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받은 PCR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 회복된 지 열흘밖에 안돼서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이러스를 피했다.
오전 8시 50분, 교회를 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지만, 발신자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안녕하세요, 국립 암센터입니다. 000 환자님 이시죠? 수술 전 입원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오늘 입원 가능하시고요. 오후 3~4시 사이에 본관 1층 입원창구로 오시면 됩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기다리던 수술 날. 예배가 끝나고 광화문 근처를 지나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벚꽃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달뜬 표정으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 그들은 만개한 꽃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나는 입원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와서 가방을 챙기고 떠날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아들한테 말은 하고 가야 할 것 같았다.(아들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른다)
"00야, 엄마가 수술 때문에 오늘 병원에 입원해야 할 거 같아. 한 일주일 걸릴 거야."
"네?"
아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있는 일이니 그럴만하다.
"아침에 아빠가 태워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학교 생활 잘하고 있어."
잠시 말이 없더니 묻는다.
"혹시...... cancer 에요?"(아들은 영어를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한다)
cancer. 그 말이 그 애 입에서 튀어나오자, 가슴이 조여들고 목이 매였다.
"아직... cancer는 아니고... 그거 비슷한 거야. 혹인데, 지금 떼내지 않으면 암으로 변할 수도 있어."
거짓말을 했다. 사실대로 말할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계속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그냥 혹 떼는 수술이야. 별거 아니야. 그러니 떨 필요 없어.
생각이 깊어서 그랬는지, 없어서 그랬는지(지금 보니 후자인 듯) 아들은 더 이상 내 병에 대해 묻지 않았다. 나를 꼬옥 안으며 인사를 하더니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엄마, 잘 다녀오세요. 수술 잘 받으세요. 그리고... 죽지 말아요."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꾹꾹 숨죽이느라 터지지 못한 설움이 눈물에 실려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오후 3시 30분 즈음 암센터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했다. 3인실에 배정되어 있었지만, 1인실로 바꿨다. 아침에 입원 안내 전화가 오면 몇 인실에 배정됐는지 알 수 있는데, 병실을 바꾸고 싶으면 그때 요청하면 된다.
국립 암센터의 유방암 센터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운영한다. 의료진이(주로 간호사 선생님) 24시간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보호자는 아예 병실에 들어갈 수 없고 방문객도 금지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렇게 바뀐 듯하다. 비용은 중증환자 하루에 약 5,000원, 비중증환자 약 20,000원이다.
병동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입구에서 신랑과 쿨하게 인사했다. 실은 병동 안 진입을 시도하다 간호사 선생님한테 걸려 급작스레 어정쩡한 이별을 했다.
남편에게서 나를 인계받은 간호사 선생님은 내 캐리어를 잡으시더니 병실 입구까지 끌어주셨다. 얼떨결에 황송한 서비스를 받았다. 아직 환자도 아닌데.
병실에 들어서자 눈앞에 꽃잎이 흩날리는 정발산이 보였다. 예상치 못한 전망에 나도 모르게 우아~ 감탄사를 내뱉었다. 고민 끝에 1인실로 바꾼 건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태어나서 1인실 처음 써 봄) 티브이도 있고 컴퓨터도 있다. 냉장고도 엄청 크다. 화장실도 혼자 쓸 수 있다. 가져온 짐을 정리한 후, 창 밖을 바라보니 호캉스 온 기분이 들었다.
신랑한테 조큼 과장해서 호텔에 놀러 온 거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재밌게 즐기라는 답변이 왔다. 내일 수술도 재미있게 끝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