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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엘츠 라이팅 vs. 주입식 교육

아이엘츠 영작 시험의 템플릿과 주입식 교육의 동상이몽

by Younggi Seo




영어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어도 했던 말 또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률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나 랩에서는 같은 구절을 의도적으로 반복하곤 한다.


영어는 특히, 스피킹과 라이팅에서는 같은 말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을 한다. 이 패러프레이징을 단순히 동의어(synonym)로 바꾸거나 반의어(antonym)를 이용해서 같은 의미를 반복하는 걸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리딩이나 리스닝에서 고득점을 원하면 단순히 단어의 탈바꿈 정도가 아니라 문장 전체를 이해하고 이 의미와 동일한 의미의 다른 형태의 구문으로 나타내는 것이 패러프레이징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아이엘츠 시험이 어려운 까닭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앞서 한 말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해야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때 필요한 구문 해석은 총알(단어)을 모아 탄창(구)으로 미리 학습해 놓은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리스닝만 해도 들렸던 말을 이해하고, 문제에서 이와 동일한 의미의 구문으로 바꿔 나타내더라도 단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이엘츠 시험이다.


그러면 영작에서는 어떤가?


패러프레이징 요구 능력은 문장단위로 확대된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주어졌다고 하자.

Some people prefer to provide help and support directly to those in the local community who need it. Others, however, prefer to give money to national and international charitable organization. Discuss both views and give your opinion.


이 아이엘츠 영작질문에서 키워드는 '기부', '지역사회', '국제자선단체' 정도 될 거 같다. 그런데 핵심 논제는 기부금을 지역사회에 직접 전달할 것인가, 아니면 자선단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이다. 논제에서 말하려는 바도 파악하기 일단 힘들지만, 이제 서론을 작성한다고 해보자.


이 시험을 준비하는 보통의 학생들은 'Discussion both views' 유형에 맞춘 템플릿으로 일단 논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하기도 전에 써 내려간다. 주입식 교육의 낭패다. 에세이(논술)는 사실 영어로 글 쓸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아니다. 아이엘츠뿐만 아니라 모든 에세이 글쓰기의 초점은 평가받는 자의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시험을 교육하는 사설기관에서 어느 한 군데도 이해부터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차피 전체 글의 중요도에서 서론보다 본론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서론은 일단 머릿속에 구축되어 있는 템플릿으로 필요한 부분만 패러프레이징하라는 것이 정설로 굳혀져 있다. 왜냐하면 이 에세이 시험은 총 1시간의 시험 시간 중, 보통 40분의 짧은 시간으로 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20분은 Task1도 적어야 한다.


그렇지만 영어시험이라고 머릿속의 한국어를 영어로 옮겨 쓰는 행위를 백번, 백만 번 하더라도 본인의 사고로 긁적이지 않으면 결국에 생각은 전혀 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유학이나 이민을 위해서 치르는 단순한 에세이 시험에서조차, 사실 한국인은 본인의 사고력으로 글을 적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은, 라이팅 점수가 그 나라의 실제 교양 수준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주입식 교육의 허(demerit)를 논하려는 게 아니다. 이러한 영미권 국가에서 요구하는 사고력 측정(지적 수준이 아니라) 시험에서조차 수험자의 사고력이나 논리력(일관성) 측정은커녕, 이러한 평가지표를 쉽게 우회하듯이 수 십 개의 템플릿으로 판에 박은 듯한 답변만 되풀이할 줄 안다는 거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하지만 여태껏 수많은 주입식이 과연 우리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나? 참 답답한 나라다. 오늘도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열심히 풀고, 그리고 그와 다른 패턴의 문제들을 수없이 주입해야 한다. 한국 수험생들의 미래 경쟁력은 이제 AI가 전부 가로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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