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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무료

오랜만이다. 주정뱅이

by 말라

토요일 1시 반

운전하고 있어 내비게이션을 보여주고 있던 나의 폰에 두부 000이라고 액정화면에 뜬다.

토요일 이 시간이라면 분명 술에 취해 있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

"이 작가. 너 요즘 글 쓰냐?"


혀가 꼬부라진 발음이 뭉개진 그가 이런 워딩으로 말하면

나의 예상은 틀렸다. 이미 그는 만취상태이다.

두부 000은 가락시장에서 두부며 콩나물등의 식자재를 파는 친구이다.

사실 이 녀석을 첨 만난 건, 가락시장에서 장사하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으나, 이 녀석의 술 먹는 습관 때문에 어느 날부터 손절하게 된 친구이다. 다행히 그렇게 친하지 않아서 전화번호부에 차단을 걸진 않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친구가 아닌 지인도 아닌 정도?


그런데 이 친구와 다시 좀 친하게 된 이유는 그가 장호원 식당 개업할 때 왔기 때문이다.

뭔가 서먹한 사이도 경조사에 얼굴을 들이밀면 다시 가까워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작년 여름 이 녀석이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를 타고 가락시장에서 여주까지 왔던 것이다.

저녁 7시에 출근을 해야 하는 놈이라 결국 내가 운전해서 다시 가락시장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마침 서울에서 볼일을 보던 동생을 픽업해 오게 되면서 가락시장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술꾼 만나면서 갑자기 킹크랩 술상이 벌어졌다.


내게 두부 000은 내 동생에게는 킹크랩 그 오빠가 되었다.

그 뒤로 일 년 동안 아주 가끔 전화가 왔었고 약속을 잡았으나, 번번이 어기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내게 손절당했다. 물론 그렇다고 차단하진 않았다. 이유는 일 년에 2~3번 정도였기에 차단까지는 안 했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그런데 이번에는 대뜸 말한다.

"어이 이 작가, 내가 지금 광주로 가고 있는데 너 거기로 와야 쓰겠다. 주소 불러줄 테니까 와라~"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늘, 언제 어디서 보자였지. 지금이란 말을 한 적은 없었다.

특근 후 친구의 마사지샵으로 가고 있던 나는 응~ 주소 보내봐라고 말하고는 그냥 모른 척하았다.

술 취한 놈, 나와 번번이 약속 어기던 놈인지라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동생과 마사지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데 또 전화가 온다.

그리고 그 전화를 동생이 받았다.


동생과 나는 그의 전화를 받고는 그가 찍어준 경기도 광주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술에 취해 있는 그 친구와 상당히 멀쩡한 친구의 두 지인.

술에 취해서 목소리 데시벨을 조정 못하고는 개업화분이 많은 감자탕 집에서 주정뱅이의 모습으로 있는 친구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리가 앉자. 인상 좋은 지인들이 먹고 있던 감자탕을 들이민다.

술 취한 자가 있던 테이블의 감자탕은 비위가 약해서 먹기 힘들었기에 우리는 뚝배기 해장국 이인분을 시켰다.

눈치 없는 자가 뼈추가를 운운하자, 옆에 눈치 빠른 자가 그냥 깔끔하게 뚝배기 시키는 게 낫겠다며 말한다.

이럴 때는 지난 코시국이 많은 걸 우리에게 가르쳐 준거 같아 다행이다 싶다.


우리는 맛이 평타 이상이었던 해장국을 한 그릇 하고, 동생은 해장국에 소주도 한 병 마셨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친구는 큰 목소리로 대화의 흐름을 깼지만, 주정뱅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다 먹고 나는 일어나며 말했다.

" 이 친구 여기서 폭탄인 거 같은데 오늘 제가 처리해 드릴게요. 야 일어나. 가자"


동생은 내가 주정뱅이를 너무 싫어하는 걸 알기에 화들짝 놀라며 말렸지만 결론은 그 친구는 내 차를 타고 납치되었다.

차에 타기 전에 머리에 쓰고 있던 안경을 떨어뜨려 밟았고, 나는 여주에 도착하자마자 동생을 내려주고 안경점에 가서 친구의 안경알과 맞는 테를 샀다. 물론 결재는 친구 카드로 했다.

몇 만 원짜리면 내가 하나 사주겠는데 테 가격이 12만 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부러뜨린 테의 가격은 30만 원이 넘는 거였다.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테를 사줬다며 기뻐하는 주정뱅이


암튼 집에 가서 재우고 물론 라면에 소주 한 병을 더 먹고 난 뒤였지만, 술이 깬 그를 데리고 일요일 새벽에 앙성에 있는 온천을 데리고 갔다.

일출이 뜰 때 ~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호구가 되는 것도 싫고, 또 누군가가 주정뱅이로 보는 것도 싫어, 네가 택시비 몇만 원이나 쓰며 너를 받아주는 지인들을 찾아 술 먹으러 가는 거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 술 취한 너를 보는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 그 감자탕집 여사장님 내가 너 데리고 가니까 좋아하면서, 계산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갔다고 하는 말을 오늘 처음 본 나에게 흘리더라, 그 말의 의미는 술값 네가 내니까 그나마 니 술주정받아준다는 말이야. 우리 돈 쓰고 역먹지는 말자. 호구 같잖아 "


주정뱅이 친구는 이번 가락시장 곗돈에 6천만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술 먹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린 돈에는 허허~ 뭐 나는 새발의 피여~라는 친구다.

그 친구가 술을 먹고 있던 어제 감자탕집에서 나는 그 친구가 왜 술만 먹으면 내게 전화하는지 알았다.

이 친구는 술을 먹으면 자신의 전화를 받아줄 만한 모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그중에 전화받는 사람에게 말을 한다.

외로웠던 것이다.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친구는 술 때문에 친구들이 한 두 명씩 사라진 모양이다.


동생이 이 친구와 차를 타고 가면서 불쑥 말한다.

"언니야. 와 신기하네. 언니 니는 주정 배이는 절대 안 봐주면서 어째 이 친구는 만나니!"

"어... 그래.. 나도 그게 신기한데 야가 일 년에 한두 번 연락 와서 차단 안 한 거 같다."

"그러면 나도 일 년에 한두 번 이 정도 주정해도 봐줄 끼가?"


우리는 웃었다.

동생은 이 오빠가 주정뱅이긴 해도 순한 맛이네~라고 말했다.


온천을 하고 돌아오며 술이 깬 그가 말한다.

"내 이제 술 끊고 운동하려고!"

"그래. 니 운동해야지 남자 구실하고, 사람구실 한데이~ 남자 구실은 못해도 사람구실은 하고 살아야지

비싼 안경을 술 먹을 때마다 새로 살 수는 없다 아이가! 안경이야 또 사면되지만 사라진 친구들은 다시 못 부른다"


사실 술 취한 다 큰 남자를 집에 재우는 여자가 보통 여자는 아니지 않겠나

살면서 수 만 가지의 경우를 본 나이기에 그런 것쯤은 신경도 안 쓴다.

술에 취한 그가 새벽에 나에게 말한다.

"나 오랜만에 흥분되는데! 우리 한 번 하면 안 되나?"

그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응. 오랜만에 흥분되는 놈이랑 할 생각 없으니까 퍼특 디비자라..."


동생과 다시 만나 늦은 아침을 먹으며 동생이 말한다.

"오빠야. 해장 한 잔 해야지"

친구는 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둘은 딱 한 병으로 반주를 했다.


"내, 오빠를 킹크랩 오빠라고 부르잖아. 그때 킹크랩 사줘서~ 근데 이제 겨울인데 내 오빠를 대방어 오빠라고 부르고 싶네~"

"뭐 얼마 한다고~ 온나!"

"오빠야. 에이. 오빠가 사 갖고 와야지.~


동생은 성격이 좋다.

나는 동생의 말에 대답하는 그 친구를 보며...

아.. 술 취하면 주정뱅이가 되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말을 못 하는구나.... 를 알았다.

동생은 그 친구를 태평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끊어주며 시외버스틀 태워줬다.

"오빠야~ 술 먹고 싶으면 맨 정신에 이 버스 타고 토요일 온나~ "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에게 내가 말했다.

"성희야. 우리 좀 오랜만인 거 같지 않나? 주정뱅이..말이다....생각해보니까 요 근래 이런 술주정뱅이를 만난 적이 없는 거 같다. 사십 대 초 이후에는 없었지 않나?"


"짠하다 아이가.... 요즘 세상에 누가 저래 정신 빼놓고 사노.... 체력도 안되는 거 같은데.... 저래 맨날 술에 취해 살면 누가 좋아하니... 사람은 착해 보이던데.... 쯧쯧쯧...."


친구는 가고 난 뒤 문자 한 통도 없다.

술이 취하면 연락이 오겠지....

나는 사람이 쉽게 고쳐진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방귀가 잦으면 똥 싼다고 말하듯이, 뭔가 느끼는 게 많아지면

좀 덜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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