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행(小笑幸), 직장인의 밥상
눈발이 흩날리던 겨울 아침, 군산의 오래된 식당 문을 밀고 들어가면 유리문 가득 뜨거운 김이 피어오른다. 물메기탕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훈김 속, 소란스러운 식당 안은 이 도시의 살아있는 겨울 풍경 중 하나다.
테이블마다 놓인 가스레인지 위 냄비가 뽀글뽀글 소리를 낸다. 숟가락 부딪치는 사이로 “시원하다”는 감탄이 흘러나온다. 전날 술자리를 함께했던 얼굴들이 다시 모인 식당 안. 누군가는 김 서린 안경을 벗어 닦고, 누군가는 국물 한입에 이마의 땀을 훔친다. 속이 쓰리다며 연신 찡그리던 동료의 얼굴은 국물 한 모금에 금세 환해진다.
물메기탕과 함께 가지런히 놓인 풀치조림, 생김구이, 묵은지, 각종 나물무침이 가지런히 놓였다. 군산에서 물메기를 시키면 따라 나오는 ‘기본 세트’다. 짭조름함 달짝지근함이 어우러진 바다의 짝꿍들. 그 앞에 앉으면 매서운 겨울바람에 굳어있던 몸이 푸근해진다.
세상 참 못생긴 물메기. 굵은 몸통에 넓죽한 입, 그에 어울리지 않는 좁쌀만 한 눈. 몸은 물렁물렁하고 머리는 납작하며, 입은 유난히 커서 민물의 메기를 닮았다 하여 물메기라 불린다. 그물에 다른 물고기와 함께 걸리면 어부들은 흉한 몰골에 “재수 없다”며 도로 바다로 던져버렸단다. 그때 바닷물이 튀며 ‘텀벙’ 소리를 냈다 해서, ‘물텀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는 속설이 있다. 둔한 몸짓이 물에 사는 곰 같다 하여 ‘물곰’ 혹은 ‘곰치’라 부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이름부터 별명까지 죄다 ‘못생김 인증서’다. 하지만 묘한 일이다. 볼품없고 흉하다는 이유로 내쳐졌던 그 생선이 지금은 겨울이면 제일 먼저 찾는 귀한 해장국의 주인공이 되었다. 겉모습만 보고 내쳤던 것이, 맛 하나로 사람을 살리는 겨울 별미가 된 셈이다.
물메기는 살이 너무 연해 젓가락으로는 잡히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떠서 먹으면 죽처럼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 미끌거리는 식감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입 안에선 바다의 향이 스치고, 텁텁했던 속이 맑게 비워진다. 탁한 듯 맑은 국물의 경계가 묘하게 사람의 마음 같다.
예로부터 『자산어보』에는 물메기를 ‘미역어’라 적고 “살이 연하고 뼈도 연해 술병을 잘 고친다”라고 했다. 국물 한입이면 정신이 번쩍 들고, 술독이 빠져나가는 길이 환히 열린다. 그래서 술꾼들을 이 탕을 ‘보약’이라 부른다.
못생겼다고 던져버리던 생선이 지금은 귀한 몸이 되어, 웬만한 생선탕 값을 훌쩍 넘는다.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천덕꾸러기였던 물메기에 누군가는 숙취를 달래며, 누군가는 삶의 피로를 식히며, 국물 한 숟가락에 각자의 겨울을 버틴다.
세상에는 별것 아니라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물텀벙처럼 버려지고 잊히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손끝에서, 그 천덕꾸러기가 귀한 맛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인생도 그렇다. 겨울 같은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보잘것없다 느낀다. 하지만 삶은 어쩌면 그런 조리의 과정인지 모른다. 끓고 식고, 다시 끓으며 제 맛을 찾아가는 일.
못생긴 물텀벙의 반전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느 순간 반전의 맛을 낸다. 그리고 그 맛은, 타인과 어우러져 먹어도 결국 혼자서만 느낄 수 있는 것. 그 조용한 위로가, 겨울의 물메기탕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온기다.
물텀벙의 노래
못생겼다고 버려졌지만,
바다는 끝내 그를 품어주었다.
끓고 식고, 다시 끓으며
그는 자신만의 맛을 찾아갔다.
얼어붙은 가슴마저
한 그릇의 국물 속에 녹아들 때,
다시 스며드는 온기 속에서
세상은 조금 느리게, 그러나 따뜻하게 돈다.
오늘의 밥상
물메기탕 한 상.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 속엔 이른 겨울의 바다가 끓고 있었다. 묵은지의 새콤함, 풀치조림의 감칠맛, 생김구이의 고소함, 그리고 맑은 탕국물 한입이 어우러지면 바다와 밥상이 한데 닿는다. 함께 앉았지만, 각자 자기만의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그게 이 밥상의 맛이자, 오늘의 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