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 스토리 #7
경제적 수입이 없기 때문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 할 때 일반 사무보조업무 계약직으로 입사를 하였다. 다행히 계약직이라 업무에 큰 부담은 없었고 시간 또한 정직원보다 일찍 퇴근하여 충분히 미술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미술 학원은 다행히 집과 가까워서 평일 퇴근 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좋았다. 화실을 다닌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화실 원장님께서 나의 그림을 보고 단체전에 출품해도 되겠다는 말씀을 듣고 부산문화회관에서 나의 첫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후 화실 사람들과 친해졌고 작품 이야기도 나누고, 화실에서 운영하는 각종 행사에 열심히 활동하였지만, 학원도 작은 사회였던 것이다. 그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질투와 이간질, 서로가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3년간 다녔던 화실을 떠나 나는 집과는 거리가 있지만 다른 곳으로 화실을 옮겼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화실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었고 작업에만 몰두하였다. 특히, 새로 옮긴 화실은 거리가 멀어서 퇴근하고 화실 가기엔 시간이 부족하여 토요일에만 3~4시간 작업할 수밖에 없었고, 그 짧은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화실의 도움 없이도 다른 기관에서 단체전 참가 의뢰도 받으며 1년에 한두 번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그러면서 차곡차곡 프로필을 쌓아갈 때쯤 다른 작가의 프로필들을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모두가 미대를 졸업한 작가들이었다. 아 나도 미술을 전문적으로 전공하고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미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회화 실기뿐 아니라 미술학까지 다양하게 공부하고 국가자격증인 문화 예술교육사 자격증도 취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경제적인 것들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직장 생활 없이 대학교 편입은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방면으로 정보를 알아본 결과 서울디지털대학에 회화과가 있었고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는 곳이었다. 학교행사나 과제 및 미술 실기 수업 등 필요에 따라 학교에 방문하여 큰 부담감은 없었다. 다행히도 다니던 직장이 계약직이라 업무량도 많지 않아 공부를 병행해가며 진행하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컴퓨터를 끈다. 업무가 끝나고 퇴근을 함으로써 나의 또 따른 삶이 시작된다.
또 다른 삶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시대별로 다르지만 요즘 시대는 제2의 직업 즉, 투잡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불안전한 직장 생활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또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이 있다면 투잡의 경우는 대게 본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직업으로 갖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제2의 직업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림 그리는 활동이 나의 본업이며, 직장이 투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업을 위한 경제적인 뒷받침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직장 일을 대충 하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나의 업무를 하고 있다
아티스트의 비애 중 하나는 항상 배고픔이다. 본능적인 배고픔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배고픔이다. 본능적인 배고픔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지만, 그림 작업만큼은 항상 배고픔이다. 소재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작업을 할 수가 없고 그 고민의 시간만큼 주어진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고민의 시간도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면 그 고민의 시간마저도 아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일을 주저하게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은 없기 때문이며 그것을 이겨내는 것 또한 내 일이기 때문이다.
돈벌이도 안 되는 그림을 왜 그리고 있냐고 주위에서 한 마디씩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나의 최종 꿈은 아티스트였으며,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어 공부했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또한, 그림을 통해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공부를 하면서 아트 히스토리, 미술사조, 철학, 문학, 사회, 비평 등 다양하게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들이 나의 머리와 마음을 살찌우게 하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 주었다. 그리하여 직장인보다는 아티스트가 나의 본업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다. 이런 삶을 내 주위 사람들에게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즐기면서...
<생트 빅투아르산> 작품은 표현된 산의 크기가 실제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세잔에게 거리의 개념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물질적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이다. 그림에 환영을 부여하지 않고 2차원이라는 평면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법들이 이후 입체파나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림을 배우다 보면 원근법과 투시, 비율 등을 생각하며 그리게 된다. 그림을 그릴수록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그림에는 자신의 생각과 의미 등이 상실되고 스토리와 감동이 없는 그냥 '잘 그린 그림'으로만 보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세잔의 작품들이 마음속 깊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림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과 철학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많은 철학자들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철학자들에게 그림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닌 사상의 바탕을 더하였다. 그중 세잔 하면 떠오르는 철학자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체화된 경험으로서의 인간 의식의 본성에 관심을 가진 프랑스 철학자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상학을 알아야 한다. 단어에서 암시하듯이 현상학(phenomenology)은 감각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현상 (보여주다)을 탐구한다. 즉, 세계에 대한 지식은 '체험'에서 시작된다.
특히, 그의 논문 [세잔의 회의]는 세잔의 회화를 현상학적 시각으로 분석하였다. 메를로퐁티가 바라본 세잔의 작품은 미적 독특함에 끌렸기 때문이다. 세잔의 그림에는 묘사 차원을 넘어 현상학적인 시각이 암시되어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세잔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나의 구조적인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눈으로 지각되는 것은 혼란스럽고 산만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얽혀 있다.
화가는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드러냄으로써 가시적인 것 안에 비가시적인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