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 대서사곡
본래는 10월 말에 가졌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예매하려고 했으나,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 골드회원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이용해서 임현정의 독주회 티켓을 운 좋게 예매할 수 있었다.
A석이 본래 170,000원인데, 65% 할인받아서 59,500원에 티켓을 예매하였고, 프로젝트 마감일 다음날 연주를 들었다.
임현정의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는 이미 나의 서칭에서도 검색되었던지라, 유튜브로 전곡 감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실물 영접까지 하였다.
임현정 피아니스트는 나보다 세 살 어리지만, 이미 여러 유명 채널(미국 EMI 음반사, 빌보드 클래식 차트, 아이튠즈, 심지어 뉴스공장)을 통해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프랑스의 국립 음악원(파리 최고 국립음악원) 4년 과정을 3년 만에 수석으로 졸업한 재원이다.
내가 아는 그녀의 배경지식은 여기까지이지만,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EMI 음반사에서도 인정할 수준이기에 듣는다는 것 자체가 귀호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실제로 들었을 때, 모든 곡마다 첫 건반을 두드리는 순간에 나의 영혼은 이미 러시아 시베리아로 날아간 듯하였다.
전곡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1 in F♯ minor, Op. 1 for Piano Solo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1번 F♯단조, 작품 1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for Piano Solo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작품 18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minor, Op. 30 for Piano Solo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 작품 30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4 in G minor Op. 40 for Piano Solo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4번 G단조, 작품 40
Rachmaninoff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Op.43 for Piano Solo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작품 43
콘서트홀에 착석하기 전에, 매표소에서 받은 리플릿에 적힌 임현정 자신의 곡 해석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녀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이 사람에 대한 배경지식을 언급하였고, 전곡은 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부터 60대까지 그의 전 음악 생애에 걸쳐서 작곡한 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한 곡 한 곡 전부 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어려웠던 유학 생활에서 이 피아노 협주곡으로 위안했었다는 게 절절히 느껴질 정도였다.
나 또한 러시아의 무대가 느껴지는 피아노 곡을 들을 때마다 러시아 배경의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Love of siberia)'에서 봤던 거대한 스케일의 러시아가 상상되곤 하였다.
특히 오케스트라 협주곡으로 들을 때 느껴지는 현악기만의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부분까지 피아노로 칠 수 있게끔 임현정이 편곡했지만, 첫 건반을 두드리는 그때 이미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곡의 첫 소절마다 나의 귀는 압도되었다.
1900년대 초반 러시아나 독일의 전체주의 국가 시대 하면 떠오르는 게 또 하나 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다(다른 영화로는 '피아니스트'도 있다). 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독일의 나치군이 많은 유대인들 중 피아니스트만을 살해하지 않고 전시 간에 그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만큼 음악의 가치는 한 사람과의 생명을 대변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당시에 느꼈었다. 특히 피아니스트 하면, 러시아의 피아니스트가 가장 대단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옛 소비에트 공화국(소련)의 유명한 음악인들 중 한 명이 '라흐마니노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많은 클래식 작곡가들은 보통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 그리고 현대 음악사까지 거쳐 가지만, 리스트와 쇼팽 그리고 이 라흐마니노프는 낭만파의 대표 음악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