘속도’보다는 ‘흐름’을 중시합니다.


양조장에서는 포도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발효 온도를 몇 도로 맞출지, 숙성 기간을 얼마나 둘지, 어떤 이스트를 사용할지 등등 모든 과정이 미세한 선택의 연속입니다. 이 작은 차이들이 와인의 개성을 만듭니다. 때로는 소중한 실험이 실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패마저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한 해의 실수가 다음 해의 지혜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작은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한 청년이 말합니다.


"내가 제대로 만들었는지는 몇 년 후, 누군가 이 와인을 열고 미소 짓는 순간에 알 수 있어요."


그들의 시간관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이들에게 와인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긴 기다림 속에서 증명되는 존재입니다.


어떤 와인은 한 세대를 넘어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포도밭은 대개 가족 단위로 운영됩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에서 아버지가 와인을 빚고, 아들이 라벨을 붙이며, 손녀가 시음회를 엽니다. 병 하나에 담긴 것은 한 세대의 시간이 아니라, 몇 세대에 걸친 호흡입니다. 어떤 와이너리는 와인 병에 가족의 이름을 새깁니다. “꼬뜨 뒤 파파(Côte du Papa)”. 아버지의 언덕이라는 뜻이죠. 이 와인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가족의 기억이며, 전통이고, 살아 있는 이야기입니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한 장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맛을 내는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무엇보다 전 정직한 와인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들에게 와인이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과정입니다. 자신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은 한 걸음 물러나 포도와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로 와인을 완성합니다. 이들의 철학은 와인의 맛에 그대로 녹아납니다. 화려한 기교보다 자연스러운 맛, 과장된 풍미보다 진정성을 중시합니다.


한 병의 와인은 마치 한 사람의 인생과도 같습니다. 겉으로는 단정하고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선택과 기회, 실수와 기다림이 녹아 있습니다. 그러니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삶과 시간을 나누는 일이기도 합니다.


와인 한 잔을 입에 머금을 때, 우리는 단순히 그 맛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와인이 지나온 시간을 경험합니다. 포도밭의 흙 내음, 손으로 수확한 포도의 달콤한 향, 오크통 속에서 숙성되는 동안의 조용한 기다림이 한 모금 속에 녹아 있습니다. 어떤 와인은 한여름의 따스함을 담고 있고, 어떤 와인은 가을의 쓸쓸함을 품고 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해의 와인은 강인한 구조를 띠고, 비가 잦았던 해의 와인은 부드러운 여운을 남깁니다. 결국 한 잔의 와인은 한 해의 기후와 풍경, 그리고 그것을 돌본 이들의 마음이 담긴 시간의 기록인 셈입니다.


와인을 만드는 일은 기다림의 예술이며, 자연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포도를 기르더라도 해마다 다른 와인이 탄생하는 이유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내는 조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병을 따고 잔을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그 시간과 공간을 함께 마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와인은 단순히 혀끝에서 느끼는 맛이 아니라, 가슴속에 남는 깊은 여운과 같습니다. 그 여운이야말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지켜온 가치이며, 우리가 한 잔의 와인을 통해 경험하는 가장 소중한 운치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와인을 한 잔 따를 때, 그 잔 속에 담긴 시간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요?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기다림의 결실입니다. 한 세대를 이어온 이야기이자,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예술입니다.





와인의 시간, 와인 이야기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잔에 담긴 건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 사람과 문화가 쌓여 만들어진 이야기죠.


와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8000년 전 조지아와 이란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무덤에서 포도주 단지가 출토되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철학자들과 함께 와인을 즐기며 사색을 나누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유럽 곳곳으로 뻗어 나가면서, 와인 문화 역시 널리 퍼져나갔죠.


그리고 그렇게 뿌리내린 와인은, 각 도시와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색과 향을 품게 됩니다. 프랑스 보르도의 우아한 와인,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토양에서 태어난 깊이 있는 맛, 스페인의 태양을 머금은 테메프라니요(Tempranillo), 그리고 미국 나파 밸리의 신세계 와인까지.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그 땅과 사람을 담은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됩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바로 포도 품종입니다.


• 깊고 진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가죽과 체리 향을 품고,

• 피노 누아(Pinot Noir)는 섬세한 꽃향기와 함께 가볍게 퍼지며,

• 샤르도네(Chardonnay)는 버터처럼 부드러운 감촉을 남깁니다.


와인의 맛과 향을 결정짓는 건 단순히 포도 품종만이 아닙니다. 토양, 기후, 바람, 그리고 시간이 모두 어우러져 한 병의 와인을 완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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