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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흐름(형식)대로 글쓰기

개념의 운용화 이전에 논리적 흐름대로 글쓰기

by Younggi Seo




십여 년 전에 캐나다의 한 대학(최근에 검색해 보니 캐나다의 KAIST라고 불리는) 워털루 대학을 나온 친구가 고향에서 한 번 재회했을 때, 함께 얘기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한국의 여의도 한화손해보험인가 하는 곳에 준 계리사로 첫 직장을 가졌었을 때쯤인 거 같은데 지금은 홍콩에서 분가해서 잘 살고 있다.


그때, 친구가 얼핏 얘기하기론 홍콩에 넘어가기 전에, 유명한 스위스의 재보험회사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잘 안되었는데 문제는 한동안 쓰지 않았던 영어였던 거 같다고 한다. 그래서 너 영어권 국가 대학 나왔으면서 평소에 영어 좀 안 썼다고 인터뷰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거냐라고 핀잔을 줬더니만, 오히려 자신의 영어에 대한 노하우를 살짝 언급해 줬다.


영어는 교과서 수준만 해도 사실 회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친구가 말한 그 교과서가 한국 교과서인지 미국 교과서인지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는데, 사실 한국 교과서라면 초등학교 때라면 우리 시절은 따로 배운 적이 없으니 아닐 테고, 그러고 보니 우리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었으니 중학교 교과서로 생각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중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교과서 본문을 매번 10번씩 필사해오게 하는 숙제를 내곤 했었는데 이때 자기의 영어 기초 실력이 형성되었다고 말한 걸로 보였다.


뭐, 한국에서 만든 영어교과서나 미국이나 영국의 국어 교과서(Textbook)나 별반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근래 운 좋게 미국의 초등학생이 보는 영어교과서를 봤는데 내용은 아주 쉬웠다. 그런데 이 책을 한국 출판사에서 편집한 대로 학습하면서 중반부의 한 장(Unit)을 시험 삼아 백지에 본문 받아쓰기를 해봤는데, 아뿔싸 쉬운 게 아니었다.


나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따라 적는데 급급 했다기보다 두서너 번 들으면서 들리는 대로 다 적긴 적었는데 간간히 안 들리는 특정 단어나,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심심찮게 빠뜨리지 않나, 속도가 빠른 구간에서 아예 연음 처리된 부분은 문법적 맥락 지식으로도 메꾸지 못했다. 와~ 미국 초등학생 수준보다 못 듣는구나;


앞선 말한 친구가 사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편입으로 캐나다로 유학 간 걸로 기억하는데, 이 당시에 한국의 중등교과서가 아니라 미국 초등학교 텍스트북을 어디선가 유입해서 이걸 자신의 영어기초로 닦았다고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토플과 GRE 점수 만들어서 캐나다 워털루 대학의 회계과 편입에 성공하지 않았을까라는 짐작까지 했다.


지금 카톡 해서 물어보기에는 홍콩이라, 다음 기회에 확인은 해보겠지만 영어에서 자신의 실제 듣기 수준과 총알(어휘)과 총탄(구문) 적재 수준 그리고 문법적 지식까지 전방위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최적의 훈련은 영어 작문보다 받아쓰기가 더 효과적인 거 같다는 사실이다. 이 받아쓰기가 어느 정도 잘 된다는 게 영어식 사고대로 단어를 나열하는 데 익숙하다는 의미이고, 영어식 사고 흐름대로 글을 읽거나 말도 할 수 있다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앞선 섹션에서 통으로 아이엘츠 영작 샘플 답안을 외우는 것을 추천했었는데, 사실 통으로 외우는 '단기 기억력'도 중고등학교 시기가 가장 높게 피크치를 이룬다고 한다. 다만 경험적 지식(맥락)을 통한 어휘의 암기는 성인이 유리하기는 해도(그래서 어휘력 테스트에서는 학력이 높은 성인이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겁 없이 통째로 외워버리는 능력은 청소년 시기가 더 유리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통으로 외우려고 해도, 외워지지 않는 성인의 시기에는 로직(인과성, 이를 테면 So what? 혹은 Why that?)이 중요하다. 왜 이 문장이 여기서 나오고, 다음 문장은 앞 문장과 어떠한 관계를 이뤄야 하고, 그리고 어떠한 연결고리로 다음 문장과 일관성을 지녀야 하는지는 성인이 외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어로 된 하나의 글을 암기하는데도 필수 요소다.


물론 입으로 계속 내뱉으면, 입에서 그냥 자동적으로 나올 수는 있다. 이건 약간의 고행이긴 하더라도 단기적인 효과는 만점이다. 왜냐하면 생각할 새도 없이 이미 입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수한 반복(이건 학습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악이 될 수는 있다.)'이 필요하다. 아마 미드 하나를 씹어먹는다는 의미가 이것과 상통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어떠한 의미나 논리성이 결여된 채 통으로 외워놓고, 주기적으로 써먹지 않으면 결국 통으로 까먹는다. 필자가 외웠던 미드 대본 스크립트, 팝송 스크립트, 토스트 메스터(영어 스피치 모임) 스크립트, 당시 완전히 암기 후 말할 때는 문제없었지만, 지금은 잘~알(?) 까먹었다.


그러니,

절대 무식하게 외우면 안 된다.


다음 화부터 진짜 통으로 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알려주겠다.

참조영상 (피곤하더라도, 일단 외국인 영어학습자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반론의 의미로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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