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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먹는 것에 진심이었던 이유

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1인 밥상

by 규아

예전엔 밥을 잘하지 못했다. 음식을 하는 것이 지금처럼 즐겁지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마트에서 밀키트를 사 오던 시절, 식탁은 늘 ‘의무’였고, 밥은 그저 ‘체력 유지’였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차릴 때도 많았지만 정작 나를 위해 밥을 짓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병이 찾아왔다. 갑상선암 수술 후 동위원소 치료를 준비하면서 모든 음식의 성분표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날들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살리고 지키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음식이 달라 보였다. 양념보다 재료를, 화려함보다 단순함을 찾게 됐다. 혼자 끓인 국 한 그릇이 세상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혼밥은 외롭지 않다는 걸. 주방의 불을 켜고 냄비를 올리면 내 안의 소음들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간장과 참기름 냄새에 엄마의 부엌이 떠올랐고, 메추리알 조림 냄새엔 아이들이 웃던 얼굴이 피어났다. 밥을 먹는 동안, 잊고 있던 시간들이 식탁 위로 돌아왔다.


이제는 가족들이 내 음식을 찾는다. “엄마 밥이 제일 맛있어.” 그 말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녹는다. 엄마조차 “이젠 네 밥이 더 맛있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엄마의 밥으로 자라던 내가 이제는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먹는 일로 살아왔다. 아플 때도, 외로울 때도, 지칠 때도 결국 주방 불을 켜고 밥을 지었다. 끓고 식고, 다시 끓으며 삶도 그렇게 익어갔다. 이제는 거창한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안다.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는 건, 결국 살아가는 일에 진심이었다는 뜻이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밥을 짓는다. 그게 내 하루를 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진심이었기에, 나는 다시 살아났다. 식탁 위의 밥 한 그릇이 약보다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이제는 내 몸으로, 내 삶으로 증명하고 있다.


오늘의 1인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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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저 있는 그대로다. 시간이 없을 때는 이렇게 반찬통째로 식탁에 올려놓고 밥을 먹는다. 엄마가 해주신 나물과 김치, 지인이 보내준 잡채와 부침개. 모양은 투박하지만, 그 안엔 정성과 마음이 있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건너온 음식들이 내 하루를 채우고, 마음을 데운다. 이 밥상은 혼자 차린 게 아니다. 엄마의 정성, 친구의 마음, 그리고 나의 시간이 함께 차려낸 밥상이다.


그래서일까. 음식을 먹을 때마다 새삼 느낀다. 우리네 밥상처럼, 인생도 결국은 나눔이라는 걸. 누군가의 정성이 내게로 오고, 내 진심이 누군가에게 건너간다. 그렇게 밥상은, 그리고 삶은 이어진다.





오늘의 밥이 내일의 나를 살린다.

이 글을 끝으로, < 먹는 것에 진심입니다만 >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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