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시절, 꿈같은 그대
홍콩 작가 유이창의 소설 ‘대도(對倒)’는 프랑스어인 '테트 베슈(Tête-bêche)'를 직역한 말이다. 두 장의 우표가 하나의 종이에 붙어 있는데, 한 장을 기준으로 다른 한 장이 180도 뒤집혀 있는, 즉 마주 보고 있으나 뒤집힌 상태를 뜻한다.
화양연화는 ‘인생의 꽃 같은 순간’을 의미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그 시절을 아름답다고 정의 내리는 건 이미 지나간 시간일 때 가능하다. 어떤 연인들은 짧게 사랑하고 길게 만나지만, 반대로 짧게 만나고 길게 사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처지지만, 생각을 안 할 뿐이에요.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매일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자문하는 건 시간 낭비예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무슨 계획이 있어요?
무협소설을 다시 쓰고 싶어 졌어요.
주모운(양조위)은 밤늦게까지 집에서 기다린다. 부인은 야근이 있다고 말했지만, 찾아간 직장에서 그녀가 일찍 퇴근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는 부인이 옆집 남자와 불륜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분노하지 않는다. 주모운은 신문사의 편집기자다. 활자를 배치하고 문구를 조정한다. 그의 직업처럼 주모운 자신의 삶에 생긴 균열에 분노하기보다 삶을 재배치, 재조정하려고 할 뿐이다.
주모운이 아내의 외도를 알고도 자책하지 않는다는 점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아내)의 행위에 종속시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아내의 배신을 자신의 결함으로 읽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객관화한다. 그리고 그 근원을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다만, 평소 좋아하던 무협 소설과 옆집 여자 소려진(장만옥)과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무너진 가정을 수리하기보다, 그 무너진 잔해를 재료 삼아 새로운 관계의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2046년은 홍콩이 중국으로 완전히 반환되는 해를 말한다. 홍콩의 체제가 2046년까지 중국에 의해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의 유효기간이다. 주모운과 소려진 또한 2046호에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을 갖는다.
붉은 커튼이 휘날리는 붉은색의 방(2046호)은 이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탐미적인 공간이다. 그들은 주변의 눈치를 피할 겸, 표면적으로는 집필 공간으로 붉은 방을 빌린다. 붉은 커튼은 주모운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혈액의 색이자, 그가 애써 억눌러온 원초적 욕망의 표상이다. 그 방을 빌린 행위는 그가 사회적 이름표(남편, 기자)를 떼어내고 소려진 앞에서 오직 남자이자 작가로서만 존재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런 와중에 2046이라는 숫자는 아무래도 불안하다. 숫자로만 이루어진 약속은 어쩐지 지켜지지 않을 것 같다. 결국 홍콩의 현실과 같이 2046호는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순간이 시간의 흐름(체제의 변화)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장치가 된다.
결혼 안 했으면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아마 행복했겠죠.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혼자라면 혼자만 잘하면 되지만
둘이 같이 살면 혼자 잘하는 거론 부족해요.
소려진은 비서로 일한다. 그녀는 자신의 업무 외에 사장의 불륜 일정 또한 관리한다. 일종의 불륜 중개인 일까지 겸비한 셈이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이 그 또한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불륜의 피해자가 될지는 상상도 못 한 채.
그녀는 사장의 불륜을 관리하며 사랑을 업무와 리소스 관리로 학습했다. 그녀에게 관계란 정교하게 짜인 스케줄이고, 깨져서는 안 될 시스템이다. 그녀에게 주모운은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구원자가 아니다. 남편이라는 거대한 자원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워줄 가장 유사한 규격의 대체품일 뿐이다. 그녀가 매운 소스를 먹으며 주모운의 아내를 궁금해하는 행위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리를 찬탈하여 무너진 자신의 가정(시스템)을 재건하려는 지독한 강박이다.
그녀는 주모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할 수가 없다. 그녀는 불분명한 변화보다 기존의 것들을 재건하고 싶어 한다. 소려진이 주모운과 반복하는 역할극은 진심을 전하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진실이 가져올 파괴적인 변화를 지연시키려는 시간 벌기다. 시뮬레이션 안에서만 그녀는 남편의 뺨을 때리고 이별을 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안전하지만 그만큼 공허하다.
그녀는 불륜을 고백하는 역할극을 통해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주모운과 이별의 역할극을 하며 그에 대한 사랑을 아파한다. 하지만 이 깨달음들은 모두 ‘가짜 상황’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이는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라는 안전한 필터를 통해 욕망을 분출하는 방어기제와 같다. 현실의 변화를 감당할 근육이 없는 그녀에게, 역할극은 독이 든 성배다. 결국 그녀는 변화라는 문을 열 용기가 없어, 재건이라는 미련 속에 자신을 가둔다.
그녀는 타인의 불륜을 정교하게 중개했지만,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단 한 걸음의 행정 절차도 밟지 못했다. 유능한 비서였을지는 모르나, 정작 자신의 인생이라는 경영에는 무능했다.
소려진은 다가오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주모운 역시 그녀를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명제는 그들을 숭고하게 해 주지만, 동시에 관계를 옥죄는 족쇄가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적극적으로, 혹은 이기적으로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고 멈추게 된다. 붉은 방의 뜨거운 열기(욕망)와 소려진의 차가운 절제(도덕)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주모운은 이 관계의 종지부를 찍고 2046호의 문을 닫는다. 그는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이 관계를 현실의 사랑이 아닌, 인생의 화양연화로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유독 좁은 복도와 계단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어느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만 존재한다. 배우자들의 모습 또한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어쩌면 주모운과 소려진 또한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들에 의해 고통받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도착하지 못하고 이동하는 과정 중에만 존재하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문 앞에서 서성인다. 나선의 계단을 달리는 모습은 뫼비우스의 띠 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무의미한 운동을 연상시킨다.
짝을 잃은 이들이 국숫집 앞에서 끼니 때문에 마주친다. 그들의 허기는 육체가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려진에게 집주인과의 식사가 불편한 것은 정상적인 가족 시스템에 대한 강요이기 때문이며, 주모운에게 혼자 먹는 밥이 불편한 것은 고립된 실존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국숫집 앞에서 그들의 만남 또한 자신들의 신세를 마주한 것 같아 불편하다.
불륜의 배우자들이 자신들에게 선물한 것들이 각자의 불륜 상대에게 선물한 것과 같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 불륜의 증거가 되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홍콩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은 홍콩의 빈곤과 빈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얻어낼 수 없는 관계의 자리일 수도 있다.
영화 말미, 둘은 옛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옆 집에 누가 사느라고 물었을 때 그 둘의 반응은 대비된다.
소려진은 옛집의 주인을 만나 옆집에 누가 사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주인은 요즘에는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는 말은 주모운과의 이별이 완전히 성립되었다는 의미다. 그녀는 변화가 두려워 그 자리에 머물렀지만, 정작 돌아온 곳에는 주모운이 없었고, 그녀는 드디어 역할극이 아닌 현실의 이별을 경험한다. 그녀의 화양연화는 후회다.
우표의 대도처럼 주모운도 소려진과 비슷한 시기에 옛집으로 돌아온다. 그 또한 예전에 살던 집을 찾지만, 그곳에 자신이 알던 집주인은 이미 떠나고 없다. 옆 집에 누가 사느냐고 물어보니 여자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산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옅게 미소 짓는다. 주모운은 붉은 커튼의 방을 빌렸고, 싱가포르로 떠났으며, 앙코르와트의 벽에 비밀을 묻었다. 그는 끊임없이 시도했기에 실패로 남은 기억도 아름답게 박제할 수 있었다. 그의 화양연화는 낭만이다.
왕가위 감독이 영화 곳곳에 심어둔 2046이라는 숫자와 1960년대 홍콩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장엄한 장례식에 가깝다.
소려진은 남편과 결혼이라는 거대한 흐름(중국으로의 편입)을 거스르지 못한 채,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체면과 안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홍콩 시민의 초상이다. 그녀가 입는 수십 벌의 치파오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목을 옥죄는 전통과 규율을 상징한다. 이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문화적·정치적 뿌리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홍콩의 운명을 시각화한 것과 같다. 그녀가 옛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는 것은, 변화를 거부하고 시스템의 재건에 매달렸으나 결국 시간의 흐름(반환) 앞에 잃어버린 것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겨진 자의 슬픔을 대변한다.
반면 주모운은 낡은 질서가 무너진 폐허 위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떠도는 홍콩의 역동적 시민성을 상징한다. 싱가포르와 캄보디아를 떠도는 그의 행보는, 1997년 반환을 앞두고 전 세계로 흩어졌던 홍콩인들의 이주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는 홍콩의 찬란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동시에, 그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며 기꺼이 방랑자가 된다. 시도해 본 자이기에, 이제는 사라질 ‘영국령 홍콩’의 황금기에 대한 추억을 가슴에 품고 전 세계를 떠돈다. 그는 시도했기에 후회가 아닌 낭만을 소유할 권리를 얻은 셈이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선언은 단순히 불륜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도덕적 결단을 넘어,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최후의 선언이다. 소려진과 주모운이 나누는 대화,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탐닉하는 문학적 유희는 모두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교양 있고, 절제할 줄 알며, 다른 식으로 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맞바람을 피우는 대신, 역할극이라는 지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다스린다. 하지만 이 우월감은 결국 그들이 진짜 욕망으로 나아가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그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상황을 택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는 품격을 지키려다 행복을 놓쳐버린 한 시대의 자서전이다. 그들은 다름을 증명하기 위해 서로의 손을 놓았고, 그 도덕과 우월감이라는 증명서를 손에 쥔 채 각자의 고독 속으로 퇴근했다. 그들은 같은 것을 바라면서 다르길 바랐고,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이 모순은 특별한 것도, 유일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곧잘 그런 모순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옛날 사람들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알아? 산에 가서 나무에 구멍을 낸 다음 거기다 비밀을 털어놓고 진흙으로 막았대. 그럼 그 비밀은 영원히 그 나무에 갇히고 아무도 모르는 거야.
주모운이 앙코르와트에 구멍에 털어놓은 비밀은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추도문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뒤집어졌으나 마주 보고 있다는 것.
그가 만약 먼지 쌓인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지나간 세월의 그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但愿如此.